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법성게⟫ 이야기 #7 "일미진중함시방/일체진중역여시"

in kr •  7 years ago  (edited)

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한 티끌속에 시방세계를 머금었고,

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일체의 티끌 속도 또한 다시 그러해라.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앞의 두 구절에서 '하나'와 '전체'가 다르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제 구체적으로 공간개념에 이를 적용시킬 수 있다. 微塵이란 말 그대로 '미세먼지'다. '아주 작은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사다. 대개 '티끌'이란 표현으로 많이 번역한다. 7세기에 미세먼지라니.

微는 아주 작다는 뜻인데 중국사람들이 생각했던 아주 작은 단위다. 미세微細먼지 덕분에 감이 온다. 물론 더 작은 걸 표현하기 위해선 불교에선 극미極微라고 한다. 미세먼지도 아직 그 명확한 명칭에 대해서 논란은 많지만 어쨌든 상대적인 개념으로 초미세라든지 극미세라든지 하는 표현을 쓰는것 처럼.

반대로 공간상의 '가장 큰 것, 혹은 모든 것'을 표현하면서는 시방이란 표현을 썼다. 동서남북의 사방과 그 사이의 간방이면 사방팔방이다. 여기에 위-아래의 방향을 합하면 사바의 모든 것을 포함하니 가장 큰 것, 혹은 전부가 된다.

여기서 일은 영어로 치면 관사 a이고, 함은 포함하다, 함축하다의 그 함이다.

"하나의 티끌속에 시방이 다 들어있다"

무엇이 다 들어있다는 말일까. 어떻게 그 방대한 것들이 알 수 없는 하나에 다 들어있단 말일까.

마이크로 세계에 대한 오래된 아이디어들을 들여다 보려면 우리는 티끌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론을 다른 분야에서 가져와야 한다. 서력기원 직후 초기의 불교철학자들은 물질을 근본적인 단위로 쪼갤 수 있고 이것을 자세하게 분석하는 방법으로 물질들의 성질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현미경도 없었고 더구나 그 입자를 작은 단위로 쪼갤 수 있는 기구도 없었다. 그들의 철학은 물리에 대한 것이었어도, 오직 관념상으로만 존재한 분석철학이었다. 그들은 미세한 입자, 티끌을 동물의 털과 곡물 등에 비유해서 단위를 만들었다. 그 한 부분을 들여다 보자.

단위는 7개가 한 개다. 구조는 가운데 하나의 입자가 있고 그 사방과 상하에 같은 입자 하나씩, 그러면 모두 7개가 된다.


1개= 7개 단위
보리알서캐 (이 유충)
서캐극유진 (밝은 문틈을 통해 보이는 먼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
극유진소털먼지 (소털끝에 올라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작은 것)
소털먼지양털먼지 (")
양털먼지토끼털먼지 (")
토끼털먼지물티끌 (물의 사이를 통과가능한 물질)
물티끌금티끌 (금의 사이를 통과가능한 물질)
금티끌'미세한 것'
'미세한 것'극미

아, 정말 미세먼지의 향연이다. 극미는 7개가 하나의 미를 만들며, 극미 7개는 분해해 버리면 그 본성을 잃어버리고 공이 된다.

이상이 아비다르마 철학에서 말하는 물질계에 대한 분석인데 즉 메시한 물질들이 모여서 거대한 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작은 극미에 극미가 끊임없이 모여서 나타난 현상계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붙어있는 세계나 떨어져 있는 세계는 떨어져 있으나 붙어 있으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먼지, 아니 먼지만큼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그러니 전체의 어떤 것을 작은 입자가 굳이 포함할 필요조차 없다. 다른 여러가지 현상들은 작은 입자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른 것이지, 입자 자체가 다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시방을 포함하고 있다는 그 일미진 一微塵, 혹시 '그 하나의 티끌'이 어떤 특정한 하나를 말하는 것일까, 법성게는 없어도 될 한 구절을 추가한다.

一切塵中亦如是
'그 하나의 티끌' 뿐만 아니라 모든 티끌에도 다 시방이 포함된다.

전체와 부분의 둘로 구분해 놓은 우리의 관점은 그러나 이 둘을 하나로 보지는 못한다. 분해하는 능력은 있는데, 조립하는 기술은 없는게 에러다. 우리의 관념은 그렇게 잘 쪼개서 구분할 줄 아는 능력만 있고, 왜 그것이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는 알기 어려운 것일까.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로 만들려면, 다시 분해라는 상대적 개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방의 세계를 티끌 상태의 입자로 분해하나, 설령, 분해된 입자하나에 전체가 다 들어있다는데까지 인정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전체와 부분이란 관념이 나누어진 상태라 이미 상대적 관념이 되어버린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화엄철학에선 깨달음까지 아마도 3아승기 겁이란 엄청난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법성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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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용변부동본과 같은 의미인거죠? 하나=전체 공=색
본은 변하지않고 쓰일때 여러가지로 변한다 ~ 종교는 다르지만 본은 본은 같겠죠?

@alexshin님^^ 저희들은 불교철학 전공자들이라 ⟪천부경⟫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저희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같은 측면도 있고, 다른면도 있습니다. '往來用變’‘不動本’으로 이 움직이지 않는 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측면에선 이 작용과 본질이란 방식에서 같다고 보는 것이니까 ⟪법성게⟫와 다르지 않습니다만, '一'과 '十方'의 관계는 양쪽 모두 근본적인 것과 지말적인 구분이 없습니다.

'본'이 중심이고 '용'이 지말작용이란 중국의 체용론과 ⟪천부경⟫이 그 궤를 같이 한다면, ⟪법성게⟫가 말하는 '용'에 대응시킬 수 있는 개념 '시방'은 그 각각이 '본'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용'이 아니라 그 자체가 그대로 '본'입니다. 즉, ⟪법성게⟫에선 '용=본'이 아니라 전부 '본'으로, '용'이 없습니다. 용이 없기 때문에 그 상대적 개념인 본도 설정할 수 없게 됩니다. 즉 본이란 개념도 무의미해 집니다. 이런측면에선 ⟪천부경⟫의 用變不動本과 ⟪법성게⟫의 一微塵中含十方은 큰 차이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닺 댓글이 늦었습니다.
불교철학자라하믄 대학교에서 전공을 하시는건가요?

@alexshin님^^ 안녕하세요. 넵 그렇습니다. 대학원에서 전공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엄밀하게는 '철학자'는 아니고 '철학 전공자'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아 그래서 정말 극에 달하는 미세한 디테일을
창조해내고, 또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까지
엄청난 내공이 따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mintvilla님^^ 반갑습니당~ 교리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뭐 지금은 21세기 아니겠습니까. 미세한 걸 보려면 현미경을 통하면 되니 그걸 위해서 극한의 내공이 필요있을까도 싶습니다. 화엄경의 궁극의 세계에 관한 철학도 그 목적은 결국 거시와 미시가 둘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은 것일테니까 말입니다.

  ·  7 years ago (edited)

기다리던 법성게 이야기가 업데이트 되었군요.
7개의 극미세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paramil님 ^^ 구독에 늘 감사드립니다. 기다려주셨다니 더욱 더 감사를^^

잘 보고 갑니다. 늘 감사 드립니다.

@gaeteul님 구독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