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
남편과 처음으로 가정을 꾸리게 되었을 때에도, 남편이 투병끝에 일어나 다시 새로운 발돋움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나는 이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비로소, 나의 뱃속에 아기가 생기고,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는 때에는 그런 단어로는 표현하기 부족한 어떠한 감정이 나를 가득 채웠다.
나날이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 숨막히는 행복을 느꼈다. 남편도 뱃속의 아기에게는 시도때도 없이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곤했다. 그는 내 배에 입을 맞추기도 하고, 볼을 갖다대고 비비기도 했다. 어떤 날은 청진기를 사들고 와서 뱃속 아기의 태동소리를 듣기도 하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옷을 사들고 와서는 내 배에 얹어놓기도 했다.
나는 꿈꿔왔다. 태어난 아기가 눈을 꿈뻑거리는 그 순간을, 아이가 '엄마'하고 운을 떼는 그 순간을, 아이가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아이가 글씨를 읊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잠든 아이에게 입을 맞추어주는 그 순간을, 아이를 학교까지 바래다주는 그 순간을,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는 그 순간을, 아이가 첫 직장을 갖게되는 그 순간을, 아이가, 아니 이제 그 처녀가 결혼하는 그 순간을, 그 기쁜 순간 내가 복에 겨운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을, 그녀가 아기를 잉태하는 그 순간을, 그녀를 키우며 내가 느껴왔던 것들을 그녀가 느껴보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나의 피붙이들이 나의 관위에 흙을 한 삽씩 끼얹어주는 그 순간을, 내가 가져보지 못했던 평범한 가정을, 내가 겪어보지 못한 그 평범하기 짝이없는 행복들을 나의 아이에게는 고스란히 느끼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또 다시 콧잔등이 찡해진다. 술집 사장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켰다. 오후 2시. 무심결에 시간을 확인해보니, 곧 있으면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휴대폰을 끄고 신발을 신은 뒤, 아침에 아이와 걸었던 그 길을 다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