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학교 선배들과 심심해서 만든 소모임에서 쓴 짧은 연애소설을 올려봅니다. 단편 소설이라고 할 만큼도 안 되는 분량인데 이건 꽁트라고 해야 할까요? ㅎㅎ
5년 전에 쓴 글이네요~ 서투른 글이지만 그땐 사회생활에 지쳐 있었어요.(뭐 지금도 지쳐 있지만요)도피처 같은 느낌으로 아주 가끔은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쁘면 정말 대충 쓰고 ㅎㅎㅎㅎㅎ 항상 열심히 했던 선배 언니에게 갑자기 미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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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이었다. 깜깜했다. 어느새 부터인가 빛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 빛이 없어 다행이었다. 내 발갛게 상기된 뺨마저도 어둠이 가려주었으니까. 술에 취한 것보다 더, 많이 빨개졌을 텐데.
“엄마가 올 시간이야.”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역시나 희미였다. 어라. 어느 순간부터 반말이다. 불과 10분 전만 해도, 우리의 입술이 닿기 전인 10분 전만 해도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던 아이였는데. 하긴, 뭔 상관이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여전히 입대를 두 달 반 앞둔 스물 하나. 술값 마련을 위해 과외를 뛰던 휴학생, 잉여로 남아 있을 뿐이다. 내 술값의 원천이던 꿀과 같던 달콤한 알바, 385명 중에 300등 하는 희미의 과외선생에서 곧 해고될 예정인 청년. 혹은 소년.
삼십 분 간격으로 음료수를 들고 오는 희미의 엄마가, 잉여 과외선생이 못 미더운지 항상 문을 5센치 정도 열고 나가는 희미 엄마가, 눈치 백단의 아줌마가 모르길 바라는 건 너무 나의 바람일 테지. 슈퍼에 다녀온다고 나간 사이 정전이 되었기에 망정이지.
차라리 잘 된 거야. 날이 갈수록 빨개지는 희미의 입술, 이 앙큼하기 그지없는 나의 19세 제자를 감당하기엔 21세 모태솔로인 나는 너무 순진했으니까. 밤마다 꿈에 나오는 내 예쁜 제자는 예비 군바리에게는 과분했으니까.
입술이 뜨겁다. 얼굴은 더 뜨거울 텐데. 어쩌지?
희미는 태연하다. 이제 어둠이 익숙해졌는지 더듬더듬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나와 마주보고 앉아있던 책상 반대편으로. 핸드폰을 들어 내장된 카메라에 달린 플래쉬를 가동시킨다. 하얗다고 할까 파랗다고 할까. 어쨌든 희미한 그 불빛으로 거울을 찾더니 세상에. 그 와중에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입술 화장을 다시 한다. 희미한 불빛으로도 알 수 있다. 입술 위에 저것이 몹시도 빨갈 것이라는 것을.
희미가 나를 본다. 내 예쁜 제자였던, 희미가 나를 본다. 불빛을 비추고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매만진다. 아마 뻗쳐 있었나 보다. 희미 손이 닿은 곳은 고작 머리카락인데. 뜨겁다. 그나저나 진짜 어쩌지?
정전이 되었고 희미가 양 손으로 내 볼을 잡는 것을 피하다가 벽에 한 번 부딪히고 머리를 잡혀서, 잡혀서.... 미치겠다.
그때 불이 들어왔다. 희미의 시선이 꽃힌다. 배시시 웃는 희미. 예쁘다.
“티 나. 엄마 오면 바로 알겠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야, 희미야. 문제는 내가 널 마주볼 용기가 안 나. 죄를 지은 것처럼. 내가 눈을 못 맞추겠어.
“오빠 짤리겠다. 그치?”
“아마도.”
삐비비삐빅. 현관문 여는 소리. 희미의 엄마다.
“희미야. 떡볶이 먹어. 어차피 정전 핑계로 공부 안 한다고 선생님 괴롭힐 거 아니야? 선생님도 오늘은 접고 간식이나 들고 가요. 어여 나와. 나쁜 남자 할 시간이야.”
“가자.”
희미가 일어나 내 손을 잡는다. 어라?
“엄마도 알아. 내가 오빠 좋아하는 거.”
“야, 희미야. 그래도...”
질질질. 내가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걸까, 도살장에 끌려가는 걸까?
현관에는 고소한 튀김 냄새와 떡볶이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꿀꺽. 이 와중에도 식욕은 도는구나.
“엄마. 우리 오빤 오징어 좋아하니까 엄만 먹지 마. 알았지?”
희미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리고 희미에게 잡힌 내 손을 보고 다시 내 얼굴. 빨갛기만 할텐데. 사과마냥.
“희미 너. 그렇게 선생님 놀리지 말랬더니. 공부는 안 하고, 너!”
“놀리는 것 아니야. 말 했잖아. 좋다고.”
“내 딸년이지만 너 진짜!”
콩 하고 쥐어박히는 희미. 쥐어박는 엄마. 그런데 왜 내 머리가 아플까?
“일단 앉아. 떡볶이 먹어. 엄마 송중기 봐야 해. 그러니까 조용히 해. 선생님 떡볶이 먹어요.”
“네.”
떡볶이를 먹는다. 떡볶이를 먹는다. 떡볶이를 먹는다. 불쑥. 입 앞으로 다가온 오징어 튀김. 희미의 손. 희미의 엄마를 본다. 눈치를 본다.
“선생님.”
“네? 네?”
“주는 건 먹어요.”
“네 알겠습니다.”
덥석 문다. 시키는 대로.
“다음 주부터 안 와도 되요.”
켁 하고 목이 막힌다. 그렇지 뭐.
“네”
“다른 과외 자리 남학생으로 알아 봐 줄게요. 기말고사 대비해서 과외선생 찾는 중 3엄마 알아요”
“감사합니다... 네?”
“과외 열심히 해서 우리 희미 수능 합격 엿도 사주고, 수능 끝나는 날 맛있는 음식 먹이고 택시 태워서 집에 들여보내 줘요. 술 같은 건 아직 먹이지 말고”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너무 자주 만나지는 말고, 주말에 만나도 너무 늦게 들여보내지는 말아요. 너무 어린 남선생이라 과외를 안 맡기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네.”
“죄송합니다.”
“내 딸년이지만 저 계집애를 누가 말려. 말리면 또 집 나갈걸. 그냥 선생님이 군대 가기 전까지 잘 돌봐줘요.”
“예. 잘 알겠습니다.”
“희미 너는 들어가. 원대로 해서 시원하지 너는?”
“몰라~ 나도 송중기 볼래.”
“망할 계집애....”
“오빠, 이것도 먹어, 맛있어.”
“야.. 희미야.”
이러면 오빠가 부끄럽잖니?
“희미랑 오빠랑 오늘부터 1일이다~”
배시시 웃는 희미. 내 정신은 히말라야로 간다. 간다. 내 머릿속은 멍해지고, 멍해지고.
“적당히 해라, 좀. 선생님 곤란해 하시잖아. 늬 선생님은 너처럼 되바라진 사람 아니야.”
희미의 엄마.
“선생님. 오늘은 그만 가 봐요. 내가 못 봐주겠어요. 내 딸년을.”
“아, 네. 네. 잘 먹었습니다.”
쏜살같이 가방을 찾아 맨다. 현관문 앞에서 구십 도로 꾸벅 인사를 한다.
“어머님 감사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준우 학생이라고 부를게요. 말도 편하게 하고.”
“네. 네. 감사합니다. 어, 저기... 죄송합니다.”
“알면 됐고.”
흠칫. 무섭다. 역시.
“엄마 나 오빠 일층까지만 바래다주면 안 돼?”
희미야. 그러지 마. 오빤 오늘 삼 년은 늙어버린 것 같다!
“희미야. 엄마가 여자는 비싸게 굴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
“알았어. 그럼 오늘은 오빠 혼자 가.”
“어, 으응.”
현관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기다린다 땡. 문이 열리고, 내가 걸어 들어가고, 문이 닫힌다.
하아아아아아. 한숨만 나온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머리를 쥐어 뜯어보지만 답은 없다. 땡. 일층이다. 문이 열린다. 걸어 나간다. 걷는다. 걷는다. 가을바람이 볼에 닿는다. 이제 좀 식어간다. 딩동. 카카오톡. 희미다.
“오빠! 군대 가도 나 기다릴게~”
찬바람이 볼을 스친다.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좋다. 좋다. 기분이 좋다.
“믿어도 되지? 잘 자. ^^”
잘 자. 희미야. 내 예쁜 여자친구야.
그런 사랑이 추억이 있어 아름답다.
답당 왔다 읽고 팔로우하고 보팅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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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참 서투른 글인데 ㅎㅎ 쓸때는 신났던 기억이 나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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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요 ! 엄마 엄청 쿨하네요.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네요.
이글을 먼저보고 엄마글을 볼걸 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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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울다가 웃으면...... 아니되어요!
요건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ㅎ 모델은 제 친구 어머님이세요~
친구 대학 갈 때 ㅎㅎㅎ 불러서 연애학 특강 해주셨다는 이야기에(19금까지~) ㅎㅎ
친구가 좀 힘든 연애를 할 때 그거 아니라고 끊어내신 분도 친구 어머님~
세상 엄마들은 다 멋져요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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