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미지 출처)
물론 옆에 있는 사람과 꼭 텔레비전이 있어야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직접 대면의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와 섞임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다소 지루하고 피곤할 수 있는 대화를 넘어, 친한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지고의 기쁨을 준다.
혼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즐겁긴 하다. 자세를 자유롭고 편하게 취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엄청난 장점이다. 치킨을 뜯으며 축구를 볼 때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좀 그렇지 않나? 그러나 혼자 있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으면 인간은 곧 지루함에 몸을 배배 꼰다. 개인의 콘텐츠 향유의 관점에서 텔레비전은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텔레비전은 바보상자기 때문이다. ― 그런데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바보상자가 아닌가? 손가락을 더 움직인다고 더 능동적인가?
텔레비전은 개인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적 즐거움의 영역을 현재 가장 쉽게 채워준다. 심즈식으로 말한다면, 텔레비전은 재미와 사교 수치, 필요한 존재와의 친밀도를 동시에 올려준다. 아직은 집에서 아늑하고 아름다운 거실과 소파, 넓은 텔레비전을 뺄 수 있는 시기가 아닌 것이다. 물론 누군가와 함께 살고 누군가를 초대하는 집에서 말이다.
사실 오늘날의 아늑한 거실에서도, 스스로를 개인으로 자각한 구성원들은 거실을 떠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남아 있으려고 해도 리모컨과 화면은 하나뿐이니 어찌 다양한 개인들을 감당할 수 있으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늙은 부모들, 그렇다고 책을 읽거나 다른 개인적 취미에 몰두하는 데도 익숙하지 않은 세대의 늙은이들은 홀로 남은 거실에서 그저 텔레비전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
가족의 이상과 개인의 이상이 공존할 수 있는 걸까? 가족은 언제나 거실에 둘러앉아 있다. 텔레비전은 현대의 화로다. 가족의 온기. 반면 개인에게 거실은 불편하고 비생산적이다. 불쾌하고 숨이 막힌다. 그들은 서재에서 편안함을 찾는다. 그들의 소파는 고독이다. 그런데 가족의 이상이 뭐지? 마치 인류에게 본성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듯, 인류 역사상 언제나 보편적으로 추구해왔다는 듯 전제되는 가족의 이상이란 뭐지? 그 이상에 대해 가장 많이 말하고 '보여준' 교사는 텔레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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