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을 걸으리 걸으리랏다

in kr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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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해? 잘 지내지? 숲길 한번 걷자. 선암사에서 송광사 넘는 숲길 좋다더라. 거기 어때? 걸으며 맛난 것도 먹자. 느긋하게 일박이일도 좋고~"

뭔 바람이 불었을까? 대학 동기 李가 걷기를 청했다.
李의 요청을 받아 동기 몇에게 의견을 물었다.

"코로나에, 삼복더위에 무신 눔의 산이여..."라고 답한 姜은 빼고, "그려, 일정 짜서 알려주소. 일박이일도 좋고~"라고 답한 朴과 애초 바람을 잡은 李와 그의 친구1을 포함, 단촐하게 넷이 뭉쳤다.
"순천이 아닌 전철 닿는 수도권에도 걷기 좋은 코스는 널렸다. 일박이일은 호계절에나 도모하고 이번엔 당일치기다. 행선지는 '적당히 걷고 맛난 거 먹자(?)'는 컨셉으로 강촌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이다"라고 일방적으로 정해 깨똑으로 공지했다.

상봉역을 벗어난 전철은 경춘선을 한시간 십분 달려 강촌역에 닿았다. 기둥과 벽면에 빛바랜 낙서가 빼곡했던 옛 강촌역이 아니다. 말쑥한 새 驛舍는 강촌스럽지(?) 않고 낯설었다. MT하면 으레 대성리나 강촌을 떠올리던 시절, 강촌은 젊음의 해방구였다.

역사를 빠져나와 잠시 두리번 거리자, 중년남성이 다가와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구곡폭포 갑니~"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명이니 버스 기다리지말고 4천원 내고 택시를 타세요"라며 명함을 건넨다. '샘토춘천숯불닭갈비' 명함이다. 역에 내려 곧장 폭포매표소까지 걷기로 했는데, 이 아저씨 꾐에 넘어가 구곡폭포 매표소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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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앞 벤치에서 걷기 채비를 차렸다. 수건도 목에 두르고, 선글라스도 이마에 걸치고, 신발끈도 조여 매고...
입장료 2천원을 내니 동일한 금액의 '춘천사랑상품권'으로 되돌려 준다. 단, 이 구역에서만 쓸 수 있다. 우째 공짜인 거 같으면서도 아닌 거 같기도 하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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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류를 거슬러 구곡폭포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초입에서부터 구곡폭포에 이르는동안 'ㄲ'의 스토리텔링에 빠져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꿈(Dream)으로 시작해, 끼(Ability), 꾀(Wisdom), 깡(Heart), 꾼(Professional), 끈(Networking), 꼴(Shape), 깔(Color) 그리고 끝(An end)으로 마무리한 아홉 'ㄲ'의 구곡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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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세차게 내린 비로 계곡물 소리가 힘차다. 구름사이로 드러난 하늘은 씻은 듯 새파랗고, 수목은 짙푸르고, 바람은 서늘해 걷기 딱 좋다.
울울창창 숲길을 따라 물소리 들으며 천천히 20분 정도 걸어 들면 길은 양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구곡폭포, 오른쪽으로 들면 문배마을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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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구곡폭포로 걸음을 옮겼다. 목계단을 타고 오르자, 서늘한 바람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제까지 내린 비에 구곡폭은 존재감을 찾은 듯 기세양양하다. 계류가 깎아지른 바위벽에 이르러 아홉 굽이를 휘돌아(九曲) 쉼없이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 탄성이 절로 새어 나온다. 다들 폭포수를 배경으로 인증샷 삼매경에 빠진 모습이다.
폭포 전망데크 한 켠에 아홉번째 'ㄲ'의 '끝'이 '여정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란 화두를 던지며 스토리텔링의 끝을 알린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문배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산비탈이 가파르나 갈之자 모양으로 길을 내 오르기가 한결 수월하다. 바닥은 야자매트를 깔아 푹신해 발바닥도 호사다. 숨이 차오를 때 쯤이면 어김없이 벤치가 나타난다. 헬스로 몸관리한 李와 요가로 단련된 G는 룰루랄라인데 朴이 문제다. 한참 앞서 걷다 뒤돌아보니 보이질 않는다. 걸음을 멈춰 기다렸다. 기럭지가 긴 朴이 휘적휘적 걸어와 쓰러지듯 벤치에 앉는데, 이런! 얼굴빛이 백짓장이다. 맨날 이젤 앞에서 캔버스와 씨름하느라 몸관리를 소홀히 한게 틀림없으렷다, "충분히 쉬고 더 천천히 걷자, 문배마을 가서 먼저 補身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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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의 경우는 체력이 한계치에 이를 때 오히려 묘한 쾌감과 함께 내면 어디선가 기분좋은 에너지가 팍팍 보충된다. 산 오르며 터득한 나름의 노하우다.
구곡폭포 갈림길에서 1.2km를 걸어 오르니 문배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 쉼터다. 여기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걸으면 검봉산 강선봉으로 이어진다. 몇해 전 억수 비를 맞으며 걷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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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마을은 해발 350m에 있는 산간 분지마을이다. 이 지역에 자생하는 문배나무에서 마을 이름을 따왔다. 천수답과 음식점 그리고 생태 연못이 있는, 자그맣고 한적한 마을이다.
신가네, 김가네, 이씨네, 촌집 등을 기웃거리다 낙점한 곳은 '촌집'이다. 너른 마당에 놓인 목식탁에 좌정했다.
우선 보신을 위해 닭백숙을 주문했다. 30분 가량 소요된다기에 감자전과 도토리묵 그리고 춘천생막걸리를 미리 청했다. 이곳 마을 음식 메뉴는 대체로 산채비빔밥, 닭백숙, 도토리묵, 손두부 등 토속 음식류다.
탱글탱글할때 만나 푸석푸석해진 지금껏 만남을 잇고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래서 넷은 山中一杯의 즐거움을 '청바지'로 정해 건배했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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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고 얼굴 불콰해지니 인근 생태연못도 눈에 들어왔다. 연못을 둘러싼 목책의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다. 대개의 목책은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데 반해 이곳 목책은 연못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 중간중간에 널판을 올려놓아 벤치 구실도 한다. 처음 접한 디자인이라 신선하다. 이 연못의 물은 골짜기로 흘러내려 산 아래 구곡폭포로 이어진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비 개인 하늘과 초목은 수채물감을 뿌려 놓은 듯 선연하다. 숲향이 그윽하다. 이런 숲길을 걸으면 배배 꼬였던 마음은 확 풀리고 웅크린 가슴도 쫙 펴진다. 오감이 다 열린다. 숲은 최고의 항우울제다.

매표소에 이르자, 입장료와 맞바꾼 '춘천사랑상품권'이 떠올랐다. 지역에서 소비해야 한다. 이름하여 '공정소비'인 셈이다. 추억의 아이스크림, 비비빅과 번데기를 한 컵 사니 땡이다.
늙수그레한 남둘 여둘이 길가에 앉아 번데기에 아이스크림을 물고 희희낙락하고 있었으니 보기에 따라 가관이기도 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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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역으로 가는 버스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었지만 우린 내친 김에 강촌역까지 30분을 더 걸었다. 강촌에 와서 춘천 닭갈비를 빠트릴 순 없는 법? 강촌역에 다다라 몇 시간 전 받아둔 명함을 꺼내 전화했더니 픽업하기 위해 냉큼 달려왔다. 그렇게 찾은 곳은 춘천숯불닭갈비 전문점, ‘샘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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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핑계삼아 강촌 문배마을 ‘촌집’ 들러 닭백숙 먹고, 다시 강촌역으로 돌아와 숯불닭갈비 전문점, ‘샘토’를 찾아 춘천닭갈비에 춘천생막걸리로 마무리했다.
실컷 걸어 소비한 칼로리를, 실컷 먹어 한 방에 원상회복? 시키고 말았으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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