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그림, 한 장의 이야기. (에드워드 호퍼 - Nighthawks)

in kr •  7 years ago  (edited)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nighthawks/6AEKkO_F-9wicw?hl=ko

시간의 호의를 받는 사람은 보통 사람의 적의를 사기 마련이다. 스스로 중얼거려 놓고, 그럴듯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혜택의 열차에서 무임 승차자는 보수를 지불한 승객의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를 더 미워하는 사람은 아마 열차의 운전수이리라. 그가 무척 피곤한 상태로 일과 외의 연장 운행을 하는 중이라면 더더욱. 문제는 그 운전수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었다. 귓속을 파고드는 들뜬 외침에 상념이 깨지자, 열차는 어느새 나의 전장으로 바뀌었다. 한쪽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어도 얄미울 판에, 눈치 없이 이런저런 요구까지 하는 승객, 아니 고객은 도저히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그 행운의 사나이가 주문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레시피보다 조금 더 묽게, 대신 분노를 조금 더 진하게 섞어서.

긴 하루였다. 맥스웰 씨를 발견한 건, 14시간을 내리 일하고 가까스로 모든 걸 정리한 직후였다. 몽롱한 상태에서, 늘 보던 때가 아닌 늦은 시간임에도 자연스레 반가운 인사가 나온 건 그가 평소에 두둑하게 챙겨주던 팁의 힘이었으리라. 그런데 막상 인사를 하고 보니 맥스웰 씨의 얼굴엔 처음 보는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안 좋은 때에 말을 붙였나 싶어 당황했지만, 나를 보고서 밝아지는 표정에 이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맥스웰 씨가 일행을 이끌고 천천히 가게로 다가오자 또 다시 바뀌고 말았다. 뒤늦게 알아차린 그의 일행은 화가 난 얼굴의 여성으로, 이 시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잠깐만 저기로 가서, 다시 이야기 해보자고.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다가선 맥스웰 씨의 목소리엔 절박함이 묻어났다. 늘 차분하던 목소리와 전혀 달라,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여유롭던 얼굴은 굳어 있었고 (그래서 5년은 더 나이 들어 보였는데), 인자함이 비킨 그곳엔 질문을 거부하는 단호함이 어려 있었다. 닫으려던 입구에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자 맥스웰 씨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행과 가게로 들어섰다. 알고 지낸 동안 내내, 어떤 무리한 요구도, 싫은 소리도 한번 한 적 없던 그였기에 막연히 중요한 상황이겠거니 믿고 가게를 연장 운영하는 것 외에 내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아직도 연 곳이 있구나! 약간은 경박하고, 불안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두 남녀의 다툼이 잦아들고, 비로소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차분한 어둠을 흐트러트리며 다가오는 붉은 얼굴에선 밭은 숨이 뿜어져 나왔고, 거기엔 달콤한 악취와 숙성된 알코올 냄새 그리고 불쾌한 온기가 뒤섞여 비틀거리고 있었다. 난감한 마음이 드는 것보다 먼저, 반사적으로 시선이 테이블을 향했는데, 맥스웰 씨는 대화가 끊긴 것이 불쾌한 듯 보였고 동석한 아내의 –드문드문 들려오는 대화를 통해 동행이 아내임을 알게 되었다. – 얼굴에선 이 방해자에 대한 견해를 읽어낼 수 없었다. 갑작스런 불청객에게 영업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맥스웰 씨의 아내마저 일어서버리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물거품이 될 테니) 망설이는 사이, 그는 늘 오던 가게인 양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엉덩이를 붙이고 말았다.

어쩐지 오늘은 운이 따른단 말이야.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을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리자, 문득 울고 싶어졌다. 그의 얼굴이 붉어질수록 맥스웰 씨의 얼굴은 창백해지는 것 같았다. 슬쩍 훔쳐본 맥스웰 씨의 아내는 지루해보였다. 괜히 내 얼굴마저 달아올랐다. 그러다 서서히 (그러나 술보다는 빠르게), 혼잣말도, 대화도 줄어들었다. 가끔 두 남자의 목소리가 부딪치며 깨어진 침묵은, 서로 짐짓 모른 체 하므로 다시 견고해졌다. 어디보다 편안한 장소라고 자부했던 나의 가게는 불편한 시간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미 깨끗해진 유리잔을 그저 닦고, 또 닦는데, 혼잣말을 멈추고 차분해진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는 어깨를 들썩였다. 그는 더 이상 시간의 호의를 받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피로는 막처럼 우리를 감쌌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에 박제된 그림처럼 그대로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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