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까레르의 에마뉘엘 마크롱

in kr •  7 years ago 

관련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news/2017/oct/20/emmanuel-macron-orbiting-jupiter-emmanuel-carrere?CMP=share_btn_fb

4182.jpg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이런 롱폼의 기사가 정작 본국인 프랑스보다 독일(참조 1)과 지금 공유하는 영국 언론에 나오는 게 좀 신기하다. 물론 참조 1의 기사는 롱폼 기사라기보다는 롱폼의 인터뷰다. 하지만 이 가디언의 기사는 다르다.

무려 에마뉘엘 까레르가 마크롱을 밀착 취재해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읽었던 그의 작품인 “리모노프”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까레르의 소설을 읽어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프랑스 특유의 건조함과는 좀 다른 스타일이다. 적극적인 건조함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데, 따뜻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다. 하지만 건조하다.

그의 스타일이 이 롱폼 기사에도 확연히 드러난다. 심지어 불->영의 번역 과정을 거친 글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번 때처럼(참조 1) 이 글까지 번역하지는 않을 텐데, 마크롱이 “의자마저도 유혹할 수 있다”는 부분도 재미있고, 태풍 Irma(참조 2)가 지나갔던 생 마르땅의 주민이 마크롱에게 지원 안 해 주고 쇼만 한다고 마구 비난했던 에피소드도 인상 깊었다.

5472.jpg

마크롱 대통령과 그 주민과 악수하자 주민이 미소를 짓는 거다. 그러다 화들짝 놀란 그 주민은 손 좀 떼라고 다시 막 화를 냈다.

재미나는 에피소드다. 원래 등장할 때부터 우파도 좌파도 아닌(참조 3) 마크롱의 프랑스 내 별명이 혹시 뭔지 아시나? 기사에서는 영어로 쓰여 있는데, “Mr. En Même temps”이다. “동시에”라는 말을 처음 등장할 때부터 남발했기 때문에, 현재 불어에서는 정치적인 농담으로 자주 쓰이고 있다.

(르몽드가 부도 직전, 투자자를 찾던 2010년의 일화도 나온다. 당시 로트실드의 은행가였던 에마뉘엘은 르몽드를 인수하려는 그룹 두 곳 모두를 “동시에” 도왔다! 이게 들통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아마 이때 자비에르 니엘과 마크롱이 친해지지 않았을까.)

이 표현은 그의 단점을 확연히 드러낸다. 모순적인 내용의 말을 동시에 내뱉기 때문이다. 양다리의 필연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지지자가 아니면 당연히 그의 상호 모순적인 정책을 찬성하기 힘들 것이다. 또한 그는 전임인 올랑드가 “평범함”을 강조한 나머지 대통령에서 실패했다 여기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유피테르(참조 4)가 되겠다 나섰었다. 어차피 프랑스는 왕정 국가다(참조 1).

다만 그의 그리스 프닉스(Πνύκα, 아테네 중앙 아크로폴리스 언덕 서쪽이다) 연설은 관심을 안 가졌었는데(내용이 뻔하다 예상했었다), 여기서 보니 당시 까레르가 마크롱과 동행하고 있었다. 그는 헤겔 철학 전공자다운 연설을 했었다(서문은 그리스어로 얘기했고 아마 연설문은 그가 스스로 작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5472 (1).jpg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보십시오. 헤겔이 얘기하던 순간이자,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달아날 때의 순간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지혜를 제공하지만 뒤돌아 보기만 합니다. 그 편이 언제나 쉬우니까요.”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이고 부엉이는 그 상징이다. 움베르토 에코를 좋아하신다면 모두들 아실 내용인데, 대통령 연설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든가 헤겔이 논한 역사의 간지(奸智)(List der Vernunft)가 등장하고 있다. 그날 만찬은 그리스 지식인들과의 만찬이었는데, 마크롱은 그리스 지식인들과 함께, 보들레르와 랭보의 시(詩)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어나갔다. 모두 암기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즉, 지식이나 교양의 측면에서 보자면 프랑수아 미테랑 이후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는 얘기. 많이 보고 배운 사람들이 마크롱에게 또한 혹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그걸 또 매우 진지하게 표현하는 인물이 마크롱, 이를테면 다음의 발언을 보자.

“우리나라가 낭떠러지에 걸려 있다고 봐요. 추락할 위험에 있죠. 이런 비극적인 순간이 아니었다면 전 당선 못 됐을 겁니다. 전 부드러운 분위기를 이끌 지도자가 아니에요. 전임자는 그랬지만, 전 폭풍우를 이끌 사람입니다...”

“…나라를 어디론가 이끌고 싶다면 어떻게든 전진 시켜야 해요. 포기할 수 없고 루틴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이와 동시에 들어야 해요... ...난 행복을 약속하러 여기 오지 않았습니다만, (그들의 분노와 분투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존중할 유일한 방법이에요. 엘리트들은 그렇다고 여기지만, 프랑스는 시니컬하지 않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국가로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프랑스를 급격하게 전환시키지 않으면 제가 아무 일도 안 했던 것보다 더 나뻐질 겁니다.”

일화를 하나 얘기해 보겠다. (문제의) 고등학교 시절, 마크롱은 브리짓 선생님(!)과 함께 이탈리아의 극작가 Eduardo De Filippo의 연극을 학급 학생들과 함께 하기로 했었다. 문제는 그의 희곡에 등장인물이 5명 밖에 없는데, 학급은 25명이었다.

어린 에마뉘엘은 20명의 캐릭터를 만들어내서 희곡에 추가시켰다.

3000.jpg

참조

  1. 에마뉘엘 마크롱 인터뷰 (슈피겔, 2017.10)(2017년 10월 18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685556794831

  2. 사실 별도의 글로 써야 할 주제인데, 포르투갈어의 irma가 아니라, 독일 신화에서 전쟁의 여신 Irma가 그 기원이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국제 기상청(WMO)에서 관리하는 태풍 이름 목록에 따라 태풍 이름이 붙는다. http://www.nhc.noaa.gov/aboutnames.shtml#atl

  3. 까레르도 말하지만 저런 표현은 보통 우파의 표현이다.

  4. 마크롱의 언론 다루는 방법(2017년 6월 8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291403239831 참고로, 여기에서는 마크롱이 스스로 자신을 유피테르가 되겠다고 했던 걸 내가 캐치하지 못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저 기사의 뉘앙스를 알고 있다.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흥미진진하군요. 오후에 원문도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올게요.

으앙, 감사합니다. 저도 자주 올려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