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창업기 : 21편 - 마부작침

in kr •  6 years ago 

목차
1편- 무모한 결정 그리고 실행
2편 - 조언과 격려 사이
3편 - 일단 실행하고 보자
4편 -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겠다.
5편 - 우리배가 잘 나아가고 있는지
6편 - 첫번째 실험
7편 - 성장
8편 - 어떻게하면 잘 알릴 수 있을까?
9편 - 다시 원점으로
10편 - 무식하면 용감하다
11편 - 무제
12편 - 소탐
13편 - 대화
14편 -무제2
15편 -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16편 - 소확행
17편 - 새해 그리고 새로운 발견
18편 - 무제3
19편 - 간만에 큰 성취감
20편 - 앞이 보이지 않는 차를 탄 느낌

설기간 동안 쉬기도하고, 부모님 식당일도 도와드리느라 글을 못 적었습니다.

명절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가족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내심 불안해졌습니다.
가족과 친구들 모두 응원해주었지만 지금 너가하고 있는게 잘 될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해주었거든요.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제적으로는 부모님께 도움을 받게 되었고,
나이를 신경쓰지 않기로 했지만 내년이면 세는 나이로 30살이 됩니다.
신경이 자꾸 쓰여요.

이렇다할 성과도 못내었고 아직 법인도 없고... 당장 매출이 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바심이죠.

이제 2월이니 제가 사업이라는 걸 해보겠다고 한지 6개월 째 입니다. 1년도 채 못하고 이렇게 불안하고 힘들어하는 제 자신이
조금은 한심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돌아와서 파트너에게 제 심리적 불안을 다 토로했습니다. 사업의 방향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조바심이 난다고...
파트너는 다 들어주고 원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위안이 되고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막상 파트너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방향을 바꾸더라도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우리 사이트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싫어하는 것을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주려고 했던 가치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려고 하는 가치를 재정비하고, 주가 되는 가치를 담아서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유료 광고로 보내보자.
10명의 활성 유저만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면, 믿음을 가지고 해보겠단 의지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확실한 건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니 힘이 되고 다시 의지가 생긴다는 겁니다.

2019년 1월 28일

멘탈이 중요하다
우리 둘 다 조바심을 안 느낄수가 없다.

2019년 1월 29일

팟캐스트를 올렸는데, 스푼쪽에서 선플이 달렸다.
하나의 댓글이지만 정말 소중하고 감사했다.

2019년 1월 30일

구글 애널리틱스 분석을 했다.
홍보효과가 줄어들자 트래픽이 원상태로 복귀했다.
결국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ㅠㅠ)

컨텐츠는 주제별로 따로 놀고 있었다.
예를 들어 게임 링크를 타고 온 사람들은 게임만 하고 나갔고,
게시글을 검색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그 게시글만 보고 나갔다.

하나의 사이트를 다른 목적으로 쓰고 있던 것이다.
이 트래픽이 다른 곳으로도 흐르도록 물꼬를 어떻게 틀수 있을까...

우리 사이트 본래의 목적을 잊고 다른 것들만 해온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19년 1월 31일

점심에 파트너가 밥을 먹을때 내는 쩝쩝소리가 매우 예민하게 들렸다.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이 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싫어하는 것을 맘 편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향하면서
정작 나 역시도 싫어하는 것을 맘 편히 이야기 할 수 없을을 느꼈다.

사람들이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우리의 비전 아니었나.

자리로 돌아와서 파트너와 함께 회의에 들어갔다.

왜 싫어하는 것을 말을 못할까?

불편해져서?
지적하는 것이라서?

우리나라의 관용적인 표현중에 '다리 떨지마 복나가' 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말이 다리를 떨지 못하게 하려는 , 즉 다리 떠는 것이 보기 싫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조금은 돌려 말한 것이 아닌가싶었다.

싫어하는 것을 이야기 하게 되면 상대방이 나에게 맞춰주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화자는 +가 되지만 그 말을 듣는 대상에게는 - 가 될 수 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기존의 생각이나 행동을 변형해야 하게 때문이다.

'다리 떨지마 복 나가'와 같은 표현은 위 상황을 모면하게 해주는 데,
화자는 다리 떠는 것은 날 위한 것이 아니라 널 위한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 가 될 수 있는 부분을 교묘히 바꿔놓는 화법인 것이다.

싫어하는 것을 쉽사리 이야기 하지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매우 한정적인 상황이고 포괄적이지 못했다.

사람이 무언가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불쾌, 즉 나에게 피해를 주기때문에 싫어한다.
이유없는 싫어함이 있을 수 있을까.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어떤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를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다루어야 하나 했는데, 그건 너무 많았다.

한참을 화이트 보드에 두서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막 적어대고 있었다.
Y축에 피해량 X축에 유머를 두는 그래프를 그렸다.
반비례 직선을 찍 그어놓고 보고 있으니
피해량이 적은 싫음들만 다루면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애초에 무겁지 않고 유쾌함을 줄 수 있는 정도의 사이트로 만들고 싶었고,
심각한 피해를 주는 싫음은 이미 전문화된 사이트가 많이 있었다. (층간 소음, 당뇨병, 정부 정책 등등)

피해량을 정확히 산출 할 수는 없지만 가이드 라인이 생긴 기분이었다.
이 걸 토대로 우리 사이트를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을 적어보았다.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에겐 핵 싫은 것들

싫어한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매우 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싫어함에 대한 동의를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인데, 자칫 그 말을 듣게 된 상대방과 불편한 상황으로 이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프라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개인적 느낌으로는 세대가 젊어질 수록 오프라인에서 이야기를 잘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획일화된 취향에서 벗어나 세계는 점차 마이크로한 취향으로 쪼개지고 나뉘어지고 있다.
혹여나 어디서 그 싫어함을 인정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 사이트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2019년 2월 1일

오늘은 카타르시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트너가 조사해보니 우리가 주고자하는 감정이 마치 카타르시스같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이 단어를 들어보곤 했는데, 희열이나 전율같은 것을 의미하는 건줄 알았다.
그런데 뜻을 검색해보니,
비극을 보고 , 감정이입하면서 자신의 안에 있던 비극적 감정(불안, 우울)들을 해소하는 것을 의미했다.
쉽게 말하자면 슬픈 영화를 보면서 꺼이꺼이 눈물을 흘렸다면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다. 영화가 끝난 뒤
눈물을 닦으면서 개운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 느낀적이 있는데,
영화 세얼간이를 볼 때 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영화를 보면서 꺼이꺼이 우는게 아니라 목이 메이면서 눈물이 주르르르륵 하염없이 쏟아지는 경험이었다.

코미디 요소가 많이 들어간 영화이지만 특정 부분에서는 정말 그랬다.
그 영화를 보고나서 개운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마치 위로 받은 느낌이었다.
눈물이 나온 구간이 완전 비극이 아니라 주인공이 힘들었던 순간에서 극복하는 과정이라
카타르시스라고는 명확히 지칭할 수는 없어도, 감정이입해서 감정을 정화한다는 면에서 뜻이 같은 건 아닐까.

페북 광고로 쿠팡 파트너스를 알게 되었는데,
어쩌면 우리 사이트에 도서관련 상품을 진열하면 잘 팔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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