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방에 타잔이 없을 뻔하다

in kr •  6 years ago 

my little Tarzan.jpg

요즘 정말로 타잔이 잠잠합니다.

아니 잠잠했었습니다.

지난 여름 어느 토요일.

일찌감치 이열치열의 저녁식사를 마친 타잔가족은

모처럼 로데오거리 밤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아, 물론 강남은 아니구요,

제2의 강남이랄 만큼 번잡스럽기 그지없는

인접 역주변입니다.

처음 저희가 이곳에서 신혼 살림을 차렸을 때에만 해도

그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아파트 밀집 지역의 전철역 주변에 불과했었죠.

그런데 하나 둘씩 카페가 생기고

단란주점이 생기고

나이트가 생기고

과연 관광일까 싶은 모텔이

성당 옆구리에까지 생겨버렸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강남 로데오거리에서 식상해진 젊은이들이

신대륙을 찾아 물밀 듯 밀려 들어왔다는

확인되지 않는 정보도 있구요.

암튼 그들의 ‘밤’과 우리의 ‘낮’이

성형수술 전후처럼 달라서

나름대로 밤나들이의 재미가 있기도 한 곳입니다.

여름에만 보이는 수박결핍증보다 더 심각하게

유일한 스트레스해소책인 노래결핍증(?)으로

누렇게 떠있는 타잔맘을 위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로데오거리로 나서야 했습니다.

노래방에서의 시간은

남몰래 내뿜은 방귀냄새 사라지듯 빠릅니다.

타잔의 방해 공작에도

혼자서 1시간을 꽉꽉 채우고

10분씩, 8분씩 야금야금 채워지는

노래방 주인의 정성을

옥수수 알맹이 빼먹듯 다 써버리고도

아쉬움이 남으니 말입니다.

잘 시간을 넘겨 반쯤 감긴 눈으로

노래방 소파위를 철퍼덕 철퍼덕

뛰어다니던 타잔이 아니었으면

노래책 한권을 다 불러 재꼈을지도 모릅니다.

시원한 에어컨 기온에서 다시 한여름 기온 속으로 나오니

어느새 밤은 더 활기를 띄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요란한 음악에,

휘황찬란한 광고판에,

몇 배는 많아진 사람들이며,

천방지축으로 한여름밤을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주차장으로 가는 길,

발그레진 샵윈도우 안을

주섬주섬 구경하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밤의 볼거리죠.

아, 밤은 왜 이리도 낮과 다를까.

바로 그 때,

“타잔이 없어 졌어!”

그때만 해도 느려터진 코끼리 한 마리 끌고 가는 양

늦은 제 발걸음이 지겨워진 타잔 파파가

장난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없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혹시 되돌아 올지 모를 타잔을 위해

저를 그 자리에 못 박아놓고

타잔 파파가 여기저기로 뛰어 다닙니다.

졸리면 아무 생각이 없는 채로

덱데굴 굴러 다니는 아이라 더 걱정됩니다.

멀리 가지 않았어야 할 텐데..

시뻘개진 얼굴로 타잔파파가 제게 돌아왔습니다.

옆엔 아무도 없습니다.

이를 어쩌죠?

기다리기만 하던 저도 이젠 찾아 나섭니다.

타잔이 일주일 동전을 모아 기다리는

꼬마자동차가 엥엥거리는 공원에도,

요란한 소리로 길가는 사람을 현혹하는 게임방에도,

좀전에 음료를 사고 나온 편의점에도,

형형색색으로 화려한 스티커 사진기 앞에도,

사람들 틈에도,

어린애들 틈에도,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30분여분 쯤 지났을까요?

물 속에 빠져 귀가 멍해진 것처럼 주위가 아련해 졌을 때,

저만치 타잔 파파의 무릎쯤에

눈주위가 벌개진 타잔의 모습이 보입니다!

조일만큼 조여진 마음이 풀어지며

어느새 타잔의 엉덩이엔

엄마의 손자국이 겹쳐지고 있습니다.

“너 엄마가 혼자다니면 안된다 했지!!”

“잘못했어요~~~ 엉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타잔은 그저 잘못했다고만 하는 것 같습니다.

녀석을 가슴에 꼬옥 파묻고서야

왈칵 눈물이 솟습니다.

타잔이 잘못한 게 아닌데..

타잔이 잘못한 게 아닌데..

“얘가 저쪽에서 울면서 오더라구요,

길을 잃어 버렸다면서..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엄마아빠랑 노래방에 갔다 왔대요.

여기서 같이 기다려 보자 하는데 집이 어디냐니까

00마을 17층이라고 해서 경찰한테 막 연락한 참이예요“

감사하게도 인자하게 보이시는 아주머니께서

딸과 함께 타잔을 봐주고 계셨더랍니다.

경찰 두분과 함께 말이죠.

너무너무 고마워서 고개 숙여 고개 숙여

진정으로 감사드리고 헤어졌습니다.

기진맥진 돌아오는 길,

그 와중에도 타잔은 눈물을 채 닦지도 못한 채

치킨이 먹고 싶다 합니다.

샤워를 시키고 치킨을 먹이고 재우는 밤,

곤히 자는 타잔의 모습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아가야~ 칠칠치 못했던 엄마 아빠도 미안해.

사랑한다 우리 타잔.

요즘 잠잠한 타잔이 집에서도 안보일 뻔 했던

등골이 오싹한 여름 괴기 한편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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