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토레토, <청년으로서의 자화상>. 이미지 출처)
봄비는 너무 희망을 품고 있어, 비라기보단 꽃밭에 물을 주는 것 같다. 여름비는 너무 거칠다. 따뜻한 안에서 바라볼 때는 가장 좋지만 직접 걸을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비 자체로 매력이 있다기보단, 그 거침 때문에 정반대의 따뜻함과 안락함을 찾게 되어 뜻밖의 정취가 생기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대조의 정취조차 실제로 존재하긴 했던 걸까? 온 천지가 눅눅하고 꿉꿉하며, 그에 맞서기 위해 계속 틀어놓는 에어컨이 정취까지 증발시켜버리는 것이 비 오는 여름날 아니던가? 도대체 어디에 따뜻함과 안락함이 존재했던 걸까? 겨울비는 시시하다. 눈이 되지 못한 검고 질퍽한 비. 장맛비 같은 존재감도 없는, 그저 얼굴을 찡그리게 하고 금방 잊히는 시시한 불청객.
가을 저녁의 비가 가장 비답다. 더위를 걷는, 축제를 걷어내는, 미련과 왠지 모를 쓸쓸함을 떨어뜨리고 이내 씻어내며 마냥 걷게 하는, 그저 비. 그러나 채 식지 않은 따뜻함을 품고 식어가는 비. 가을처럼 떨어지고 금방 사라지는 비. 쓸쓸하다는 말에도 살짝 모자라 침묵하며 그저 흘러가는 쓸쓸함.
이는 얼룩덜룩 낙엽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물감이 번지고 잎이 묻은 비는 구질구질하고 지저분하다. 비슷한 정취를 여럿 덧칠하면 탁해지고 더러워질 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아침에 오는 비여서는 안 된다. 어느 계절이든 아침은 맑은 게 좋다. 눈을 뜨자마자 들어오는 게 잿빛 흘러내림이면 거기에는 쓸쓸함이나 슬픔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초콜릿에 맥주만큼 속에 안 좋은 풍경이다. 차라리 강하게 천둥 번개가 쳐대는 게 낫다. 진한 모닝티. 물론 밖에 나가지 않는 날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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