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으로부터 쉽게 단절되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친구를
잃는 고통으로부터도 절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고통을
내안으로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바라보고 키워서 그 고통이 점
점 더 증식을 하게끔 만들고 있었다.콩알만한 고통을 무럭무럭 키워 감
당할 수 없을때까지 팽창시킨 후 한방에 뻥 터트려버리고 마는데 이 방
식이 일반인이 생각하기엔 이해 못하는형식으로 분출된다는데에 문제가
있었다.
나는 뚱땡이를 위해 몰래 그놈 앞으로 적금도 들었다. 가게에서 나오는
수입의 일부를 떼어 우리 네명 앞으로 한달에 얼마씩 적금을 들고 있었
다.물론 애들한테는 알리지 않고 나만 아는 사실이었다. 나는 우리 4가
지 애들을 친구이상으로 생각했다.내가 조직의 보쓰로서 녀석들의 보호
막이 되어주고 삶의 방향성을 같이 고민해오며 부모역할까지 했는데 그
래서 사랑했는데.배신이라니..
내 눈앞에서 가당치도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뚱땡이새끼를 갈기갈기
찢어서 돼지사료로 먹여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리가 무겁고
골이 지끈거렸다.집에서 아버지의 낚시도구를 챙겨 뚝방으로 나갔다.나
머지 4가지 친구들에게 당장 달려가 내사정을 속시원히 말하고 싶었지
만 나에겐 소통의 부재라는 벽이 존재했다.누가 말을 걸어야 간신히 대
답을 할 수가 있다. 그것도 버벅거리면서 말을 더듬으면서. 그래서 2줄
이상의 대화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는지도 잘모르겠고 말하다가 보면 딴소리 하기 십상이다.십알
바위언덕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세칸짜리 카본낚시대를 꺼내 펼쳤
다.날카로운 미늘이 달린 낚시바늘에 뚱땡이의 왼손 목아지에서 잘라온
새끼손가락을 꿰었다. 물고기가 한번 물면 절대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요
령있게 잘 꿰었다.나는 이렇게 뚱땡이의 신체일부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대신 뚱땡이의 배신같은 손가락을 먹기위해 달려드는 물고기를 잡아 회
를 뜰것이다. 날카롭게 날이 서있는 회칼도 준비해 왔다.
"휘릭..풍덩.."
오늘은 운좋게도 바람이 불지 않았다. 바람이 일면 찌가 흔들려 물고기
가 미끼를 무는지 알 수가 없다. 그날은 낚시 꽝치는 날이다. 땅거미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노을빛을 받은 구름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아직
해가 지지않는 하늘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오늘하루도 저하늘은 나처럼 상처받고 괴로워하며 가슴에 시퍼런 멍을
남긴채 노을처럼 사라지는가.)
근처에 누가 있었는지 아까부터 인기척이 들렸다.그러거나 말거나 찌에
캐미(반짝이는 형광 물질)를 달아놓고 뚫어질듯 노려보았다.
낚시가 좋은 이유는 아무생각없이 앉아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매운
탕집 주인이 아닌 바에야 굳이 물고기를 잡아야 할 절박한 이유도 없었
기 때문에 머리속을 텅비우고 멍청히 앉아 있을 수 있다.그러다가 보면
망각이 벌레처럼 기어들어와 아직 지워내지 못한 피딱정이 같은 기억을
파먹어 버린다.그러면 치유가 완료되는 것이다.
"뭐해? 여기서."
여자목소리 같은데 아까 인기척을 내던 바로 그 사람인것 같았다. 나는
이 소중한 치유의 시간을 누구에게도 방해 받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들
은 척도 하지않고 찌만 바라보았다.해가 떨어지고 기분 좋은 어둠이 주
위로 스며 들었다. 시커먼 바닷물에 케미가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마
치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눈부시게 반짝였다.별처럼 빛나고 있는 케
미 아래 낚시바늘에서는 뚱땡이의 새끼손가락이 배신보다 더 지독한 피
비린내를 바닷물에 풍기고 있을 것이다.하루의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낸
하늘과 그색을 많이 닮은 푸른 바다 속.그속을 헤매고 다니던 물고기들
은 이 배신의 미끼를 한입에 집어 삼킬 것이다. 배신으로 배를 채운 물
고기는 바다의 품을 떠나 욕망과 타락으로 들끓고 있는 이 세상으로 끌
려나와 피한방흘리기도 전에 내 칼끝에 난도질 당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밤 뚱땡이의 손가락을 삼킨 바다를 난도질 해버릴 것이
다. 칼은 달빛을 받아 음란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남의 속살을 파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이 난 모양이다.
"저기.. 자리를 같이해도 될까?"
누구도 내옆에 있어서는 안 된다.더러운 피를 맑게 하고 상처받은 영혼
을 치유하는 귀중한 시간을 신성한 의식을 방해 받아서는 안 된다.
"삼락오빠 나야 희연이."
응 그래 희연이였구나.희연이는 여수에 가 있는 내여동생 단짝 친구다.
아주 어릴적 보고 못봤는데 지금은 많이 컸겠는걸.옆으로 한번 쳐다보
려다가 생각을 접고 다시 찌만 바라보았다.물고기들은 아직 입질은 없
었다. 옅은 어둠이 더욱 농도를 짙게 할때까지 기다리려나 보다.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아주 비밀스럽게 인간의 살을 파먹으
려나 보다. 배신자의 살첨을 콕콕 뜯어먹으려는가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옆에 있는 희연이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잠
이 든건가? 하늘도 시퍼런 멍을 검은 이불속에 감추고 잠이 들어 있었
다. 처음 아버지가 나한테 손을 댄것은 목포로 온지 얼마 안 되어서부
터였다.아버지가 다리를 다친 후로는 일손이 부족해도 부르는 데가 없
었다. 일당은 장정 한사람 몫을 가져가면서 일은 그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그렇다고 뻔히 다아는 처지에 품삯을 깎을 수도 없는 일이
었고 서로 난처해지자 아버지를 꺼렸던 것이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하
루일당을 벌기위해 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더욱
밀어내고 싶은게 사람마음이었던가.
결국 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아버지는 그날 이
후 술을 엄청 퍼마셨고 집에 들어와 주먹으로 날 때렸다. 동생은 놀라
도망쳤지만 나는 그냥 남아서 때리는 대로 다 맞았다.나까지 도망쳐버
리면 아버지는 더이상 갈곳이 없을것 같았다.조롱받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가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잠든 후 여동생이 들어왔다.나는
동생이 보지 못하도록 멍든 내몸을 이불속에 감추었다.나는 비록 어렸
지만 내 영혼의 키는 밤하늘의 별처럼 훌쩍 커 있었다.
"움찔움찔.."
드디어 물고기의 입질이 시작되었다.낚시대를 잡고 바닷속에서 미끼를
향해 달려드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읽었다. 한놈 ,두놈..우럭 두마리
와 돌돔이 덤벼들고 있었다. 식탐이 매우 강하고 탐욕스러운 바다 뱀
장어도 한마리 있는듯 했다.
"톡톡..쭈욱.."
물었다.무는 강도와 힘의 세기로 봐선 돔 종류일 것이다.돌틈에 머리
를 쳐박어 넣고 무자비하게 어린생물을 잡아먹는 돌돔일 것이다. 놈
은 입속에 먹이를 물고 잠시 간을 보다가 자신이 입에 문것이 인간들
의 덫인 것을 눈치챘는지 깊은 바다 속으로 잠영하기 시작했다. 깊은
바다속으로 들어가면 가짜 미끼도 가짜임을 망각하고 순순히 자신의
아가미에 몸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재빨리 낚시대를 잡아챘다.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망각과 현실
사이를 팽팽하게 이어주고 있었다.줄이 끊어지거나 바늘이 빠지면 물
고기는 지금의 위험을 망각하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또 바다로
되돌아갈것이고 만약 건져올려진다면 놈의 몸뚱아리는 파도의 물결방
향으로 회가 떠질 것이다. 놈은 파도를 요람삼아 칼날을 무덤삼아 생
을 마감할 것이다.
"에잇! 첨벙 첨벙.."
낚시대를 들어올리자 놈이 드디어 모습을 들어냈다.실망스러웠다. 친
구의 새끼손가락에 식탐의 혀를 댄 놈은 돌돔이 아닌 고등어였다. 회
감으로는 취급도 못받는 잡고기 말이다.
일단은 건져냈다. 녀석은 새끼손가락을 물고 입을 껌벅거리고 있었다.
애타게 물을 찾고 있는 듯했다. 고등어에겐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마치
사막인 것처럼 팍팍하고 건조했던지 등과 아가미가 금세 말라붙어 버
렸다. 내가 살고 있는 이세상은 사막이었다. 갈증나고 메마른 공간이
었다. 나는 재빨리 놈을 눕히고 회칼로 회를 뜨기 시작했다.고등어를
잘 보면 살결이 앞쪽으로 무늬가 져 있는데 이 반대방향으로 칼질을
해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자칫 반대방향으로 회를 떴다간 생으로
일주일 동안 햇빛에 말린 미꾸라지를 날로 먹는것보다 더 심한 악취
를 풍기게 된다.
지금껏 고등어의 생은 파도를 타며 앞쪽으로 살결이 져 있었다. 이제
역방향으로 칼부림을 맞아가며 생을 마감하는 이순간 파도를 거스르
며 처음 태어났던 그바다로 되돌아갈 것이다. 이렇게 원을 그리며 생
명은 순환한다.
희연이는 말없이 깨끗한 천을 바위 위에 깔았다.나는 그 천 위에다가
고등어의 살첨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깔았다.회를 다뜨고 나니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고등어가 아직도 살아서 퍼덕거리고 있었다.녀석은 살
첨이 다뜯긴줄도 모른채 아직도 비명을 지르며 바다를 외치고 있었다.
슬픔에 마취되어 고통을 잊은건가. 지금이라도 바다로 되돌아가면 모
든 상처가 치유되고 곧 다시 예전처럼 신나게 파도를 탈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는걸까.
희연이는 뼈만 남은 고등어를 바다물에 놓아 주었다. 그 뼈고기는 지
느러미를 열심히 휘저었지만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자꾸만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자신의 몸을 뜨게 하기위해 쉴새없이 지느러
미를 움직였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육체를 잃은 뼈고기는 너무 빠르
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슬픈속도로 가라앉고 있었다.
"꼬르륵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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