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전부터 좋아하는 법학자였고 꾸준히 봐왔던 분이기에-여기서 봐왔다는 것은 온라인으로 그 분의 종적을 봐왔다는 것 오프라인에서 아직 만난 적이 없다- 책이 나오자마자 샀다.
책을 산지는 이미 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일로 바쁘다보니 다 읽은 것은 최근이다.
이 책은 '혐오'에 대해 내가 아는 한, 최초로 잘 정리된, 그러면서도 매우 내용이 쉽게 쓰여져 있는 단행본이다.
언제부터인가 협오라는 단어는 우리의 사회에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소 입에 오르지도 않는 단어였는데 말이다.
협오가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나 각종 커뮤니티, 사회 곳곳에서 수면 위로 올라가 사람들이 하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혐오정서를 사람들에게 인지시키기 위해 소수자그룹, 차별받는 그룹에서 이 단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즉, 이 때 혐오는 국어사전 단어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의미-싫어하고 미워함-와 다소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여성을 좋아하는데, 왜 내가 여성혐오자라는 거냐?"라는 우문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로 여성을 혐오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만약 그가 여성을 인격체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는게 아닌, '섹스를 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만 좋아하는 거라면 말이다.
다시 말하면, 혐오정서는 저 단어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부터 존재했고 그 뿌리도 깊다. 공기처럼 사회 곳곳에 빠진 곳 없이 스며들어 있다. 나 역시 가끔 의식하지 않을 때는 혐오정서에 기반한 단어나 문장을 생활 속에서 말로 하고는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것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사회가 차별 없이, 모두가 보다 인간 답게 대접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려면, 도대체 무엇이 혐오인지?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모든 이들에게 가이드가 되는 책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왜 그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살아도 지장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당신이 차별을 받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이미 당신은 누군가를 차별하는 말과 행동을 하고 그것을 습관처럼 반복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공존은 그 대상들이 아픔을 참고 고통을 숨겨왔기에 가능했던 공존이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고 있다.
옛날에는 차별을 받는 이들, 소수자들, 사회적 약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사회갈등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사회적 갈등이 없었다'와는 다른 의미다. 우리 사회가 그것을 외면해왔고 차별받는 이들도 목소리를 내어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본인들도 내면화하여 차별을 받고 있는 상태를 자각 못했기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렇다고 있던 차별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지금은 차별을 받고 있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다른 사회적 주체들과 부딪혀 또 다른 종류의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백래시(Backlash)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간이 되는 '혐오'에 대한 이해 없이, 앞으로 우리가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는 특히 각 조직에서 보다 책임있는 위치로 올라갈수록 요구되어진다. 의사결정의 자리, 매니저의 자리는 구성원들 사이에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조직의 목표를 향해 함께 힘을 합쳐 나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갖고 있는데, 이 때 서로 다른 계층이 한 조직에 있는데 매니저가 이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조직 내에서 갈등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당장 내가 그런 위치에 있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정서, 그에 기반한 언어들에 어떠한 것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사회 갈등을 줄이고 예방하는데 필수적이다. 이 책에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침묵이 지속되다 보면 점차 그런 차별적 언사들이 정당회되고 고착화된다. 사실로 굳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자애들끼리는 '게이'라는 단어를 부정적 어감의 단어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친구에게 '게이냐, 이 XX야?'는 결코 그 친구의 성적 정체성을 물어보는 말이 아니다. 게이를 2급 남성으로 분류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질타하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그 그룹 안에 게이가 있었다면 그 사람은 내적으로 어땠을까? 겉으로 말은 못하지만-그러면 커밍아웃이니- 속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기비하가 일어나면서 괴로웠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아무 자각 없이 사용되는 차별적 언사들이 매우 많다. 그리고 그 계층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일부러 공부하지 않는 한 알 수 없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모두 고통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마음이 괴롭다 수준이 아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육체적으로도 정말 칼로 찌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심해지면 자살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알게 됨으로써 말할 때 조심하고, 타인이 사용했을 때 제지시킬 수 있다면 사회는 분명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최소 한 번은 읽었으면 좋겠다.
만약 누군가 올 한 해, 단 한 권의 책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올 해 출간된 이 책을 꼽을 것이다.
기회되면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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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많은 분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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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하게 학술적으로 정의된 표현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을 보면 답답합니다 ㅠ 양심이라거나 혐오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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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다들 공부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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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모를 수 있단 것만 인정해도 훨씬 마을텐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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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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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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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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