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국영을 좋아한다. 그의 미모는 물론 부드럽지만 깨질 것 갈이 예민한 분위기도 좋고 섬세한 연기도 좋아한다. 그가 떠난 건 내가 상당히 어렸을 때의 일인데 아직까지 그 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아마 그 기억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일까 나에게 4월 1일은 만우절 보다는 그의 기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가끔 그냥저냥 지내다가 문득 그의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때 보통 난 머리를 쥐어뜯으며 우울의 극으로 치닫다가 패왕별희를 보고 오열한 후 잠에 든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굉장히 많은데 저 때는 꼭 이상하게 꼭 패왕별희을 찾게 된다.
패왕별희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좀 어렸을 때 봤는데 그 당시에 내게 그런 충격을 준 작품은 패왕별희가 처음이었다. 먼저 장국영의 미모... 많은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패왕별희의 장국영은 특히 아름답다. 그 미모와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제스쳐가 합쳐져 충격적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리고 장국영의 연기... 모든 장면 장면이 명연기인데 가장 충격 받은 씬은 원대인과 만난 후 마차에서 혼 빠진 듯 누워있는 장면이다... 그 분위기와 표정과 화면의 톤까지 완벽해...
내가 패왕별희를 좋아하는 이유의 큰 부분을 장국영이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직 장국영만 보고 좋아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영화적으로도 너무 훌륭하다. 연출은 물론 비극덕후의 심장을 자극하는 스토리까지 완벽하다. 한 소년의 인생에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건들, 중일전쟁이나 문화대혁명 같은 사건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목격하게 되는데 심리적으로 잔인하게 느껴졌다. 영화의 관객들은 보통 영화 속의 어떤 것에도 개입할 수 없는 방관자 혹은 관찰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이 그토록 무겁게 느껴졌던 영화는 내게 패왕별희가 처음이었다. 흑흑 청데이의 생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무겁다 못해 가라앉는 느낌이다. 보고 나면 근 일주일은 여운에 잠겨 일상 생활에 작은 문제가 생길 정도인데 꼭 주기적으로 보게 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 주로 청데이에게 과하게 몰입한다. 그래서 샬로가 밉다... 그런데 사실 샬로가 그렇게 못된 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상황에서 청데이에게 이입했기 때문에 샬로를 욕하기는 하지만 내가 그곳에, 그 상황에 있었더라면 난 샬로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미운 건 미운 거고... 근데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다. 결국 모두가 역사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한다. 청데이도, 샬로도, 주샨도 서도 시대의 흐름을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흑흑 그리고 원대인도 마찬가지이다.
워낙 명작이다 보니 좋아하는 씬을 꼽으라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솔직히 말하면 청데이의 모든 장면을 좋아한다. 아역 부분은 물론 마지막까지 빠짐 없이 좋다. 아역 하니까 급 생각났는데 아역의 표정연기도 소름 돋을 정도로 좋았다. 특히 스터우가 담뱃대로 입을 쑤셔 피 흘리는 더우쯔(청데이)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주샨의 연기도 정말 좋고 원대인도 진짜 좀 변태 같아서 좋았지만 역시 나의 베스트는 청데이... 위에서 언급한 장면도 좋고 마지막의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복잡하고 깊으면서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표정인데 나는 그 클립만 봐도 오열할 만큼 그 장면을 좋아한다.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지 새삼 배우가 대단한 직업임을 깨닫는다. 이렇게 장국영 생각을 하다보니 또 우울해졌다 흐흐흑 이왕 우울해진 거 패왕별희를 또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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