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지 모르고 이해를 못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고, 그래서 북한이 보이는 감정을 전형적인 반미 테러리스트 국가의 전형적 반응 ( 사실 이 자체가 전혀 말도 안되는 넌센스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그랬는지 묻고 싶다 ) 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서 이 기록을 소개한다.
북한이 그러는 데는 충분히 명백하게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공중폭격을 실제로 당해봐야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걸 이해할 필요는 있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851342.html?_fr=mt2
1952년 7월11일 평양 하늘에 1250여대의 미군 폭격기가 떴다. 한국전쟁 발발 이래 최대 규모의 공습이었다. 평양은 전쟁 초기부터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폭격을 받았지만, 이날의 폭격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 폭격은 11일 아침부터 12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낮에만 1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밤에는 2000여명의 사망자와 4900여명의 부상자 혹은 행방불명자가 나왔다. (<폭격-미 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에서)
당시 <노동신문>은 분노에 찬 어조로 주택지구의 피해상황을 전했다. 거기에 부모형제 6명을 모두 잃었다는 한 여성의 절규가 실려 있다. “자그마한 토굴들만 밀집해 있는 이곳을 놈들은 군사적 목표라고 한다. 죽은 부모와 오빠, 동생의 원쑤인 미제국주의자들에게 어찌 죽음을 주지 않고, 참을 수 있겠는가! 죽음은 죽음으로,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 오늘날 북한의 반미 구호에 담긴 증오와 적개심의 원형을 보는 듯하다.
공중폭격은 ‘증오의 기억’을 새긴다. 1939년 중국을 침공한 일본군의 충칭 폭격을 목도한 미국인 저널리스트 에드거 스노는 공중폭격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를 이렇게 썼다. “공습은 급강하 폭격기를 피하기 위해 지하실에 처박히고 들판에 얼굴을 파묻어본 적이 없거나, 자식의 몸에서 떨어져나간 머리를 찾는 어머니를 본 적이 없거나, 혹은 불에 타버린 학생들의 고약한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개인적인 증오를 일으킨다.”
ps. 원인을 파고 들어야 한다고 가서 결국은 전쟁원인자가 북한이 아니냐 하고 말하면, 그럼 그게 북한정권이지, 일반 시민이 한거냐고 묻고 싶다. 비 민주적 정권이 일으킨 문제를 과연 일반 시민들이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 책임져야 하는가?
그래서 현대전에서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최대한 자제하는 원칙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