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봉스토리] 열두 번째 심부름 _ 2화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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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권상효

“승지이, 화분에 물은 줬나?”
상효가 앞치마를 입고 직접 내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내게 물었다. 아차차, 나는 상효가 코스트코에서 사온 크로와상을 먹는데 정신이 팔려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을 깜빡하고 있었다. 그러자 상효는 아무려면 어떠냐는 듯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이건 아마도 ‘계속해서 먹던 크로와상이나 마저 드세요’ 라는 뜻이었다고 본다) 본인이 물풍기를 들고 천천히 매장을 순회하며 화분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상효가 어떤 요리사인지는 내가 말로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요리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을 뿐더러, 친구의 요리가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하고 장난스레 평가를 하기에 이미 상효는 완전한 요리사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권상효를 설명해라고 하면 얼마든지 나는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상효는 자신이 하는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 인간이다.

상효는 처음부터 요리사를 목표로 한 삶을 살지는 않았었다. 대학교를 사진학과로 입학했던 상효는 사진에 대해서도 꽤 열정적이고 진실한 마음으로 장래를 내다봤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건 상효와 같은 대학교를 다니며 가끔씩 그런 상효를 봐왔기 때문이기도 한데, 당시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상효는 사진도 참 잘 찍었던 것 같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자면 사진을 잘 찍는다기보다 ‘사진을 찍는 일과 잘 어울렸다’ 라고 표현을 하고 싶다. 어딘가 모르게 속이 비어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느릿느릿하고 멍한 상효가, 카메라에 눈을 대고 셔터를 찰칵찰칵 누를 때마다 굉장히 감각적이라는 인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저렇게 건성건성 찍는 여유로움에서 결과물의 수준이 더 높아지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왠지 모르게 상효에게는 사진과 잘 맞아떨어지는 그런 선천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런 상효가 사진기를 내려놓고 요리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에도 나는 사실 그리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사진 찍는 활동을 하면서 음식점 주방 아르바이트도 같이 해오던 상효는 요리를 할 때 참 행복하다 라는 말을 종종 했었기 때문이다. 왠지 ‘행복하다’ 라고 말을 할 때 상효의 얼굴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좀처럼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무뚝뚝한 상효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 후로 상효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도 않고, 늘 그렇듯 자신이 옳다싶은 일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과연 상효가 이 에데라라는 음식점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요리사가 되고 싶어서 요리사가 된 것은 좋지만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것은 굉장히 치열하고 바쁜 일이라고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과 많은 손님들을 상대로 주문한 요리를 내어주는 일 역시 다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효는 요리사이기도 하지만 에데라의 사장이기도도 하니까. 이래저래 어깨가 무겁겠지만 과연 그 무게를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인지가 의문이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눈빛은 좀 더 날렵해 진 것 같긴 한데, 글쎄 일단 손님이 와봐야 알 것 같다.

  

오후 12시

어느새 12시가 되자 손님들이 에데라에 입장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계단을 걸어올라 매장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테이블로 안내를 한다. 손님들에게 메뉴판과 물병을 건네고 음식 주문을 받는다. 카운터의 포스에 주문받은 메뉴를 입력하면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 사이 손님들에게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식전 빵을 제공한다. 주방에서 요리가 완성되면 그것을 손님들의 테이블로 건네준다.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면 계산을 해주고 테이블 위의 접시들을 치운다. 딱 그 정도가 홀서빙인 나의 일이었고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적어도 두세 팀 정도의 손님들을 맞이할 때까지는 말이다.

따듯한 봄바람이 불어서 일까? 유난히 내가 일을 하는 점심시간에 손님들이 많이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나의 생각이지만 요즈음 경기가 워낙에 안 좋아서 남포동 주변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길을 활보하는 사람들이 예전만큼은 없다. 길거리의 음식점 안에는 손님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고, 새로 개점한 식당체인점도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나는 남포동을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그런 것을 눈여겨보곤 한다). 하지만 에데라에는 어느 정도 고정적인 손님들이 있는 듯 했다. 그들은 주변의 회사원들이기도 했고, 젊은 연인들이기도 했으며, 상효와 직접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음식점에 손님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두 손에 접시가 잔뜩 쌓인 트레이를 들고 있는 상황에서, 테이블에 앉아있는 손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저기요”, “저기요” 하고 나를 부를 때는 정신이 아찔해지기도 했다 (이럴 때는 넓은 매장이 어찌나 더 넓어 보이던지, 바쁘게 걸어 다니다가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무의식으로 주방에 있는 상효를 쳐다보곤 했다. 상효에게 도와달라는 내 나름의 신호 같은 것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상효는 상효대로 주방에서 요리를 해야되기 때문에 나를 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되려 돕는다면 내가 상효를 돕는게 순리에 맞는 일이었다.

상효는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하지만 특유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동작들이었다. 에데라는 점심시간보다 저녁시간에 손님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 시간 때는 홀과 주방에 일을 하는 사람들이 두세 명씩은 더 있다. 그런데 낮에는 대체로 한가하기 때문에 요즈음은 상효 혼자서 요리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가하다고 표현하기에 내가 체감하는 분위기는 실로 바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상효는 묵묵하게, 하지만 신속하게 움직이며 무탈하게 손님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맛있는 요리를 척척 만들어냈다. 그 순간 나는 상효가 자기 자신을 극한의 상황에 내몰아 수련을 하는 도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상효를 보고 있으니 바쁘다고 징징거리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았다. 바쁠 때 바쁘다고 말을 하는 순간 그 상황에 정말로 매몰되어버리는 것이다. 바쁘지만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그 공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기를 발산하는 상효처럼, 나도 열심히 나의 일에 몰입을 해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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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years ago (edited)

자신의 일을 행복하다고 느끼시는 친구분이 부러우면서 멋지네요. ㅎㅎ

묵묵히 일기를 쓰시는 @unben 님도 멋지십니다 :D

이벤트 참여 감사합니다~ㅎㅎ
보팅 꾹 누르고 가용~^^

오홋!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D

축하합니다!! 앗싸라비야!
스통의 가치 이벤트 #6 풀봇에 당첨된 10인 중 한 명이 되셨네요! 오늘도 안녕히 주무시고~ 내일 또 달려볼까요?^^

순수하게 응원만 하셔도 무조건 찾아옵니다.^^
내일 또 만나길!

우와! 나는 정말 @rokyupjung 님 응원만 했는데! ㅋㅋㅋ 감사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