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은 신이 났습니다.
전날밤 지구본을 들고
"요~오기서 요~기로 가는 거야" 듣기는 했어도
조금 먼 공룡 놀이터에라도 가는 줄로만 알고 있었을 겁니다.
시드니로 향하는 비행기는 밤에 뜬답니다.
꼬박 9시간이 걸리기에 비행기에 올라서도
평소와 같은 수면을 취하라는 것이겠죠.
시차는 실제 1시간밖에 안나는 지라
비행기에서 푸욱 자고 일어나면
시드니의 아침인 것입니다.
비행기가 이륙해서 안전띠 경고등만 꺼지면
그 때부터 사육이 시작되는군요.
보기만 해도 군침도는 에피타이져,
메뉴판에서 내가 직접 고른 메뉴가
어느 호텔 레스토랑 못지않게 서빙되더니
간간히 들러주는 종류별 와인, 앙증맞은 빵들, 색색의 음료,
식사를 아주 정갈하고 깔끔하게 마감해주는
몇차례의 디저트까지..
평소에도 자주 못 먹는 정찬으로 놀란 배를 달래준 다음
30분쯤 후에 비행기의 모든 불은 꺼집니다.
엄마옆에서 좁은 창틈으로 나가기라도 할 듯이 창밖만 바라보다가
어느새 아빠옆의 빈 좌석으로 옮겨 앉아 겁이 난 타잔,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는 겁니다.
타잔을 위해 아빠가 미리 주문해 놓았던 음식이 식기도 전에 치워지고
불이 꺼진 후에서야 타잔은 슬슬 긴장이 풀어지나 봅니다.
어느새 코까지 골며 잠이 들었군요.
살며시 덜컹거리는 비행기의 흐름을 타고 타잔맘도 어느새 스르르...
갑자기 눈이 부셔집니다. 몇시간이 지났나..
두어칸 앞부터 다시 물수건이 나눠지고 있습니다.
다시 아침 사육이 시작되나 봅니다.
몇시간 전 누린 입의 즐거움이 배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아침도 똑같이 펼쳐집니다.
호주 상공이랍니다.
1시간쯤 후면 시드니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랍니다.
서울을 생각하면 햇귀를 볼 수 있는 시간인데도
가을의 호주는 아직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있습니다.
여기가 과연 호주 상공이긴 할까요?
아주 능숙한 솜씨로 비행기는 고스란히 땅에 내려집니다.
웃으며 반기는 낯선 사람들,
그들이 입은 양털 파카가
땀 뻘뻘 흘리며 서울에서 입고 왔던
우리의 긴팔 티셔츠를 무색하게 합니다.
몇시간 후, 멜번으로 가는 국내선으로 갈아탄 타잔가족은
아주 희한한 광경을 봅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여성들이
어렸을 적 한번쯤은 꿈꾸었을 스튜어디스의 모습이
타고온 K항공사와 사뭇 다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스튜어디스,
남산만한 배로 손님을 압도하는 비만 스튜어디스,
게다가 서비스는 더 형편없습니다.
역시 서비스는 K항공?
이곳에서 스튜어디스는 직업인일 뿐 인 것 같습니다.
그 날, 멜번은 바람 천지였습니다.
그래도 춥지 않은 바람.
카레향과 허브향이 섞인 묘한 바람 내음.
우리의 가을 바람과는 또 다른 향의 바람이었죠.
준비된 렌트카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옵니다.
이크!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이곳은 우리와 달리 차량이 좌측 통행인 나라랍니다.
우회전을 하려고 애써 신호를 받아 기다리다가
그대로 상대 차선으로 우회전을 해버렸던 것입니다.
다행히 상대 차선의 차들이 신호를 대기하느라 서있었기에 망정이지
오자마자 대형사고 날 뻔 했네요..휴..
멜번은 숲입니다.
마치 확장시켜놓은 광릉 수목원같습니다.
숲속에 도로가 있고 집들이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어쩜 이렇게도 싱싱하고 선명한 나무들이
도로에 들판에 집앞에 생명수처럼 서있는 걸까요.
먼지가 없고 햇빛이 눈부셔서
모든 사물이 아이들이 그린 그림처럼 선명하기까지 합니다.
멜번 공항에 내려서 스쳤던 바람에
이 나무들의 숨결이 실렸었던가 봅니다.
짙은 초록 내음. ^^
혹시 사진이라도 몇 장 있으시면 https://kr.tripsteem.com/ 여기에서 글 올려보세요. 같은 여행기라도 트립스팀의 보팅 지원이 있답니다. (글은 그냥 평소 쓰듯이 쓰고 마지막에 복사해서 저기에 붙여넣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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