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남은사람들 - 병원비

in kr •  6 years ago 

이제 그 기침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지만, 남편이 침대에 누워있는 그 익숙한 모습이 내 눈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은 나와 연애를 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몸이 허약했었다.

데이트를 하기로 되어있던 날에는 뜬금없이 병상에 누워있어서 병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데이트를 대신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날에는 하루 종일 연락이 안되어 집을 찾아가보니 집 안에 홀로 쓰러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날의 몸 상태가 별로였을 뿐이라고, 그것들을 무심코 넘겨버렸다. 이후 남편이 오랫동안 몸져누우리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할 수 없었다. 항상 묵묵하게 웃음을 내보이던 남편이 내 눈에는 그저 믿음직스러워보였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번듯한 직장을 잡고나서, 그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나는 그때까지 살던 할머니 집을 곧장 나와버리고, 남편과 가정을 꾸렸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하루는 내가 그 간 꿈꿔왔던 일상들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면 그가 바로 옆에서 편안하게 호흡하고 있었고, 그를 살며시 흔들어 깨우면, 누워있던 그가 옆에 앉아있던 나를 와락 껴안고 다시 이부자리로 나뒹굴었다. 그가 몸을 일으켜 직장에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면, 나는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했고, 그가 아침밥을 먹고 회사로 나서기 전에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볼에 키스를 한 뒤, 넥타이를 감아주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현관문 밖으로 나갔을 땐, 요리책을 보면서 그가 좋아할만한 음식을 계획하며, 가끔은 시장으로 나가 그 음식의 재료를 사기도 했다.
남편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그 음식들을 맛보며 하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평범한 일상들이 나에게는 평범하지만은 않은 행복들이었다.

그 상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것들이 공기를 마시고 내쉬는 것처럼 당연한 것쯤으로 여겨질 때 즈음, 남편은, 나를 껴안으며 몸을 일으켜 세우던 남편은, 이부자리에 널부러져 일어나질 못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 아니 부족한 단칸방 살림에 남편의 병원비를 댈 돈은 약간의 저축해 놓은 돈과 집 보증금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 보증금마저도 남편의 병원비로 사라져갔을 때, 나는 일을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남편에 대한 포기를 의미했다. 그리고 남편의 죽음을 의미했다.

남편만을 믿고 올라온 도시생활에 남편이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기술도 없고, 학력,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일은 그다지 많지 않아보였다. 내가 처음에 일을 하기 시작한 곳은 병원 길 건너편의 식당이었다.
그 곳에서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나르고, 시간이 남으면 설거지를 했다. 청소를 하고, 음식물을 치우고, 손님들의 핀잔을 반항없이 들어주었다.
그렇게 하루 열 두시간을 일하고 나면 나는 몸을 이끌고 다시 남편의 병실로 향했는데, 그것은 간병인을 따로 둘 돈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더이상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끔은 할머니와 살던 옛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병상에 앉아서 창문너머로 내가 일하는 식당을 바라보고 있었을 남편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 때문에, 감히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수가 없었다.

남편의 병상 옆에는 보호자가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있는 간이 의자가 있었는데, 나는 그 곳에 누워 잠을 잤다. 그렇게 번 돈으로 남편과의 최소한의 '생존'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남편이 병실에서 한 번 더 졸도한 뒤로는, 그 '생존'도 손쉽게 붙잡고 있을 수 있는 따위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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