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1월 28일 ~ 2월5일
5일차
5시 50분에 기상해서 어제 먹었던 그 맛없는 빵을 또 먹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 식사 때 몇 명이 보이지 않았는 것 같다. 혹시 컵라면이라도 먹는 걸까? 차라리 나도 가져온 컵라면으로 아침을 떼울걸…
7시40분에 차는 호텔을 빠져 나와 피렌체로 달렸다. 어제보다 비는 더 굵게 내렸다. 하늘도 더 어두운 게 쉽게 그칠 비가 아닌 거 같았다. 하지만 날씨는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3시간여를 달려 피렌체에 도착했다. 피렌체에 도착하자 가이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본인 소개도 없이 인사만하고 우리를 안내했다. 비가 계속 왔으므로 우리는 우산을 계속 쓰고 따라 다녔다.
피렌체. 토스카나주의 주도로 13세기부터 번성하여 14~16세기에 정치, 경제, 문화 방면에서 이탈리아에서 최강의 도시 국가로 번성했다. 아름다운 구릉과 아르노강을 끼고 예술의 도시, 꽃의 도시로 불리는 피렌체가 번성한 시기는 15세기 메디치 가문의 통치를 받을 때였다. 메디치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예술가들로 인해서 이때 문화, 예술, 정치의 발전이 최고조에 오르며 르네상스의 발상지가 되었다. 미켈란젤로, 단테, 마키아벨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이고 중세의 유적이 잘 보존 된 아름다운 자연과 잘 어우러진 곳이다.
피렌체의 느낌은 어제 갔던 베네치아와 많이 닮아 보였다.그도 그럴것이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가 베네치아로 넘어 갔으니 … 피렌체를 대표하는 것은 단연 “두오모 성당” 일 것이다. 두오모의 뜻은 이탈리아의 대성당을 지칭하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지역마다 두오모가 있는데 특히, 피렌체와 밀라노가 유명하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라고 불리는 피렌체의 두오모는 밀라노의 화려한 고딕식 첨탑으로 위압적인 것과 다르게, 둥근 지붕이 있는 푸근하고 친근한 모습의 르네상스 양식 성당으로 1296년부터 장장 140년간의 세월에 걸쳐 완성된 성당이다.
성당 앞에 섰을 때 그 규모에 위압 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거대한 공룡이 광장을 턱 하니 버티고 서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3개의 청동문이 유명한 “산 조반니 세례당”은 미켈란젤로도 감탄했다고 한다. 이 청동문을 만들기 위해 그 당시 엄청난 돈이 투입되었고 지금의 문은 복제품으로 진품은 근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피렌체에 엄청난 홍수가 나서 대부분의 작품들은 박물관에 있고, 1층에는 홍수에 대비해 작품들은 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테라스에서 보이는 전경이 일품인 “조토의 종탑”은 일정 땜에 계단을 오르지는 못하고 멀리서 바라 보기만 해야 했는데 피렌체를 한 눈에 볼 수 없음에 안타까웠다.
4분정도의 거리에 시뇨리아 광장이 있었다. 13~14세기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광장으로 각종 정치와 사건의 무대가 되었던 곳으로 건물과 광장 곳곳에 예술 작품들이 산재했다. 광장의 중심에는 청동 기마상이 우뚝 서 있었고, 바로 옆 베키오 궁전 앞에는 복제품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과 첼리니의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그리고 지암볼로나의 마지막 작품인 “사비네 여인의 강간” 등은 아주 생생하게 묘사되어 금방이라도 꿈틀거리며 뛰쳐 나올 것 같았다.
골목길을 몇 개 돌아서 걸어가자 단테의 생가가 나왔다. 피렌체에서 1265년에 태어난 단테는 13세기 교황과 황제의 파벌 싸움 속에 있었다. 교황파가 황제파를 누르고 권력을 차지하자 교황파는 다시 교황을 지지하는 흑파와 교황을 반대하는 백파로 다시 분열된다. 그리고 백파에 속해 있던 단테는 결국 흑파에 의해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줄곧 타향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고 56년간의 삶을 마무리 한다. 그가 죽고 난 후 100년이 넘어서 비로소 피렌체에서는 단테에 대한 실책을 깨닫고 그의 유골을 가져오려 했으나, 단테가 마지막 생을 마감한 라벤나는 번번히 거절했다. 그러다 1519년 교황이 그 분쟁에서 피렌체의 손을 들어주자 라벤나는 단테의 유골을 몰래 빼돌리는 것으로 응수하는 등 단테 사후에 그의 시신을 둘러싼 분쟁은 치열했다. 단테의 최고 걸작인 “신곡”은 그가 피렌체로 돌아 올 수 없을 때인 그의 삶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나온 작품이었다.
점심으로 토마토 파스타를 먹고 바로 근처에 있는 공방으로 갔다. 입구에는 가죽 제품을 만드는 기구들이 전시되어 공방을 재현했고, 안으로 들어가자 각종 가죽제품들이 빼곡히 진열된 백화점이 있었다. 가방에서부터 모자, 허리띠, 신발 등 2층 규모에 제품들이 많았다. 과거 피렌체는 가죽제품으로 명성이 자자 했으나, 최근에 와서 중국인들이 많이 유입 되면서 MADE IN CHINA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와서 명성에 많이 흠이 간 상태라 했다. 하지만 일행들은 맘에 드는 제품을 고르기 위해 분주히 매장안을 오가고 했다.
오르비에토로 가기 위해 버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 가는 길 우측으로 아르노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며칠간 계속되는 비에 강은 잔뜩 불어난 흙탕물을 흘려 내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되고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난 “베키오 다리”가 보였다. 베키오 다리는 보행자가 단순히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 다리 난간에 보석점과 금세공 상점이 즐비하다고 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푸줏간과 가죽 처리장, 대장간이 있었는데, 16세기 메디치가에서 냄새 난다는 이유로 이들을 몰아내고 금세공업자들이 들어서며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가이드는 우리들에게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유명한 영화인 “냉정과 열정 사이”의 OST를 들려 주었는데 아주 친숙한 음악이었다. TV 개그프로에서 관객의 동정심을 유발할 때 나오던 음악이었는데, 이것이 이 피렌체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OST라는 것을 듣고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 반가 왔다. 나중에 국내로 돌아온 후 “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를 보았는데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비롯하여 우리가 지나왔던 배경을 보자 반갑고 그때의 기억이 새롭게 살아나면서 애틋해 졌다.
비는 계속 그칠 줄을 몰랐다. 차는 계속 달렸고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과거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 평지를 버려 두고 산으로 올라가서 도시를 건설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오르비에토라고. 이후 침략이 없어 안정된 세상이 되었음에도 고지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서 내려 오지 않고 거기 나름의 문화가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느림의 미학”이라고. 아래 세상에서의 빠르고 치열한 삶 보다는 느리지만 여유 있는 그들의 생활… 궁금해졌다.
차가 후니쿨라 정류장에 도착하자 우리는 후니쿨라를 타고 산중턱으로 올라 갔다. 그리고 다시 마을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달려 갔다. 번거로운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는 듯 동네는 아주 조용했고 거기에다 가을비처럼 포근한 비가 오자 동화속에 나오는 신기한 나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가이드가 일러준 파란 채양이 있는 카페로 갔는데 거기서 카푸치노와 빵을 시켜 먹었다. 따뜻한 커피가 몸속으로 들어가자 몸이 나른해졌다. 그리고 조용한 이곳이 아주 포근해짐을 느꼈다.
골목마다 상가들은 카페부터 조각품, 기념품, 옷 가게 등이 있었는데 그렇게 요란하지도 않았고 손님도 많지도 않는 유유자적해 보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비로 인해서 산 아래 펼쳐진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에 갔을 때 운무에 가려 한치 앞을 볼 수가 없었다. 화창한 날씨에는 멀리 보이는 전망이 아주 아름답다는 가이드의 말에 아쉬움은 더했다.
내일 로마를 가기 위해 로마 근교에 있는 호텔이 위치한 피우지라는 곳으로 갔다. 피우지는 온천이 유명해서 교황의 휴양장소라고 했고, 한국 관광객이 많아서 한국의 어느 동네로 착각이 될 정도라고 까지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속도로가 로마의 고속도로 시스템을 본 떠서 만들었다고 했다.
버스가 숙소에 가까워지자 가로등과 상가의 불빛이 환해지며 가끔은 한국어로 된 상가 간판도 눈에 들어 왔다. 개천의 물소리가 들려오는 한적한 동네였다. 그리고 숙소를 지정 받아 짐을 풀었는데 방은 넓었으나 방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고 썰렁했고, 욕실 또한 휑했다. 그리고 콘센트가 부족해서 전기코드 꽂기가 아주 불편했다. 또한 문 닫기도 불편해서 열쇠를 꽂고 몇 바퀴를 돌려야 그제서야 문이 잠겼다.
식당은 근처에 한식당으로 모두 걸어서 이동을 했다. 식당은 꽤 넓었는데 우리는 지하로 내려가서 오늘의 메뉴인 돼지볶음과 배추쌈으로 저녁을 먹었다. 음식은 정갈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이드가 일러준 근처의 슈퍼마켓으로 갔다. 슈퍼는 꽤 넓었으며 많은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내는 치약을 고르면서 이 제품이 아주 좋다고 했다. 가격도 싸다고. 애들은 여기서도 초콜릿을 골랐고 호텔에서 마실 물도 구입을 했는데 많이 저렴했다. 생수를 살 때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생수 가격이 거의 비슷하지만 여기서는 지역가게 마다 편차가 아주 심했다. 나는 캔맥주를 구입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서 캔맥주와 가져온 컵라면을 먹었다. 오랜만에 얼큰한 라면 국물을 마시자 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톡톡’ 핸드폰에서 알림소리가 났다. 일행 중 젊은 총각이 숙소에 와인과 안주를 준비해 놓고 카톡으로 같이 마실 사람을 초청했다. 하지만 내일 아침 바티간에 가기 위해서는 일찍 취침을 해야 해서 아쉽게도 합류하지는 않았다. 침대는 여전히 썰렁해서 결국 가지고 간 전기매트를 깔았다. 바닥이 따뜻해지자 잠이 몰려왔다.
< 6편에서 계속 >
@홍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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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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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부활!
호출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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