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좋다

in kr •  7 years ago  (edited)

상해에서 돌아온 뒤부터 혹독한 겨울 날씨를 제대로 느끼고 있다. 대구가 이렇게 추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1월은 트레이딩도 죽을 쑤고 날도 춥고 해서 마음도 싱숭생숭했다. 게임을 몇 판하고 예능을 보는 낙 밖에 없어서 대구로 막 돌아왔던 지난 가을처럼, 매일 산책을 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있다.

거리에 쌓인 낙엽도 이미 치워진지 오래고 동촌 강변엔 사람도 없다. 소나무 몇 그루를 빼면 나무들은 가지만 뻗어있다. 겨울이면 하늘 색깔도 영향을 받는지 노을이 지기전에 이미 색이 흐리다. 회색 배경에 뻗은 나뭇가지와 강변에 늘어선 건물들, 강 위에 놓인 구름다리를 보며 걸었다. 요즘은 18시가 되어서야 해가 지기때문에 저녁 5시 30분쯤 집에서 나오면 딱 좋다.

구름다리 위에 오르면 가운데 우뚝 솟은 조형물 때문에 작게 나마 두 갈래 길이 있다. 해가 지는 이 시간에는 보통 서쪽 방향의 길로만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는데 오늘은 날이 흐려 동쪽으로도 걸어보았다. 강물이 얼어있는 와중에 다리 밑에 물이 얼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그 위로 오리들이 강물에 들어왔다 얼음으로 나왔다 했다. 물이 얼지 않은 부분이 둥그렇게 생겨서 수영장 같았다. 겨울이 되어 오리배 타는 사람 없는 강에 진짜 주인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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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름다리 끝에서 다시 서쪽 방향으로 돌아오면서 저 멀리 아양교 불빛이 켜지는 걸 바라보았다. 다리 아래에 설치된 조명은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 이런 식으로 바뀐다. 더욱 노을이 뚜렷한 날에는 해가 지기 직전에 볼만한 장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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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말로만 듣던 이국의 도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너무 더울 땐 홋카이도를, 너무 추울 땐 태국 어느 섬에서 지내고 싶다. 내가 프리랜서가 되면서 더 이상 꿈은 아닌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 고향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서 가장 추운 겨울이지만, 나는 이곳의 겨울도 좋다. 찬 바람도 그 나름대로 정신을 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찬 공기를 한껏 들이키면 며칠 지속된 손실에 고통 받던 마음도 씻기는 것 같다. 동시에, 보다 원칙과 규율을 준수하기만 한다면 못 이룰 목표도 없겠단 생각도 들기 시작한다. 정신만 차리면 그렇게 멀기만 한 삶이 아니다. 겨울은 더 나빠질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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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미투. 카톡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