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 '소요산' 포토 스케치

in kr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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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근교산행이라기엔 다소 원거리인 동두천 소요산, 가을단풍을 이야기할 땐 늘 입에 오르내리는 곳이죠. 혹여 단풍이 끝물은 아닐까?
이른 아침, 서둘러 전철에 올랐습니다. 전철이 닿는 곳이라 주말산객이 꽤나 붐볐습니다.
산아래는 울긋불긋 했지만 요석공주의 숨결이 스며 있는 공주봉을 거쳐 의상대, 나한대, 상백운대, 하백운대, 팔각정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이미 낙엽이 수북합니다. 겨울이 가을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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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소요산은 여러번 걸음했습니다. 그 중 2006년 7월, 한여름 소요산을 찾았을 때 기록한 내용 중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스토리를 나름 정리한 게 있어 다시 옮겨 봅니다.

전형적 회귀산행코스인 동두천 소요산의 말발굽형 산줄기를 따라 오르며 요석공주와 원효대사를 생각합니다.
원효가 요석공주와의 파격적 스캔들?로 파계한 것은 그의 나이 40세 무렵이었다고 삼국유사는 전합니다. 즉 태종무열왕 재위 시기인 654년부터 660년 사이의 일입니다. 원효는 길거리로 나와 노래했습니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면 하늘을 떠받칠 기둥으로 재목을 낳을 것이니"
누구도 이 노래에 담긴 뜻을 알지 못했으나 태종은 눈치를 챘다 합니다.

"저 스님은 부인을 얻어 아들을 낳아 큰 재목을 만들고자 하는구나" 라고 생각한 태종은 宮吏를 시켜 원효를 찾아 요석궁으로 들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원효와 과부였던 김춘추의 둘째 누이 요석공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원효는 요석공주에게 자루 없는 도끼, 즉 옥문(玉門)을 빌려달라고 하여 하늘을 떠받칠 기둥, 즉 자신의 ‘물건’으로 잉태하였으니 그가 바로 '설총'입니다. 그러나 부부의 연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속가의 연은 늘 부처님의 가르침에 걸림돌이었습니다. 결국 홀연히 속세를 등지고 수행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심산유곡을 돌고 돌아 둥지를 튼 곳이 바로 소요산이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납니다. 곧 억겁을 두고 눈·비·바람에 깎인 커다란 바위벽이 길을 막아섭니다. 직벽을 타고 쏟아지는 폭포수는 커다란 소로 곤두박질 치며 포말을 일으킵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보며 또다시 원효와 요석공주를 떠올립니다.

수행정진을 위해 요석공주와 아들 설총을 경주에 남겨 두고 길을 나선 원효, 다시 못볼지도 모르는 원효를 떠나 보낸 요석공주, 그 애틋함이 바위벽에 촉촉히 녹아 내립니다. 원효가 떠난 빈자리는 너무나 컷겠지요. 얼마후 요석공주는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으로 찾아 듭니다.
바위벽이 내려다 보이는 건너편 산중턱에 별궁을 지어 원효가 수행하고 있는 바위벽 쪽을 향해 조석으로 절을 올립니다. 그 바위벽이 원효대, 그 폭포가 원효폭포로 여전히 우뚝 솟아 있으며 쉼없이 물줄기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또한 요석공주가 머물던 산봉우리는 공주봉(526m)입니다.

원효가 수행하던 토굴로 비에 젖은 여인이 뛰어 들었습니다. 젖은 옷속에 드러난 뽀얀 살결, 그리고 해맑은 미소에 원효의 가슴은 방망이질 합니다. 옷이 젖어서 말려야 겠다며 아예 저고리를 벗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습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둑해져 오는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도자를 앞에 두고 그 무슨 행동이오?" "수도자의 눈으로 여자를 보면 여자가 아닌 수도자로 보인다 하옵니다"

그리고선 긴 침묵이 흐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원효로서는 가장 긴 밤이었습니다.

새벽녘까지 좌선을 하고 있다가 동이 트자, 차디찬 폭포수에 몸을 던졌습니다. 여인도 폭포수로 뛰어 듭니다. 원효는 무심하게 폭포수를 맞으며 말했습니다.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
自在無碍

마음이 생김에 온갖 법이 생기는 것이며,
마음이 사라지면 온갖 법 또한 사라지는 것이요.
나에게는 자재무애의 참된 수행의 힘이 있소이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살포시 미소짓던 여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원효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 여인은 원효의 수행을 시험해 보기 위해 나타난 관음보살이었던 것입니다.
원효는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서슴없이 자재암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이후 더욱 정진하여 "모든 일은 마음이 만들고 마음에 따라 생긴다"는 일성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一切唯心造'는 원효대사의 깨달음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밀조밀 솟구친 칼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린 노송들은 어쩌면 원효나 요석공주의 화신이 아닐까, 엉뚱한 상상도 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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