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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취지로 기증을 하는 것이지만,
가족들의 동의를 얻는 데는 시일이 걸렸다.
은장을 받을 정도로 헌혈을 많이 한 내 동생은
무조건 기증해야 한다고 동의해줬지만
(동생한테 협회에서 연락이 안 간 걸로 봐서
나랑 동생 유전자형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간접적으로 알게 됐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동의를 얻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들을 읽어보시고는
조혈제 맞으면 아프다던데
몇몇 사람은 허리가 끊어질 듯 한 통증도 나타난다던데
굳이 네가 아픈 걸 감수하고라도 기증을 해야 하냐
이런 걱정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몇 시간 아프고 불편한 걸로 끝이지만
사람 목숨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래 언제 내가 너 하고 싶은 거 못하게 막은 적 있느냐고 하시면서
아프다 어쩐다 말하기 없기로 하고 동의 아닌 동의를 해주셨다.
그런데 나한테는 가족들의 동의 말고 하나의 큰 산이 남아있었다.
바로 연구실 지도교수님의 동의
나는 지방의 한 공대에서 대학원 생활에 3년 차에 접어든 학생이라
내 마음대로 연구실 안 나갈 수도 없어서
당연히 교수님의 동의도 필요했다.
조혈제 주사는 잠시 통원해서 3일 간만 맞으면 되기에
연구실 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그 후 2박 3일간은 입원을 해야 하니
3일간은 연구실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수님과 딜을 하게 되었다;;;
이번 겨울에 일주일 휴가를 반납할 테니
학기 중에 기증하게 되면 그때 일주일간 휴가를 받겠다고
교수님께서 흔쾌히(?)
기증 막으면 내가 나쁜 놈 되는 거 아니냐고 하시면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협회 코디네이터 분은 내가 불가능한 일정을 먼저 물어보고
그날짜를 피해서 일정을 정해서 출장을 오셨다.
학교에는 바로 오시기가 좀 그래서
근처의 헌혈의 집에서 코디네이터 분을 만나기로 했다.
헌혈의 집에서 코디네이터 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 말고도 다른 기증자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헌혈도 많이 하신 이력이 있고,
아주 건강하신 회사원분이셨다.
코디네이터 분을 만나서 유전자형 일치 검사를 위한
혈액 샘플을 5 mL 정도 채취하고,
기증 때 사용하게 될 양쪽 팔의 정맥 위치를 확인했다.
그 후로 혈압을 측정했는데,
자꾸 150/90이 나왔다...
코디네이터 분이 나보고 고혈압 진단받은 적 있냐고 물어보셨고,
그런 적은 없지만 흡연을 한다고 말씀드리니
밖도 춥고 그러니 5분 만 있다가 측정해보자고 하셨다.
5분 지나서 측정해 보니 137/82가 나왔다.
정상 범위이긴 하지만 많이 높다고 하시면서
주변에 혈압 잴 수 있는 곳에서 같은 시간에 3일간 측정해서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 시간 이후로부터 주머니 속에 있던
담배 갑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기증 날까지 휴연(?)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 다행히 학교 보건실에 혈압 측정기가 있어서 매일 측정해서 보냈고
120/80 근처로 혈압이 나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코디네이터 분께서 협조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앞으로도 혈압 유지를 위해서
건강 관리해 달라는 카톡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참 후회하는 것이지만,
건강 관리를 하나도 하지 않은 것...
그것 때문에 참 속이 상했다.
건강하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고 싶지만
내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 때문이다.
협회의 연락이 오기전에는
기증 서약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그동안 몸을 막 굴렸(?)었다.
담배도 하루에 한 갑씩 태우고,
술도 엄청 좋아해서 거의 매일 술을 퍼마셨다.
그 결과로 학부 입학 때 보다 23kg이나 살이 쪘고,
알코올성 지방 간이라는 판정도 받았다.
물론 유전자 일치 검사를 받고 난 이후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금연하고 있고,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일주일쯤 지난 후에 유전자 형이 전부 일치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제 기증을 위한 일정 조정 및 건강검진 만이
남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아직 기증 일정이 결정 난 게 아니라서
계속해서 건강 관리를 해달라는 얘기를 해주셨고,
그날 이후로 다른 코디네이터 분께서
기증 일정을 관리해주신다고 얘기를 해 주셨다.
그동안 고생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지막 인사를 해드렸다.
다음 포스팅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