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in kr •  6 years ago 

"죽기는 왜 죽냐아아."
할머니가 울부짖던 소리였다.

그 때의 할머니는 7살이었던 나보다도 더 어린아이가 되어서는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얼굴을 박은 채 울고 있었다. 자살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영정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단지 할머니가 울고 있으니 나도 눈물이 났을 뿐이었다.

그 인간은 나에게 열흘 밤만 할머니 집에 있어달라고 말했었다. 어렸을 때 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도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아무리 내게 혹할만한 조건을 내걸었어도 나는 그에게 울며불며 따라가겠다고 떼를 썻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내 허리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바람에 그를 따라나설 수는 없었지만, 나는 매일 밤 그에게 돌아올 날짜를 상기시켜주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 열흘이 그 때의 내게는 끝이보이지 않는 영원처럼만 느껴졌었다.

그는 그 열흘이 지나고 나면 또 다시 열흘만 더 기다리라고 나에게 통보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전화기 건너편에 있을 그 인간에게 원망어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온다고 했잖아요. 아빠!"

그는 내가 그렇게 울부짖을 때마다, 이번에는 정말로 데리러 가겠다고, 그 때는 네가 좋아하는 놀이공원도 데리고 가겠다고 말하면서 나를 위로했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잠을 자고 있던 나를 급하게 흔들어 깨웠다. 순간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니 평소에는 표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던 할머니의 얼굴이 공포에 잔뜩 질려있었다.
이마에 돋아난 핏줄의 떨림은 관자놀이를 지나 입술까지 전해져내려오고 있었고, "병원에 가야한다. 병원에."라는 말을 되풀이하던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나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한참 후에야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할머니는 자다 일어나 비몽사몽한 상태인 나에게 재빨리 옷을 갈아입히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보니 그토록 기다렸던 그 인간이 보였다. 이상했던 점은 그가 입에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었다는것, 할머니가 침대에 반듯이 누워있는 그를 보고선 오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의사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와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전했고, 할머니는 그 의사의 옷을 붙들고는 놔주지 않은 채 울부짖었다.

그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이내 옆에 있던 기계에서는 '삐'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할머니의 통곡소리에 묻혀 이내 들리지 않았지만, 내 귀에는 그 소리가 이명처럼 계속해서 멤돌았다.

할머니는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은 부스스했고, 차림새는 추잡스러웠다. 내가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어도 할머니는 나에게 눈길한 번 주지 않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 울면서 누군가에게 호통을 치곤 했는데, 그 대상이 장례식장에 있던 그의 영정사진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도무지 이상하게만 보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할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장례식장을 곧장 나와버렸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면을 바라보고 앞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밑에서 올려다본 할머니의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표정도 담아내고 있지 않았다. 다만, 입술을 꽉 깨물고 턱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울지않는 할머니의 얼굴을 힐끗힐끗 봐가면서 발걸음을 맞추어 집으로 걸어갔다.

어린 나였다고 하더라도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로도 나는 무의식중에 계속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다. 밤만 되면, 어김없이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댔고, 그가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으면, 평소 때처럼 전화기 앞에 주저앉아 울곤 했으니 말이다. 전화기 안에서는 여전히 아빠의 휴대폰으로 신호가 가고 있는데 마침내 들려온 목소리는 아빠의 목소리가 아닌 어떤 낯선 여자의 목소리라는 것이 그 때의 나로서는 애통하게만 느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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