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창업기 : 11편 - 무제

in kr •  6 years ago  (edited)

1편- 무모한 결정 그리고 실행
2편 - 조언과 격려 사이
3편 - 일단 실행하고 보자
4편 -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겠다.
5편 - 우리배가 잘 나아가고 있는지
6편 - 첫번째 실험
7편 - 성장
8편 - 어떻게하면 잘 알릴 수 있을까?
9편 - 다시 원점으로
10편 - 무식하면 용감하다

간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네요.
12월도 아닌데 눈이라니... 이번 여름은 정말 말도 안되게 더웠는데 이번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울련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편은 따로 제목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메모 내용이 빈약한 것도 있지만, 너무 다양한 일들이 있었기에.

이번 편의 마지막 내용을 기점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2018년 11월 6일

우리는 새로운 컨텐츠 제작을 위해 기획에 들어갔다.
평소 작업을 하던 공간에서는 녹음실도 대여를 할 수 있었다.

어떤 걸 이야기하지? 어떻게 이야기하지?
아침부터 시작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새로운 걸 시도할 때 앉아만 있지 않았다.
오전에 녹음실 예약을 하고 오후부터 바로 녹음실에 들어가서 제작을 해보았다

나는 녹음장비들이 크게 어색하지 않았는데, 이전에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려고 할 때에, 오디오 인터페이스나 마이크 등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음실이 주는 그 분위기는 매우 새롭고 신선했다.
테스트로 간단하게 녹음을 했는데, 서로가 너무 어색해했다. 아무도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막막함이 다가왔다. 이것저것 이야기해보면서 녹음을 계속 테스트하다보니 어느새 오후 5시가 되어있었다.

이 날은 미세먼지가 특히 심했는데 그 탓인지 금새 피로감을 느꼈다.
아니면 녹음을 하는게 힘든거였나?
테스트 녹음을 마치고, 올라와서 이번 주에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유튜브 영상을 찍을 때에 사두었던 마이크가 한 대 더 있어서 그거를 가져오기로 했고,
다른 방송들을 참고해서 녹음을 해보자고 했다.

일찍 퇴근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르게 헬스장에 가지도 않은 채 집에가서 픽 쓰러져 자버렸다.

2018년 11월 7일

오전에는 컨텐츠에 사용할 이야기거리와 대화를 구체화 시켰다. 따로 대본을 적어둔건 아니었다.
오후에는 녹음실로 향했다.

우리가 하고자하는 팟캐스트에 'ooo을 싫어하겠습니다.' 라는 제목을 붙였다.
싫어하는 것들을 주제로 하는 커뮤니티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먼저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마이크를 하나 더 가져와서 사용하려고보니 프로그램에 트랙이 2개가 생겼다.
이럴 경우 하나의 트랙으로 합치는 Bounce 과정이 필요했다.

참 매번 놀라는게 과거의 경험이 도움이 되더라는 것이다.
편집하는 과정은 취미로 음악을 만드려고 사두었던 Logic 프로그램에서 이미 해봤던 것들이었다.
녹음을 해서 발생한 원본 목소리 파일 2 트랙을 내 맥북으로 AirDrop 했다.
2개의 트랙을 내 로직으로 옮겨서 애플루프의 사운드들과 조합을 했더니
그럴싸한 팟캐스트가 만들어졌다.

다시 제작과정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둘 다 발음이 어눌하고 바람 새는 소리를 많이 낸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하기사 일반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계속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

종종 대화를 이어나가다가도 말이 끊기고 적막이 흐를 때도 있었다.
또 내 고질병인 떨림으로 인한 목이 막히는 증상도 도졌다.
옛날에 장교로 군 복무할때도 이거때문에 힘들었었는데... 보는 사람도 없는 녹음실에서 이러고 있으니 참 스스로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극복을 하지 못할 건 없었다. 생방송이 아닌 녹음방송이었기 때문에 편집의 힘을 쓰면 되었다.

우리 둘은 서로 으쌰으쌰 했다. 목소리를 높이고 녹음에 임했다.
예정보다 1시간을 더 써서야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

녹음을 마치고 나는 바로 편집작업에 들어갔고, 공동창업자는 새로운 메인화면 개편을 위한 기획에 들어갔다.
애널리틱스의 데이터로 말미암아 우리는 메인 화면에서의 이탈율이 50%에 달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이탈율을 낮추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메인 화면을 개편하기로 한 것이다.

퇴근시간에 맞추어 편집을 끝냈고 공동창업자에게 공유를 했다.
나는 퇴근길에 편집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았다.

사뭇 엉성했다. 그렇지만 뿌듯하고 재미있었다.

내가 팟캐스트를 하다니..!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이렇게 이루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2018년 11월 9일

우리 1주 전 부터, 사이트에 대한 보다 명확한 피드백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오프라인으로 할까 하다가 온라인으로도 대체할 수 있을 거라 보았다.
오프라인은 시간도 많이가고 보상적인 측면에서 기프티콘을 생각했었는데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우리는
대체제를 생각하다가 카톡방을 이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결론을 내리고 온라인으로 진행을 했다.

총 13명에 대해 오픈 카톡방으로 1:1 인터뷰를 진행해온 결과를 공유했다.

3명빼고 전반적으로 메인페이지와 소개 페이지를 통해 이 사이트가 무얼 하는 사이트인지를 인지했다고 하셨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메인의 베스트글들을 보고 일반적인 커뮤니티와 유머사이트로 생각을 했다고 말씀했다.

관심사에 따라서 사이트에 대한 인지결과가 확연히 다름을 알게되었는데,
나중에 해당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도피처중 특정 도피처를 먼저 노출 시키는 것을 고려해보기로 했다.

13명의 Deep한 인터뷰를 통해서 알아낸건
싫어하는 것이 있다는건 확실하다는 것이다.
하긴 없을리가 없지.

보완할 점이나 개선점에 대해서도 말씀을 해주셨다.
그 중 몇가지를 적어본다 .

먼저 익명성에 대한 부분.
아무리 닉네임을 쓴다한들 완벽한 익명이 아니면 노출에 대해 꺼려질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왜냐하면 싫어하는 것들이 우리가 생각한것보다 사람, 즉 특정 인물에 대해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인간관계가 가장 큰 카테고리인 것이다.
익명 게시글과 댓글은 금방 코딩할 수 있기도 하고 충분히 일리있는 의견이라고 판단, 도입하기로 했다.

두번째로 단어의 어려움.
'도피처'라는 단어가 쉽게 다가오는 단어는 아니라고 하셨다.
음... 그래서 구글에 도피처라는 단어를 쳤는데 대다수가 '조세도피처' 라는 키워드로 나왔다.
띠용. 대체할 단어가 있나 싶어서 우리는 고민을 했는데 딱히 대체할 것이 없어 그냥 도피처로 사용하기로 했다.

세번째로 자유게시판
특정 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는데 모든 것을 아우를수 있는 자유게시판이 있으면 좋겠다고도 하셨다.
음.. .이 부분은 좀 구현하기 애매했던게 각 주제별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게시판을 설계했는지라 자유게시판은 난감했다.
나중에 비회원 게시글 작성기능과 더불어서 하기로 하고 우선순위를 미뤄두었다. 일단 자유게시판은 정말 해야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기도 했다.

의외에도 디자인적인 측면이나 사용자 경험측면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특이했던 경험은 우리와 같이 커뮤니티 사이트를 기획하고 운영하신 분들이 참여를 해주셨다.
그들이 했던 고민이 우리와 하는고민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분들의 사이트를 알아내고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어떤 주제로 사람들을 모으려하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18년 11월 11일

금요일 저녁에는 마케팅 회사를 차린 친구를 만났다. 처음 내가 창업을 할 때 같이 하고자 했던 그 친구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SNS마케팅에 대한 그 친구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둘러보기 기능이 마케팅하기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보았다.
둘러보기 기능을 보니 우리 사이트내 컨텐츠들을 그냥 실어다 나르기만 해도 어렵진 않겠다 싶어서 바로 계정을 파고 컨텐츠를
몇개 옮겨두었다.
금방 팔로워가 늘어났다. 신기해서 자세히 쳐다보니 죄다 광고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와 같은 광고충들이 서로 팔로우해주고 있던 것이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나?
싶으면서도 리소스가 많이 들지 않는다면
채널을 하나 더 늘려두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2018년 11월 12일

홍보 방안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끝이 없었다.
그 중에 공동창업자가 오프라인으로 홍보를 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공동창업자는 왜 오프라인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주된 근거는 돈없이 온라인 마케팅을 하는건 너무 어렵고 제한적이다라는 것이었다.
돈이 없으니 가격이 저렴한 오프라인으로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돈이 없었다. 돈 없이 온라인으로 어딜 들어가서 홍보라도 하려고 치면 광고충으로 저격받고 오히려
이미지만 나빠지기 쉬웠고, 몇 군데 돌아댕기면 더 돌아다닐 만한 데도 없었다.
하지만 아직 온라인으로도 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온라인이라고 더 비싼 것도 아니었다.
오프라인이던 온라인이던 돈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시간 비용이나 노출측면에선 온라인이 훨~씬 유리해보였다.
무엇보다 저번에 사용하고 남은 오프라인 홍보물품들이 제대로 소비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온라인으로 해볼 것을 다 해보고 난 후에 오프라인으로 하자고 이야기했다.
공동창업자는 동의했고 그래서 블로그와 페북 페이지를 운영하기로 했다.

2018년 11월 13일

퇴근하고나서 공동창업자가 내게 얼굴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고 말을 했다.
나는 별 일 없다고 했다.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왜 나의 안색이 안 좋다고 느끼셨을까.

뭐 창업을 시작하겠다고 한 이래, 그리고 싫어하는 것에 대한 커뮤니티를 하고자 한 이래,
'싫어하는 것을 공유하는게 정말 유효한가? 나 정말 잘하고 있는 건가? 이게 맞나?'
하는 불확신이 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나아가고자하는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고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목적지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 중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필요한지에 대한 꼭 이것이여야만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을 쉬이 내리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내 의지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최근에 미세먼지 때문인지 몸이 축축 처지는것도 사실이었기에 그런 점에서 안색이 안 좋아 보였나 보다.

무엇보다 나는 공동창업자의 안색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더 크게 다가왔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나도 좀 더 신경써야겠다.
나의 안색때문에 걱정이 들지 않게해야겠다. 걱정보단 즐거움으로 같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컨디션도 잘 관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과도 결과지만 그 과정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2018년 11월 14일

지난 1주간의 메인 이탈율은 개편 전보다 더 높아졌다. ㅠㅠ

뭘까...

우리 둘은 기운이 빠졌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더니.
우리는 11월을 고난의 달이될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공동창업자는 우리가 줄 수있는 가치에 대해 생각을 했고
그 결과로 기존의 베스트 글들을 모아놓은 것들을 과감히 빼자고 제안했다.
베스트 글들이 우리의 가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머 글들 위주였다. )
대신에 도피처에서의 기능을 강화하기로 하여
'꺼내놓기' 라는 기능을 개발했다.

기존의 페북과 트위터 처럼 쓰는 공간이 목록의 최상단에 위치하며, 바로 글을 적을 수 있도록
싫어하는 주제에 대하여 보다 간편하게 적을 수 있도록 해놓음로써 우리의 가치에 더 다가서자는 것이었다.

이 기능이 당장 성과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주었다.

우리는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2018년 11월 15일

'콘텐츠로 창업하라' 라는 책을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재미나게 읽은 이유는 이 책이 나에게 정신승리를 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너가 하고 있는게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귀에다 대고 이야기해주는 기분이었다.

콘텐츠로 창업하라의 주 요지는 이렇다.
'상품을 먼저 만드는게 아니라 구독자를 먼저 만든 다음에 상품을 팔아라'

이게 왜 나에게 정신승리를 안겨주었냐면, 지금 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구독자들을 모으는 과정이라고 여기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만약 다른 것으로 피봇을 하게 되면 이 과정이 어차피 필요하고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간의 불확신을 한 방에 없애주는 내용이었다.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찾게 되면 자신감이 붙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근거가 되는 이론들에 의해 얼마나 크고 위대한 일들이 일어났는가.

"우린 잘하고 있어. "
이 생각하나로도 엄청난 힘이 됨을 느꼈다.

그리고 오늘 내가 느낀 이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분별한 위로와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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