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14 (화)
■ 에베소서 5:22-33
[ 주께 하듯하라 ]
사도바울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22).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벧전3:1). 그러나 이 명령은 아내가 남편보다 열등한 존재로 지음받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며, 아내보다 남편의 우월성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고 하와를 '돕는 배필'로 주신 후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고 하셨습니다(창2:20-24). 이는 남자와 여자가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한 몸'으로서 동등한 관계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곧 상호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가 아닌, 상호 존중하고 복종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특히,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은 자율성을 강조한 것으로서, 남편에게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에서의 복종이 아닌 존경과 존중의 관계에서의 자율적인 순종을 말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으로 대하시고, 그 사랑이 희생으로 나타났듯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사랑과 희생의 관계임을 전제로 합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며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한 것은, 오늘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어떠한 관계여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남자의 갈빗대에서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으므로 여자를 남자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은 가부장적인 유교문화에서 나온 잘못된 인식입니다.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여자는 처음부터 남자의 한 몸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몸된 교회의 관계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됨이니"라고 말합니다(23). 이는 '한 몸'의 연장선에서 말한 것으로서, 머리된 그리스도와 몸된 교회가 한 몸이 듯 남편과 아내 또한 별도로 존재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한 몸을 이룰 때에 온전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육체적인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몸이 없는 머리가 살 수 없고, 머리없는 몸도 살 수 없듯이, 남편과 아내가 서로 분리되어서는 하나님께서 가정을 통해 주신 번성과 충만의 복을 누릴 수 없고 죽은 존재와 같습니다. 아내를 종처럼 부리는 것도, 남편을 존중하지 못한 것도 불신앙적인 행위입니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할 때에 가정을 통해 주신 복을 충만하게 누릴 것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질서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22). 그렇다고 해서 남편의 모든 결정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남편 또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시며 교회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은 군림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며 피차 사랑으로 대하라는 말씀입니다(25-30).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된 교회를 사랑하시고 세워나가신 것처럼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은 희생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복종은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복종입니다. 그러나 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은 먼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시고 희생하셨듯이,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사도바울은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고전11:7-12). 결론적으로 남자나 여자가 모두 하나님께 지음받은 존재이며, 그 머리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물론 디모데전서를 통해 사도바울은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고 말하고 있지만(딤전2:11-12), 이는 여자는 남자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지도자로 세워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선지자 드보라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고(삿4:4), 많은 믿음의 여인들을 통해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여자는 일체의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고 말한 것은 에베소교회에 전한 편지에서 일부 여자들이 거짓선생들에게 미혹을 받아 자신의 남편들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였던 것에 대한 권면이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가정도 이와같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모두가 주 안에서 택함을 받고 부름을 받아 각자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가는 사명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갈 3:28).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사도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 비교하여 설명합니다(31).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부가 서로 협력하며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32-33). 사도바울은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말함으로서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 협력적이고 사랑으로 하나 된 관계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33). 남편도 아내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허락하신 거룩한 백성이며, 이러한 가정을 통해 흠과 티가 없는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지기를 소망하셨습니다(26).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희생하신 것은 몸된 교회, 즉 하나님의 신부된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 또한, 이러한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가정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서 가정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2:9). 즉,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므로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을 통해 교회를 죄없도록 성결하게 하신 것은 교회는 곧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하여 "이 비밀이 크도다"라는 사도바울의 증언은, 육체적인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각 가정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은밀한 뜻"을 말한 것입니다(32). 아내를 위한 남편의 희생없이 아내에게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하고 양육하듯, 상호간에 보호하여 주고 영육의 고른 성장을 위해 힘쓰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기도
소중한 가정을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가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하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게 하시고, 서로가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임을 존중하게 하옵소서. 가정은 남편의 뜻이나 아내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공동체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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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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