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기적 ― 2017-18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로마 v 바르셀로나 후기

in kr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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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완성.
[이미지 출처: 로마 공식 웹사이트. 이하 모든 이미지 동일.])

1.

로마의 기적. 경기 결과는 기적이었고 과정은 드라마였으며 역사적이라기보단 신화적이었다.

8강 조 추첨에서 로마와 바르셀로나가 만났을 때부터 대다수는 바르셀로나의 진출을 기정사실화했다. 로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바르셀로나 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로마 팬들조차도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객관적인 전력, 재정, 역사― 모든 것이 이런 속단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했다.

로마가 마지막으로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었던 2007-08 시즌 이후, 유럽 축구에서 최상위 클럽들과 나머지 클럽들의 격차는 메울 수 없이 벌어져왔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바이에른이라는 최정상 3팀 및 첼시, 맨시티, 파리 생제르맹 등의 부호 팀들이 매 시즌 주전 선수들과 조직력을 지키면서 전력을 안정적으로 강화해왔던 반면, 나머지 클럽들은 그나마 갖춰 놓은 전력도 매 시즌 최상위 클럽들로의 유출 등으로 인해 약화되고 와해되기 일쑤였다. 물론 매 시즌 신흥 강호 및 이변의 팀이 나타났다. 로마부터가 이미 조별 리그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첼시를 제치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첼시가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점으로 인해 로마의 성취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게다가 16강 토너먼트에서는 변방의 샤흐타르를 상대로 고전하다 간신히 올라온 것으로 보인 로마다. 또한 축구 팬들의 평가는 각 클럽에 속한 스타플레이어에 압도적으로 영향을 받곤 한다. 그런데 로마에는 (필드플레이어도 아닌) 골키퍼 알리송 외에는 유럽이 주목하고 탐낼 만한 선수도 없었다. 로마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나 유벤투스 같이 단단해보이지도 않았고, 예전의 도르트문트나 모나코, 이번 시즌의 토트넘이나 리버풀처럼 예측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로마는 8강에 진출한 여덟 팀 중 세비야와 함께 최약체로 보였으며, 심지어 맨유를 꺾는 이변을 선보이며 올라온 세비야가 더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로마를 만나는 행운을 얻은 것은 바르셀로나. 시즌 시작 전의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고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던 팀이자, 어떤 상황에서도 마법을 보여주며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리오넬 메시의 팀이다. 누가 감히 로마의 4강 진출을 운운하겠는가.

캄 노우에서 벌어진 1차전의 결과는 너무나 예상대로였다. 바르셀로나 4:1 로마. 더군다나 주장 데 로시와 센터백 마놀라스가 연달아 자책골을 넣으며 더 처참한 모양새가 되었다. 물론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중요한 원정골을 하나 기록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정도로 양 팀의 전력 차는 명백해보였고, 로마의 와해는 더더욱 명백해보였다. 그들은 무려 두 번의 자책골을 넣은 팀이었고, 큰 점수 차를 메우기 위해 2차전에는 극단적으로 라인을 올려야 할 것이며, 그 뒷공간은 메시와 수아레스에게 위협받을 것이었다. 애초에 로마에 기대할 만한 공격력이나 있을 것인가. 반면 1차전에서 리버풀에게 3:0으로 박살난(심지어 원정골도 넣지 못한) 맨시티는 은근한 기대를 받았다. 그들은 기적을 일으킬 만한 공격력과 스타플레이어들을 가지고 있었고, 상대인 리버풀은 바르셀로나에 비해 불안정한 팀이니까. 오직 디 프란체스코 감독과 선수들, 스타디오 올림피코를 붉게 가득 채운 팬들만이 실낱 같은 기적의 가능성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 결과는 로마 3:0 바르셀로나. 득점자는 1차전 원정골을 넣은 제코, 1차전 자책골을 넣은 데 로시와 마놀라스였다. 그리고 1차전에 기록했던 원정골로 인해 4강행의 주인공은 로마가 되었다. 1983-84 시즌 이후 34년 만의 4강 진출. 1년 전 파리 생제르맹을 상대로 '캄 노우의 기적'을 일으켰던 바르셀로나는, 그것을 뛰어넘는 로마의 기적의 희생자가 되었다. 사족이지만 로마에게는 짜릿한 복수이기도 했다. 2015-16 시즌 조별 리그(캄 노우 원정)에서 바르셀로나에게 6:1 대패를 당한 것의 복수. 이자를 톡톡히 쳐서. 점수 차는 적어도 안겨준 충격은 비할 수 없이 크다. 물론 이 복수 따위, 기적 자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2.

한때 로마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를 하는 팀으로 꼽혔다. 그러나 미랄렘 퍄니치의 유벤투스 이적 이후, 섬세함과 창의력의 부재는 로마의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팀의 전통적인 문제였던 수비 조직력과 멘털리티는 디 프란체스코 감독 이후 개선되었고, 이는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순항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섬세함과 창의력은 개선하기 어려웠다. 이는 로마가 저평가받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4:1을 뒤집어야 했을 때, 디 프란체스코가 선택한 것은 거친 압박과 롱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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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 출전한 선수들. 윗줄 왼쪽부터 마놀라스, 알리송, 파시오, 쉬크, 주앙 제주스, 스트로트만, 제코.
아랫줄 왼쪽부터 나잉골란, 데 로시, 플로렌치, 콜라로브.)

거의 언제나 4-3-3 포메이션을 운용하던 디 프란체스코는, 이번 경기에서 뜻밖의 3-4-1-2 포메이션을 꺼내들었다. 주앙 제주스, 마놀라스, 파시오가 스리백을 형성했다. 데 로시와 스트로트만이 중원을 지키고, 콜라로브와 플로렌치가 양쪽 측면에서 공수를 부지런히 오갈 것이었다. 왕성한 활동량의 나잉골란이 중원과 공격을 쉴 새 없이 넘나드는 1을 맡았다. 전술의 핵심은 제코와 쉬크의 투톱이었다. 193cm 제코와 186cm 쉬크의 장신 투톱. 전체적인 라인을 극단적으로 높게 올리고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시도, 빠르게 공을 탈취한 후 제코-쉬크 투톱을 향한 롱볼 공격을 반복한다. 섬세함과 창의력을 가지지 못한 로마가 가진 무기, 즉 왕성한 에너지의 중원과 장신의 공격수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최강팀 바르셀로나의 약점인 중원의 에너지 부족 및 그나마 평범한 축에 속하는 높이와 파워 문제를 파고든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는 완전히 적중했다. 제코의 높이와 파워를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제어하지 못했고, 경기 시작 5분 만에 선제골을 내준 데 이어 56분에 페널티킥까지 내줬다. 81분의 결승골 역시 코너킥 상황에서 마놀라스의 헤딩으로 만들어졌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로마의 도전적인 전방 압박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고 계속해서 공을 헌납하며 두들겨맞아야 했다. 노장 이니에스타는 스트로트만 등의 압박에 고전하며 어떠한 플레이메이킹이나 마법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공을 빼앗겨 위험을 초래할 뿐이었다. 콜라로브와 플로렌치는 각각 세메두와 조르디 알바를 향해 무섭게 달려들었고, 그러므로 측면을 통한 활로 개척도 여의치 않았다. 따라서 바르셀로나 공격수들에게는 (그들의 팀 컬러와는 전혀 맞지 않는) 롱볼만이 이따금 전달되었고, 메시가 뭔가를 보여주기에는 상당히 가혹한 조건이었다. 게다가 주앙 제주스-마놀라스-파시오 스리백은 높은 라인에도 불구하고 좋은 수비력까지 보여주며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침묵시켰다.

그러나 바르셀로나가 압박과 롱볼에 무력하다면, 지금까지 수많은 팀들은 왜 바르셀로나 앞에서 그토록 무력했던가? 사실 이런 식의 축구는 위험한 도박이다. 롱볼은 기본적으로 정확도가 낮은 공격 방식이며 게다가 상대에게 쉽사리 공을 헌납한다. 전반전부터 매섭게 달려드는 압박 축구는 결국 후반전에 후폭풍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높은 라인은 당연히 높은 리스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전술을 최상위권 레벨에서 구사하기 위해서는 (그 단순해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활동량, 파워, 테크닉, 전술적 역량을 두루 갖춘 우수한 선수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수준의 선수들을 모을 여유가 있으면 일반적인 상위권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 게 당연히 낫다. 지금까지 로마도 그랬다.

무엇보다 바르셀로나는 이 모든 도전을 벗어날 만한 테크닉과 전술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 팀이며, 지쳐버린 상대 선수들을 우아하면서도 잔인하게 요리해버리곤 했다. 따라서 바르셀로나가 왜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는 그러지 못했는가, 그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시즌 시작 전부터 매섭게 제기되었지만 시즌 중의 성공적 행보로 인해 묻혔던 부실한 전력 보강 문제, 테크닉이든 에너지든 전성기에 비할 수 없는 중원, 화려함과 파괴력이 메시에게만 편중되어 있는 공격진, 그 메시의 혹사 문제, 발베르데 감독의 소극적 전술― 믿을 수 없는 실패 후, 지금까지 무패 행진을 달리던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문제점과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이 많은 문제점들로 인해 바르셀로나가 4강 진출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로마 따위에게 덜미를 잡힐 수도 있다고 어느 누구도 생각지 않았다. 바르셀로나가 아무리 문제 많은 팀이었다 해도, 감히 바르셀로나를 떨어뜨리고 올라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팀은 없었으며(레알 마드리드든 바이에른이든), 1차전의 4:1을 뒤집을 수 있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 바르셀로나의 문제만을 강조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이유다. 무패 행진의 바르셀로나와 최고의 선수 메시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서 비참한 밑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은 결국 로마 선수들이다. 활동량, 플레이의 정확성, 정신력 모두에서 로마 선수들은 오랜 팬들조차 놀랄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반전에 워낙 많이, 격렬하게 뛰어댔기에 후반전에 후폭풍을 우려할 만했지만, 로마의 늑대들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멈출 줄을 몰랐다. 정신력 운운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다른 경기에 비해 확실히 정신력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다른 경기에서는 왜 이렇게 안 뛸까? 인간의 정신력이라는 것이 '마음먹기'는 아니라는 좋은 증거다.)

개개인의 열세를 팀으로 커버할 줄 안다는 것. 견고하고 안정적인 수비 조직력. 모든 선수가 경기장을 끝에서 끝까지 뛰어다니는 투지. 이것들은 이번 시즌 디 프란체스코 감독이 로마에 심은 것이다. 적어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다만 공격 전술 측면에서는 분명 아쉽다. 이번 경기 전까지 로마가 무시당했던 이유며, 이번 경기에서조차도 3골 중 2골이 각각 페널티킥과 코너킥 상황에서 나왔다는 것을 들어 로마의 공격적 한계를 운운할 수 있다(물론 지나친 이야기다. 제코가 얻어낸 페널티킥 상황은, 피케가 파울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득점에 근접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내려앉은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이 정도를 한 거다.). 다만 이는 감독만의 문제라기보다 이번 시즌 이적 시장이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점을 먼저 감안해야 한다. 에이스가 될 수 있는 측면 공격수도, 테크니컬한 미드필더도 가지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의 보강이 이루어진 다음 시즌의 모습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3.

이번 경기 최고의 선수는 당연히 제코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선제골을 넣었고, 56분에 페널티킥까지 얻어냈다. 결과뿐만 아니라 경기력 자체가 완벽했다. 공중볼을 놓치지 않았고, 훌륭한 몸싸움 능력 및 발재간으로 공을 지켜내 동료들에게 연결해주었다. 움티티와 피케라는 세계 최정상의 두 센터백이 제코에게 제압당했다. 선제골 및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장면에서 제코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런 데다가 중앙과 측면을 부지런히 오가며 참으로 헌신적으로 뛰었다. 이번 경기 로마의 전술과 기적은 제코 없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제코 커리어를 회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경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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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시작. 이른 선제골이 없었다면…)

쉬크와 나잉골란은 제코와 함께 중앙과 측면에 걸쳐 부지런히 싸우고 침투했다. 물론 제코에 비해 기술적 정확성은 아쉬웠다. 그래도 나잉골란은 페널티킥으로 연결된 감각적인 로빙패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공격적인 위치에 서기에는 기술적인 섬세함이 부족한 선수지만, 기죽지 않는 자신감과 예측할 수 없는 한방을 가졌다. 186cm의 쉬크는 존재 자체로 바르셀로나 수비수들에게 위협이 되었다. 게다가 열심히 뛰고 달려들며 바르셀로나의 빌드업을 방해하고 괴롭혔다.

제코 다음으로 꼽을 만한 것은 역시 데 로시다. 그야말로 로마의 중추였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롱패스로 공격 전개와 기회 창출을 도맡았다. 이른 시간에 제코의 선제골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경기 내내 전방과 측면으로 적절하게 공을 보냈다. 그 덕에 로마의 공격은 계속해서 위협적일 수 있었다. 수비에서도 매 순간 좋은 판단력을 보여줬다. 데 로시는 한때 수비력과 공격력, 파워와 기술을 모두 갖춘 완벽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다. 그 클래스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명백히 증명한 경기였다. 무엇보다 1차전 자책골의 부담을 선제골 어시스트와 페널티킥 득점으로 완벽하게 씻어냈다. 사실 그 부담 때문에, 그리고 10년 전(2007-08 시즌) 맨유와의 8강 2차전에서의 페널티킥 실축의 기억 때문에 골문 앞에 선 데 로시의 모습이 참으로 불안했다. 그러나 카피타노는 망설임 없이 골망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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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득점 후 지체 없이 공을 들고 달려가는 데 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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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지배한 두 명.)

언제나 그렇지만, 스트로트만은 많이 뛰고 훌륭히 압박해주면서도, 공을 받고 지키며 연결해주는 동작이 부드러웠다. 로마의 윤활유. 스트로트만이 이니에스타를 괴롭히는 모습은 이번 경기의 구조(로마의 강점과 준비, 바르셀로나의 약점, 경기의 흐름)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양 측면의 엔진들을 어찌 언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콜라로브와 플로렌치는 헌신적으로 뛰고 달려들며 로마의 공을 운반하고 상대의 전진은 방해했다. 단순히 압박을 잘해서가 아니라 공격력 자체가 날카로웠기에 더더욱 상대(세메두, 알바)는 전진할 수 없었다. 콜라로브의 단순하지만 위협적인 돌파, 공격수들의 머리를 노리는 플로렌치의 정확한 크로스가 번갈아가며 바르셀로나를 괴롭혔다.

주앙 제주스-마놀라스-파시오의 스리백은 극단적으로 라인을 높이 끌어올리면서도 메시와 수아레스를 상대하는 어려운 과제를 훌륭히 수행해냈다. 그들은 정말 높은 곳까지 올라와 적극적으로 공을 탈취해냈다. 특히 오른쪽의 파시오는 측면 공격에까지 깊숙이 가담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발이 느린 파시오가 스리백의 중앙이 아닌 오른쪽에 선 것이 의문이었다. 그러나 마놀라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발재간을 갖춘 파시오가 공격적으로 기여하고, 파시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속도를 가진 마놀라스가 넓은 공간을 잘 커버하면서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1차전 자책골의 또다른 주인공이었던 마놀라스는, 81분 환상적인 헤딩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드라마를 완성했다. 득점 후 세리머니하는 마놀라스의 표정, 그리고 경기 종료 후의 표정은 누구나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교체 투입된 윈데르와 엘 샤라위도 훌륭하게 제 몫을 해주었다. 쉬크와 교체 투입된 윈데르는, 들어오자마자 엄청난 속도를 뽐내며 자신을 어필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기인 킥력으로 마놀라스의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78분, 플로렌치의 크로스에 이은 엘 샤라위의 슛은 이번 경기에서 가장 위협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엘 샤라위의 날카로운 본능은 첼시나 바르셀로나 등의 최정상급 팀들을 상대로도 유효한 무기다.

골키퍼 알리송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이번 시즌 로마 최고의 선수이자 로마 유일의 월드클래스 선수인 그가 이번 경기에서는 가장 조용했다.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무실점을 한 경기인데도. 그만큼 이번 경기 로마의 필드플레이어들은 훌륭했다.

4.

피케는 위험한 상황마다 과감한 태클로 로마를 좌절시켰다. 그러나 56분, 제코를 이겨내지 못하고 파울을 범하면서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다. 91분에는 오프사이드 상황을 보지 못한 심판의 오심을 틈타 위협적인 상황을 연출해냈지만, 불의를 참지 못한 뎀벨레가 공을 골문 위로 보내면서 상황은 종결되었다.

메시는 자신이 못했다기보다는 활약을 할 만한 지원 자체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패배 앞에서 팀의 에이스이자 세계 최고의 선수는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하필 라이벌 호날두가 8강 두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이… 안 그래도 월드컵 대표팀에서도 좋은 지원을 받지 못하고 가시밭길을 걸을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역사상 최고의 팀과 함께 최고의 선수로 올라선 메시가, 화려할 뿐 실속은 엉망인 팀 때문에 고생하고 (다소 부당하게) 조롱을 받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메시와 함께 바르셀로나의 마법사였던 이니에스타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공격 전개든 마법이든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스트로트만 등에게 공을 빼앗기며 위험을 초래하곤 했다. 그리고 이 경기가 이니에스타라는 전설적 선수의 UEFA 챔피언스리그 마지막 경기일 것으로 보인다. 경기 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중국으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2014-15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빅이어를 들어올리며 가장 황홀하게 작별한 차비와 대조되는 씁쓸한 마지막.

5.

챔피언스리그 역사에서, 1차전에서의 세 골 차 이상 패배를 2차전에서 뒤집고 진출한 경우는 지금까지 단 두 번이었다고 한다. 2003-04 시즌 8강 리아소르의 기적(데포르티보 라코루냐 v 밀란), 2016-17 시즌 16강 캄 노우의 기적(바르셀로나 v 파리 생제르맹)이 그것이다. 이제 세 번째로 로마의 기적이 추가되었다. 다만 역사적인 기적의 주인공들이었던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와 바르셀로나는 다음 라운드에서 각각 (그 시즌) 우승팀 포르투와 준우승팀 유벤투스에게 떨어졌다. 과연 로마는 똑같은 길을 걸어갈까, 아니면 새로운 역사를 쓸까. 준결승 상대는 리버풀. 1983-84 시즌 결승전에서 로마를 물리치고 우승을 거머쥔 팀이다. 그리고 지난 시즌까지 로마의 에이스였다가 이적해 세계적인 선수가 된 살라흐의 팀이기도 하다. 뒤얽힌 인연들 속에서, 로마 팬들은 당분간 황홀한 꿈에 잠겨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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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에서도 이렇게 찍자. 경기장 이름도 올림피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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