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관과 징병제

in kr •  6 years ago 

심즈 3 멍함.jpg

(<심즈 3> 中 '멍함' 특성)

군대에는 필연적으로 고문관이 있다. 손이 둔해서든 두뇌 회전이 느려서든 눈치가 터무니없이 없어서든, 아무리 '노력'해도 군 업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는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은 있고 또 많으며 그것을 당당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군대라는 조직은 이들을 일일이 배려해줄 정도로 친절한 조직이 결코 될 수 없다. 그것은 온갖 낙후된 의식과 병폐의 안식처인 한국 군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군대라는, 획일적이고도 절대적인 과업과 한정된 시간 및 자원이 강요되는 조건 자체의 문제다. 이창호 정도는 되어야, 군화 끈을 도저히 묶지 못한다는 이유로 끈이 필요 없는 신발을 받을 수 있다. 사회에서는 당연한 종류의 배려지만 말이다. 또한 군대의 거의 모든 업무와 평가는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고, 따라서 고문관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다른 동료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고문관은 자기 자신이 힘들 뿐 아니라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및 그들의 따가운 시선, 심지어 유무형의 괴롭힘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이 역시 구타를 비롯하여 각종 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되던 때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군대라는 획일적 조건 자체가, 즉 고문관을 생산하는 조건 자체가 그들에 대한 괴롭힘 역시도 필연적으로 생산해낸다. 오늘날에도 훈련소에서 예비군에 이르기까지 공공연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아무도 관심이 없고, 또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할 뿐.

이것이 징병제 안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일까? 징병 검사 과정에서 이런 부적합자들을 걸러낼 수 있도록 제도를 보다 정밀하고 섬세하게 정비하는 방향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문관들이 과연 정식적인 신체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사실 그들은 사회에서는 지극히 멀쩡한 사람들이다. 손이 둔하거나 두뇌 회전이 느리거나 눈치가 없더라도, 사회에서는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반면 병역 면제의 정식적 사유가 될 수 있는 신체적 결함이란, 일상 생활 전반에 차질을 주며 「쟤 힘들겠네」라고 누구나 인정할 정도의 그런 결함이다. 애초에 손이 둔하거나 두뇌 회전이 느리거나 눈치가 없는 것은 결함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불편할 때가 있는 특성일 뿐이다. 꼭 결함이 아니더라도 복무 적합 등급의 산정을 고려해볼 수 있지만, 고문관 특성이 신체 등급처럼 등급화될 수 있는 걸까?

결국 잠재적 고문관을 징병 검사에서 걸러내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특성들이, 군대라는 조건 속에서는 절대적인 결함이 된다.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된 결함도 아니니, 그저 개인의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병신이라고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즉 도저히 노력으로 개선할 수 없으면서도 문제로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황 속에서, 수많은 고문관들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자존감을 바닥 밑까지 떨어뜨릴 뿐이다. 전역 후의 예비군 훈련마저도,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귀찮은 일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공포다. 이 문제가 전혀 공론화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누가 공론화하겠는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거 병신 아니야?」라고 욕하다 잊고 넘어간다. 고문관은 제 스스로를 병신으로 여기며 숨으려 들 뿐이다. 그러므로 고문관을 필연적으로 생산하는 구조가 아니라 고문관 개개인만이 존재하게 된다. 고문관 문제가 아니라 문제적 고문관들만이 존재하게 된다. 오직 그들만이 분노의 대상이 된다.

어떤 제도라도, 개인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도록 강요한다면, 그리고 그 무력함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괴롭힘당하게 만든다면 결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는 결국 자기 자신이 알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정의로운 제도는 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따라 일을 선택하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징병제는 이런 정의의 조건을 치명적이고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물론 징병제를 둘러싸고 논의되어왔던 전통적 주제들에 비하면 이 문제는 우스울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거대하고 신성한 주제들 사이에서, 명백히 실존하고 있는 구체적 고통과 부조리가 철저히 지워져왔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언제나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할 고문관들은 징병제 논의의 테이블에는 앉을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언제나 없었고 없으며 없을 그들의 권리처럼. 거대하고 신성한 목적들 사이에서 문제라는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개인화된다. 이 우스워보이는 문제는, 그럼에도 어떤 진보되고 훌륭한 징병제조차 해결할 수 없는 제도 자체의 결함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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