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람 사이가 이어져있다고 생각해?"
그녀의 그 말은 나를 아프게 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나와 그녀가 이어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거니까. 언제나처럼 아무 말 없이 문을 두드리고, 외로움 옆 허리를 매만지기 위해 내 옆 자리에 눕는 그녀. 지난 겨울도, 지지난 여름에도 옆에 살던 그녀는 오랜 벗이었다. 아니, 오래토록 알고 지낸 옆집 누나 정도다, 이렇게 읊조리며 그녀의 존재를 아주 작은 것으로 치부하고 싶어했던 나였다.
"그건 갑자기 왜?"
"그냥. 신기하잖아. 마치 영원할 듯 사귀는 거."
그녀는 항상 억울하다고 말했다. 여자에게는 남자에게 없는 구멍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 그로 인해 매일 밤 한층 더 외로움에 올라타야 한다는 것이. 그 말이 구태여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내가 애인이 있을 때도, 아주 혼자였을 때도 그녀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딱 스무살이 됐을 때 내게 입맞추던 그녀를 기억한다.
"그래도 누군가 옆에 있는 게 좋잖아."
"난 잘 모르겠어. 선처럼 이어지면 언제가 툭, 끊길 것만 같아."
"그럼 어떡해야 하는데?"
"차라리 점처럼 만나는 게 좋은 것 같아."
늘 이런 식으로 우린 한번도 '연애'라는 범주에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각자 애인이 있을 때도 불쑥 찾아와 서로의 몸에 올라타는 일상을 반복했다. 그렇게 격정적이지도,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은 버릇은 오히려 유혹보다 무섭게 그 생명을 이어갔다. 몇 번의 연애가 피고 질 무렵에도 누나는 내 옆집에 그대로 살았다. 하지만 절대 손을 내밀진 않았다. 아무리 외로워 죽을 것 같아도 그녀는 나를 '점처럼' 만나기만을 원하는 듯했다.
"점처럼 만나는 건 외로울 것 같아."
"그 점을 애써 선으로 만들어도 마찬가지야."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면이 도형이 돼야지."
"너 되게 이과스럽다."
"말 돌리기는."
"하긴. 점이 아니라 도형을 사랑해야지."
말이 떨어지기 전에 그녀는 손가락으로 내 사타구니 사이를 문질렀다. 불끈- 하는 기운도 잠시 아까 오갔던 대화가 녀석을 풀죽게 만들었다. '점처럼' 사랑하자는 말. 나는 아직도 틀에 박힌 사람일 뿐인 걸까. 그런 내 미묘한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아랑곳 않고 한웅쿰 제 손에 내 몸을 담았다. 언제나 의지와 상관없이 솟아나는 체온은 곧 가장 끝자락에서 터져나올 태세를 마쳤고, 그녀는 그 가열찬 감각에 함락당하는 내 모습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곧 그녀의 손이 위아래로
선을 그리며
오갈 것이고, 나는 잠깐의 복잡한 감상을 깡그리 버릴 정도로 다시 그녀의 면면을 사랑할 터였다. 누나에게는 아무리 내 것을 부풀려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있었다. 매번 거절당하는 고독함으로 인해 그녀는 띄엄띄엄, 그렇게 드문드문 나를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까.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덮었다 놓아버리는 그녀의 그 구멍으로 인해 나는 왠지 충만했다가 다시 버림받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걸. 거기서 극진한 희열을 느끼면서도 이내 그 텅- 빈 공간 속으로 나를 초대할 수 없는 숙명을 맞닥트려야 한다는 것을.
외로운 존재는 그녀만이 아니었다.
곧이어 그녀의 둔부가 내 배를 장악할 때 나는, 결국 쓸데없는 쓰레기로 남을 이런 생각의 쪼가리를 고이 삼켰다. 덥다. 빠르다. 조인다. 젖는다. 어쩌면 이 순간만큼은 점처럼 사랑한다는 그 말이 마치 우박인냥 내 뱃속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내일 아침, 일어나보니 혼자 덩그러니 두 명 분의 자리를 치워야 하는 헛헛함은 상관없다는 기분이 든다.
구차하게라도 그녀의 방식을 변호하는 내 자신이 우스울 때쯤 그녀는 신음을 모두 토했고, 내 몸에서 그녀의 구멍에 어떤 식으로든 닿고 싶은 일부가 삐져나온다. 그게 오늘따라 더 초라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그녀의 유두처럼 오늘도 딱딱하게, 점처럼 나를 사랑했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굳이 이렇게 다음을 기약해보려는 남자는 오늘도 사랑을 구걸했다.
채워지지 못해 쓸쓸하다는 그녀 앞에서
늘 혼자 서있어야 하는 고독을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2015.10.02 #쮼 #2편
'예전에 썼던 글의 연장선상으로 끄적였는데
그 때보다 더 축축하고, 슬픈 글이 돼버렸다'고 적어놨네요
[점에 대한 고찰] 시리즈는 다섯 조각 정도 써놨었는데...
언제 다시 쓰기 시작하련지 까마득합니다 ㅎㅎㅎ ㅠㅠ
1편부터 한입한입 먹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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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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