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色절정, 내설악 수렴동계곡과 구곡담계곡을 걷다

in kr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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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원거리 산행, 이 얼마만인가?
코로나 이전엔 주말마다 새벽잠 설쳐가며 배낭 꾸려 집문을 나섰는데, 그간 소원했다.
매주 근교 산행을 함께 해오던 산우 넷이 청계산을 걸으며 입을 맞췄다. "다음주 토요일, 내설악 품에 안겨 추색(秋色)을 즐겨보자"고.
그리하여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 원점회귀하는 완만한 트레킹 코스를 걷기로 정했다.
출발 장소와 일시는 압구정역 2번출구 지상, 10월 30일 06시.

이른 새벽에 기상해 미리 챙겨놓은 배낭을 메고서 04시 50분 집문을 나섰다. 05시면 전철 첫차가 있을 거란 혼자만의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염창역 첫차 출발시각은 05시 30분, 급행은 05시 40분. 이러니 고터에서 환승해 압구정역까지 약속시간 내 도착은 어림도 없다. 후다닥~ 지상으로 올라와 택시를 기다렸지만 10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는다. 다시 헐레벌떡~ 전철 승강장으로 내려와 급행 첫차에 올랐다.

이거 참~ 누굴 기다리게 하는 거 딱 질색인 성미라 전철에 올라서도 안절부절~

12분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아직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시각, 저만치서 기다리던 P1이 다가오며 하는 말, "P2가 보이지않아 전화 했더니 여태 자고 있다가 전화 받더라"고 했다.
P2의 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대략난감이다. 전화받고 놀라 양치도 못한 채 마치 5분대기조 출동하듯 허겁지겁 차를 몰고 나타났다. 다행스러운 건 내가 늦은 12분은 그대로 묻혔다는 사실. 한바탕 해프닝을 치르고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은 06시 30분, 내설악 백담사를 향해 출발했다.

인제 미시령과 한계령 갈림길을 지날 때가 08시 50분, 토요일인 거 감안하면 빨리 달려 온 셈이다. 운전 솜씨가 좋아서? 차 성능이 뛰어나서? 아니, 이른 아침이라 길이 덜 막힌 탓이다.(새벽잠 털고 핸들 잡은 P2로선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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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설악에 접어드니 산안개가 자욱하다. 길게 걷자면 연료?를 채워야 한다.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용대리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조식을 해결했다.
10시 00분, 이미 백담사로 향하는 셔틀버스 대기줄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다수가 백담사로 단풍놀이 나선 70대 초중반 어르신들이다. 백담사행 셔틀버스의 운행 간격은 30분이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좌석만 채워 속속 출발한다. 버스요금은 성인 기준 편도 2,500원. 꿀팁 하나, 백담마을에서 탑승 시 왼쪽 좌석에 앉아야 백담계곡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

몇 대를 보내고서야 차례가 왔다. 몸체가 작은 버스라 정원이 서른너댓 명이다.
백담사까지 이어진 구불구불 찻길은 노폭이 좁아 아무 곳에서나 교행할 수 없다. 버스기사들끼리 무전으로 교신하면서 교행장소에 대기하기도, 또 마주오는 버스를 대기시켜 가며 굴곡진 산길을 20여분 달렸다.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백담계곡의 암반과 소(沼) 그리고 가을빛깔에 넋을 빼앗겨, 다행히도 아슬아슬 곡예운행의 서늘함은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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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앞 너른 계곡엔 돌탑이 무수하다. 백담계곡의 또 하나 진풍경이다. 누가 누가 잘 쌓나 내기라도 한듯 신기방기다. 공들여 쌓은 돌탑들도 계곡물이 불면 흔적없이 사라질 터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무너지면 또 쌓고,,, 사람들의 추억 쌓기와 기복 쌓기에 멈춤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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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경내를 둘러보다 문득 "全統 거처는 어디였나?" 궁금했다. 두리번거려 보았으나 안내판이 있을 리 만무다. 지우고 싶은 행적일까? 걸음을 옮겨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시비 앞에 섰다. 백담사 곳곳에 만해의 혼이 살아 숨쉰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향기에 이끌려 이곳을 찾기도 한다. 두 인물을 떠올리며 생멸성쇠(生滅盛衰)의 의미를 곱씹다가 절마당을 벗어나 산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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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안내도를 보니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는 완만한 숲길이다.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거슬러 오른다. 엊그제 설악산 단풍소식을 실은 모 신문의 기사 제목이 '올 설악 단풍은 흉년'이었다. 그래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웬걸! 이건 완전 오보다. 적어도 백담사에만 걸음했어도 그렇게 제목을 뽑진 않았을 거다.
백담사에서 영시암 거쳐 봉정암을 오르는 산길은 그야말로 추색(秋色) 절정이었다. 수렴동계곡은 온통 진홍빛 단풍으로 뒤덮혀 있어 탄성이 절로 새어 나왔다. 말 그대로 만산홍엽이다.
산객들은 여기저기서 스맛폰에 풍경을 쓸어담느라 여념이 없다. 흰 재킷을 입고서 이 숲길을 지나면 금세 핏빛으로 물들어 버릴 것만 같다. 산 도반인 P1과 P2의 얼굴도 진홍빛이 반사되어 불콰하게 달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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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암에 이르러 애초 계획한 오세암 코스를 봉정암 방향으로 수정했다. 영시암에서 목계단을 올라서면 국립공원 관리초소다. 초소 앞에서 길은 갈라진다. 왼쪽으로 꺾어들면 오세암 2.5km, 직진방향으로 대청봉 9.4km, 소청봉 8.2km, 봉정암 7.1km를 가리킨다. 봉정암까지 얼추 3시간 남짓 걸린다. 도반들과 머리를 맞댔다. 차를 백담마을 주차장에 두고 왔기에 원점회귀해야 한다. 그렇다면 백담사에서 백담마을로 내려가는 버스 막차(18:00) 시간을 맞춰야 하기에 봉정암까지 갔다가 되돌아 내려오기엔 시간이 절대 부족이다. 결론은 봉정암 방향으로 걷되, 적당한 곳에서 회귀하기로 합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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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이 내려앉은 너럭바위에 주저앉아 챙겨 온 간식으로 요기했다. 만추의 설악에 들어, 노란 옥수수차와 문어가 전부인 소박한 암반 床을 차렸다. 하지만 구첩반상이 부럽지 않다.
입 벌린 악어머리 형상의 바위에 올라 제각각 아재 포즈로 인증샷 놀이도 즐겨가며 한참을 노닥거리다보니 해가 산능선을 넘어 앉은 자리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얼른 털고 일어서라는 시그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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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장성의 능선이 시작되는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면서 산길은 조금씩 거칠어졌다. 훼손된 다리를 복원하는 공사로 간이 우회길을 이어놓은 구간도 만난다. 아마도 지난 태풍에 다리가 쓸려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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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마을에서 백담사까지를 백담계곡, 백담사에서 수렴동대피소까지를 수렴동계곡, 수렴동대피소에서 봉정암 아래까지를 구곡담계곡이라 부른다. 뽀얀 암반과 억겁의 세월이 빚어낸 소(沼)와 담(潭), 그리고 옥빛 계류가 일품인 내설악의 으뜸 계곡, 여기에 산 좋아하는 도반과 유유자적 하니 이보더 좋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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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선 봉정암까지 걷고 싶으나 물리적 시간이 이를 허락치 않는다. 백담사에서 7.6km를 걸어와 연화담에 닿은 시간은 14시, 무려 3시간 반이 소요됐다. 가을 풍경에 취해 걸음이 더딜 수밖에. 백담사에서 출발하는 막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이쯤에서 유턴해야 한다.
그런데 "근육질의 산세가 조금씩 자태를 드러내니 30분만 더 올라 보자"며 P2가 성큼성큼 앞서 나아갔다. 이심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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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계단과 너덜길이 거듭되더니 설악의 거친 능선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계류는 백사가 되어 암반 사이를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고도를 높일수록 산색은 겨울채비에 들어간 듯 스산한 빛을 띠고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목교 공사현장에 닿았다. 훼손된 등로를 정비하느라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곳을 반환점으로 욕심을 버리고 유턴키로 했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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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해는 짧다. 걸음을 서둘렀다. 17시 30분, 백담사 버스 승차장에 닿았다. 왕복 17.5km를 6시간 반 동안 쉬며 놀며 걸은 셈이다. 탑승을 기다리는 줄은 이미 끝없이 이어져 있다. 하지만 속속 들어오는 빈 버스가 긴 줄을 연신 토막내어 금세 차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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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백담마을에서 승용차에 올라 서울이 아닌 미시령을 넘어 속초 중앙시장 인근 '송도횟집' 들러 물회를 맛본 후 예정에 없던 델피노리조트에서 1박. 다음날, 초당순두부로 조식, 국도를 따라 원대리를 거쳐 춘천 들러 '유포리막국수'를 맛본 후 귀경,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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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arstop님

랜덤 보팅!!

소소하게 보팅하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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