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걷는 밝은 대낮의 거리는 한산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의 음식냄새가 손님들을 유혹하기 위해 사방에서 분주하게 손아귀를 펼쳐대고 있었다. 그 모든 냄새들이 한데 뒤섞여 내 후각을 건드렸을 때, 나는 음식물이 뒤섞인 액체를 마신 것 마냥 구역질이 일었다.
그 때문에 나는 벽지를 살만한 곳을 얼른 둘러보고, 재빨리 그곳으로 대피했다.
가구 코너에서 가구를 추천하고 있던 한 판매원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찾으세요." 나는 "벽지요" 하고 대답했다.
판매원은 친절한 태도로 벽지코너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고, 다시 자신의 손님들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판매원이 가리킨 곳에는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부부, 아이의 손을 잡고 벽지를 고르고 있는 여자, 엄마의 손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아이, 벽지를 추천해주고 있는 또 다른 판매원이 보였다. 나는 그들을 헤치고, 동물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벽지를 집어들어,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계산하고 나서 근처에 위치해 있는 문구점에서 풀과 머리핀을 사고, 아이의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이의 집으로 돌아와보니 예상했던 대로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 했다. 나는 방 안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벽에 달라붙어 있는 곰팡이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곰팡이들은 이제보니 어떠한 형상을 그려가고 있었다.
형체가 일그러진 검은색 얼굴이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벽지 중간중간에는 곰팡이가 피지 않은 하얀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이 내 눈에는 살갗이 떨어져나가 드러난 얼굴뼈로 보였다. 그 소름끼치는 얼굴이 앞에 서 있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엄마가 일을 나가면 아이는 이 방 안에서 저 눈길을 혼자서 받아내고 있어야 했다.
나는 그 곰팡이들의 예술작품을 끄트머리부터 모조리 뜯어냈다. 그리고 새로 사온 벽지를 방바닥에 펼치고, 풀을 덧바른 뒤, 벽에다 갖다 붙였다. 능숙하지 못한 실력으로 벽지를 붙이느라 벽이 울퉁불퉁하긴 했지만, 곰팡이가 뒤덮혀있는 벽지보다는 훨씬 나아보였다. 그저 벽지만 새 것으로 붙였을 뿐인데, 새 집에 온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이가 바뀐 방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들떳다.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