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정말 울타리일까?

in kr •  6 years ago  (edited)
  • 저자 김희경은 누구?

2018년 1월 19일 문화관광체육부는 김희경 인권정책연구소 이사를 차관보에 임명했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김희경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넘어가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동아일보 차장까지 역임하며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냈으며, 그 뒤 사회복지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까지 지냈다. 차관보로 임명받기 전까지 저자는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과 인권정책연구소의 이사를 맡고 있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단체에서 직접 현장에 발을 담그며 느꼈던 감정과 깨달음, 그간의 본인만의 생각들을 잘 정리하여 이 책을 발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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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저자 김희경은 사회복지단체에서 활동하며 아동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한국 사회에서 '아동'이라는 한 인간을 대하는 것이 유감스럽게 폭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출생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2016년 한 해에만 302명의 갓난아기는 길바닥과 베이비박스, 심하게는 화장실에다가 버리고, 해외로 입양 보내는 아이도 334명으로, 거의 하루 한 꼴로 버리거나 입양을 보내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며 근본적인 물음이 저자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가족'이라고.

한국 사회에는 뿌리 깊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대부분 사람들은 부모-자녀 관계로 이루어진 것을 쉽게 생각한다. 부모가 만나 '결혼'하여 이쁜 자녀를 낳고 사는 것만이 정상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사고가 우리 사회에 각종 편견과 차별, 멸시 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를 벗어난 가족형태는 모두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그 정상가족 안에서도 지나치게 가부장적 위계가 작동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남자라면 모름지기... 여자는 응당 그래야 하지, 라는 인식이 자신도 모르게 작동하여 아이들에게도 내면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나는 가족 내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인 아이를 중심에 놓고 우리의 가족, 가족주의가 불러오는 세상의 문제들을 바라보자고 제안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 고 서두에 밝히고 있다.

정상이어야만 하는 가족, 그리고 믿을 건 우리 가족뿐이야, 하는 가족주의가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책은 크게 네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가족 안을 들여다보면서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체벌' 행위와 아이에 대한 과보호를 꼬집고 있다. "아이는 내 소유물이야. 그러니 나(부모)는 때려도 돼."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을 향해 저자는 조목조목 반박하며 어떠한 종류의 체벌도 아이에게는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고 이야기하고 있다.
두 번째 챕터는 가족 바깥을 내다보면서 위에 언급했듯이 '부모-자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정상가족 범주에서 벗어나는 가족 형태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그들을 차별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미혼부모를 예시로 삼아 이야기한다.
세 번째 챕터는 한국에서 '가족'이 왜 이렇게도 중요한지,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신념이 왜 생겨났는지를 서술한다. 학교와 직장, 군대, 대학 등등 여러 집단에서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 중 가장 흔한 것은 '우리는 가족' '우리는 가족처럼 친해'와 같이 어딜 가든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게 가족이라는 단어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주의가 왜 이렇게도 심한 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마지막 네 번째 챕터에서는 이러한 모든 문제가 '가족'에서 비롯됐다면, 그렇게라도 '가족'이 문제라면 어떤 대안이 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궁극적으로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지를 서술하며 마무리한다. 특히 스웨덴의 국가의 정책, 역할에 대해 심도 있게 이야기한다.

  • 아이 버리기를 조장하는 국가

종종 SNS와 뉴스에 등장하는 주제는 10대 청소년이 소위 '사고'를 쳐서 원치 않게 임신을 했고, 낙태하기에는 겁이 나서 결국 낳았지만 키울 능력이 없어 아기를 길거리나 심하게는 화장실에 몰래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특히 SNS에 올라오면 댓글에는 많은 의견이 달린다. 대부분은 10대 청소년이 책임 의식도 없고 키울 능력도 없는데 무분별한 성관계를 가져 아기를 낳아 버렸다, 며 아기의 부모를 욕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사건과 댓글을 보며 안타까웠다. 만약 국가가 이를 책임져줄 수만 있다면 어떨까. 이들이 정상적인 가족이 아니라는 어두운 시각을 걷어내고 이 또한 가족이라며 인정해준다면 어땠을까. 꼭 결혼이라는 제도 하에서만 낳고 기르는 것이 옳은 것일까? 국가가 모든 걸 인정해준다면, "10대 청소년들이 무분별하게 성관계를 가지고 아기를 더 버릴 것이다."라는 다른 쪽 의견이 설득력이 있을까.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한국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정부는 아이(만 13세 미만)를 홀로 키우는 저소득 미혼모에게 월 12만 원(엄마가 청소년일 경우 17만 원)의 양육비를 준다. 만약 미혼모가 직접 키우기를 포기하고 아이를 다른 양육시스템으로 보낸다고 해보자. 입양을 보낼 경우 입양 가정은 수수료 270만 원을 지원받고 매달 15만 원(만 14세 전)의 양육 수당과 20만 원의 심리치료비, 100% 의료지원을 받는다. (P122-123)

단순 비교지만, 어쨌든 국가는 부모가 아기를 직접 책임지고 양육하려고 할 때보다, 다른 방법을 찾을 때 더 많은 서비스를 지원한다. 이는 국가조차 미혼부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성숙한 미혼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정상적으로 가정을 이룬 곳으로 아기를 보내는 것이, 국가는 옳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언급되듯이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나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혼외출산율이 출산율의 절반을 차지한다. 꼭 우리나라는 연애 잘 해서 결혼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정당한 자격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 한국은 왜 이렇게 가족주의가 심할까?

서구는 정말 긴 호흡을 가지고 근대화를 이뤄냈다. 길게는 300~400년 짧게는 100~200년이다. 우리나라는 고작 50년이다. 일제강점기를 겪고 해방을 맞았지만, 남과 북이 갈라져 전쟁을 치르고 회복할 틈도 없이 독재정권이 들어서 긴 기간 동안 자유를 억압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비로소 독재가 물러섰다. 이러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잡아다가 고문을 저지르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대했다. 복지시스템은 발전하지 못했고, 결국 가족끼리 똘똘 뭉쳐 그 시간을 버텨냈다. 형제가 여럿 있지만, 남자 형제만 대학을 보내고 엄마와 딸들은 오롯이 그 뒷감당을 해야 했다. "너는 공부만 해라. 우리 가족은 너만 보고 있다."는 말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었다. 비로소 87년 이후 의료보험이 점진적으로 도입, 시행되었고, 국민연금법도 시행되었다. 그렇게 공적 시스템이 꽃을 피려고 할 때쯤 IMF 경제위기가 와서 많은 기업이 파산을 면치 못했고 그 과정에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은 한순간에 쫓겨났다. 국가는 경제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것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가족에게 손을 벌렸다. 많은 국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그렇게 국가는 국민을 책임지지 않았고, 가족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해결사 노릇을 수년간 해왔다. 그래서 '믿을 것은 가족뿐'이라는 집단 무의식이 생겨났고 문제가 발생하면 가족 먼저 찾게 됐다. 부모는 더욱 아이들의 '매니저 엄마'가 되어 아이 앞에 놓인 장애물을 걷어내 주고 깨끗한 길을 닦아주었다. 과보호 속에서 살게 되는 아이는 커서도 의존적인 성향을 갖게 되고 이는 가족주의가 더욱 공고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가족주의가 심해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우리 가족 이외에 가족은 경쟁하고 배척한다. '철수네 집' '영희네 집'에 '철수'와 '영희'는 왜 이렇게도 잘 나서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식과 비교를 하고 자존심을 긁어놓는지... 물론 자기 자식이 성공하고 탄탄대로만 걷기를 바라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아이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고 부모 뜻대로 크길 바라는 건 욕심을 넘어 이기적으로 보인다. 책에도 언급됐지만, 영화 <4등>에서 엄마는 수영하는 아이의 성적이 오른다면, 수영 코치가 자신의 아이를 심하게 폭행해도 그것을 묵과하고, "메달로 그 상처를 가릴 거야"와 같은 잘못된 욕망으로 커질 수 있다. 또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보면 손가락질하고 편견을 갖고 자기들끼리 상상의 날개를 펼쳐 그 사람을 빠져나갈 수 없는 코너로 몰아세우는 모습이 이제는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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