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집

in kr •  6 years ago  (edited)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을 대체로 인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네팔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처님의 탄생지가 어디든 부처님 하면 인도가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인도는 내가 가본 몇 안 되는 나라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나라다.

인도 아그라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묵었을 때다.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정말 살을 바짝바짝 태워버릴 것 같은 한낮의 태양이 지고 나면 게스트하우스 루프레스토랑에서 맥주 한잔 마시며 여행자로서의 호사를 누리곤 했다.
루프레스토랑은 늘 우리 외에는 모두 유럽에서 온 여행객들뿐이었다.

인도음악은 시내 곳곳에서 들려오는데 인도노래 특유의 멜로디는 참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그 날도 어디선가 인도노래가 들려왔다.
성능 좋은 스피커에서 요란하게 나오는 노래가 아니라 어느 집에선가 틀어놓은, 그것도 오래된 라디오에서나 들려올 법한 느낌의 노래였다.
그 노랫소리가 루프레스토랑에까지 퍼져와 나같은 여행자의 마음을 은근히 설레이게 하고 있었다.

해는 서서히 지고 모든 것이 완벽한 초저녁이었다.

그때 맞은편에 있던 어떤 집을 보게 됐는데 그 전까지는 그 집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 노인이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움직이는 그 노인이 눈에 띈 것뿐이었다.

하체만 작은 속옷으로 가린 어떤 깡마른 노인이 사방이 무너진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말이 샤워지 물을 담아놓은 어떤 통에서 바가지로 물을 떠서 몸에다 끼얹는 수준이었다.

그제서야 다 쓰러져가는 그 건물이 그 노인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건물이 집이라는 걸 몰랐던 건 그 건물에는 놀랍게도 지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나마 사방의 벽도 곳곳이 스러져 언뜻 보면 잔해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몇 차례 물을 끼얹는 것으로 샤워를 끝낸 노인은 고단해 보이는 몸을 그 지붕 뚫린 집 바닥에 눕혔다.
그리곤 피곤에 절은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것 같았다.

지붕이 없는 탓에 이 모든 과정을 여과없이 고스란히 보게 된 우리는 너무나도 놀라운 그 광경에 실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연신 혀를 차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했다.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이어야 할 집이 지붕조차 없이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내려다보는 곳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그 노인의 삶이 짐작조차 하기 힘들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멀리서 나지막하게 들려오던 인도노래와 흥청대던 루프레스토랑, 그리고 목욕물을 끼얹던 그 깡마른 노인은 하나의 모순된 조화를 이루면서 인도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 중 하나이다.

그 날 내가 있던 루프레스토랑과 노인의 집 사이에 있던 좁은 골목길은, 여행자와 노인 사이의 삶의 거리 만큼이나 멀게 느껴졌었다.
세상의 모든 반대되는 것을 가르는 일종의 경계선처럼.

여행은 사람을 겸손하게 해준다.
그리고 사는 것은 고행이다.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부처 태어난곳이 네팔이었다니..
저도 인도인줄 알고있었네요..^^;;
인도여행중 가장 인상깊은걸로 박혀버리셨군요..

대부분 인도로 알고 계실 거에요.ㅎㅎ
가끔 인상 깊었던 일들은 기억에 남게 되더라구요.^^

ㅎㅎㅎ 좋은 기억으로 박혀있을지 나쁜기억으로 박혀있을지...
좋은 기억으로 계속 생각이 나면 더 좋을 텐데요~

안 좋은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 좋게 느껴지더라구요.^^

ㅎㅎㅎ 그렇게 되었다면 더 좋구요..
안좋은기억이 계속 박혀서 싫어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잖아요 ㅎㅎ

그런 새로운 경험은 여행이 주는 선물 같아요. 나와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걸 아는순간 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게 계기가 되는것 같아요.^^;

네..여행에서는 참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여행이 좋은 거 같습니다.^^

와... 저도 지금까지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 인도인 줄 알았는데 네팔이었군요! 아는 척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ㅎㅎ 인도는 가보지 못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든 여행은 깨달음을 주지만 특히 인도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글을 읽으면서 저절로 겸손해지네요.

탄생지는 네팔 룸비니라고 하더라구요.ㅎㅎ 충분히 모를 수 있는 거죠.
인도는 정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나라라...쇼킹하더군요.ㅎㅎ

헉 글에 빨려들어감!! 소설읽는 느낌이엿어요 인도 꼭 가보고싶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저야 감사할 일이죠.^^
인도 한번 가보시면 괜찮을 거에요. 재미있어요!

마치 그 노인과 지붕과 벽이 없는 집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있는 기분이네요. 필력이 정말 대단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앗! 과찬을...ㅎㅎ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다행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janglory님!^^

인도 여행 너무 부럽네요 코드님...........
요즘 따라 정말 분노조절이 안되는데 인도에 가서 정신수양하고 싶어지네요 ㅎㅎㅎㅎ

요즘 분노하실 일이 많으신가 보네요.
인도에 가시더라도 정신수양이 될 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도 속 터지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ㅎㅎ

여행으로 얻는 교훈도 참 많은 것 같아요.
인도란 나라 다시 한 번 상기 시키네요.

네..인도는 참 독특해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는 나라인 거 같아요.^^

지붕 뚫린 집에서 사행활을 외국인 여행자에게 노출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희극인 것 같으면서도 비극인 것 같은.. 현실이네요.

저희도 너무 놀라서 웃기도 했지만 정말 무슨 노래가사처럼 웃는게 웃는게 아니더라구요.ㅠㅠ

지구별 여행자 읽고 인도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 가봤습니다. 꼭 가보고 싶네요.

거리가 워낙 멀어 쉽게 가기가 힘든 거 같아요.
저도 다시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여태 못 가보네요.

글읽는중에 순간 내가 인도에 있는줄 알아쪄..

ㅎㅎㅎ나도 쓰면서 옛날 생각 하다 보니 다시 인도에 간 느낌... ㅎㅎ
그때가 좋았쪄...

필력 조금만 때주라...

가져가..별 것도 아닌데 필요하다면 얼마든지...ㅋㅋㅋ
뭐가 아깝겠어!ㅎㅎㅎ

여행은 사람을 겸손하게 해준다..

럭셔리하고 유명한곳만 찾아다니다보면 여행의 참맛을 못 느낄것도 같네요~

주머니 가벼운 배낭여행자만의 특권 같아요.^^

인도로 여행을 간다면 가치관을 뒤흔들만큼 큰 경험이 될 것 같은 상상을 해보곤했어요! 코드님의 글에서도 느껴지네요 ㅎㅎ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싶어요-

한번 가보시면 정말 색다른 모습들을 많이 보실 수 있을 거에요.
놀라운 나라였어요.^^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6 years ago (edited)

지붕이 없다니 햇볕도 뜨거울 텐데... 뭐 다들 삶에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요.
지붕 달린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 같은 하루입니다.

햇볕도 뜨겁고 비가 오면 그 비를 그냥 다 맞아야 한다는 게...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참 많은 거 같아요.

인도 여행을 다녀 오셨네요.
인도에 대해서 모두 안좋은 이야기와 위험한 지역이라고
해서 인도는 여행가볼 생각도 못했어요
그 노인은 참 안됬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분이 보는 삶은 어떤 것인지
알수가 없어서 좋다 나쁘다 말하기는 어렵네요 ^^

인도가 요즘 많이 위험한 거 같긴 해요.
전 오래전 다녀와서 별로 그런 건 몰랐어요.
옐로캣님 말씀대로 노인은 어쩌면 만족하고 살지도 모르죠.
몸을 눕힐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을 지도...행복의 크기는 다 다르니까요.^^

더 풍족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쉽게 잊지 못할 장면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기준에서는 놀랄 만한 장면이었죠.
당시 인도에서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모모꼬님!^^

인도 여행에서 받으신 임팩트들이 크셨을거 같아요
제가 다 알수는 없겠지만 코드님 글에서 상당부분 전달이 됩니다

'여행은 사람을 겸손하게 해준다'는 말씀이 인상적인데요

제게 여행은 그저 아무 생각없이 머리 비우러 가는 용도 정도였기에
크게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감정인데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저도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즐기러 여행을 가죠.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장면인데 이럴 땐 겸손해지기도 하고...ㅎㅎ
어쨌든 여행은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지구별에서도 꽤 먼 곳을 다녀오셨군요..
살짝 부럽기도 하고 멋진 시간을 잘 보고 가요..
사는것.. 고행 맞는 듯 하네요.. ^^

인도가 정말 꽤 먼 편이죠.
사는 게 고행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나라였어요.
mssy1004님! 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