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메이] ‘사이퍼펑크의 전설’은 요즘 블록체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in kr •  6 years ago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_#17] 티모시 메이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백서 10주년 칼럼은 ‘사이퍼펑크의 전설’ 티모시 메이(Timothy May)와의 인터뷰입니다. 메이는 일찍이 공산당 선언을 본뜬 암호화 무정부주의자 선언(Crypto Anarchist Manifest)을 쓴 장본인입니다. 코인데스크는 비트코인 백서와 블록체인에 관한 화두만 던졌을 뿐인데 메이는 무려 30쪽에 달하는 서사시 같은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대부분이 현실에서 동떨어진 채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블록체인 업계를 향한 거침없는 비판과 쓴소리였습니다.

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그의 생각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코인데스크는 전문을 실었고, 코인데스크코리아도 전문을 대부분 그대로 옮겨 소개합니다. 칼럼 속 코인데스크의 질문은 메이의 답변을 정리하며 가상으로 대담을 나눈 것처럼 재구성한 부분임을 밝혀둡니다.


이제 비트코인은 적어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들어갈 확실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금융 분야에서 암호 기술의 발전에 비트코인 백서가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십니까?

저는 비트코인 백서가 나온 뒤 지난 10년간 이른바 ‘비트코인 현상’이라 부를 만한 것들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습니다. 몇 가지 흥미롭게 지켜본 것도 있었지만, 무척 당황스럽거나 우려스러웠던 일도 많았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비트코인은 역사책의 앞부분에 들 자격이 충분합니다. 복식 부기(double-entry book-keeping, 거래할 때 주고받는 양 측면을 모두 기록하는 것) 이후 아마도 가장 중요한 기술 개발이자 개념을 구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사토시가 정확히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제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거래소에 의무처럼 부과되는 고객파악제도(KYC), 자금세탁방지(AML) 규정, 신원 조회와 배경 확인 결과에 따라 계좌를 압류하거나 의심스러운 행위를 비밀경찰 같은 당국에 신고하는 법안 따위는 절대 사토시의 구상에 없었을 거라는 확신은 듭니다. 거버넌스나 규제, 블록체인 등 겉만 번드르르하게 포장된 온갖 개입과 정부의 간섭이 결과적으로 아주 엄격한 감시 국가, 모든 걸 문서로 만들고 관리하는 통제 사회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토시가 아마 이 상황을 지켜본다면 심히 안타까워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어떻게든 자신이 구상한 초기 비트코인의 모습을 구현해 이 상황을 바로잡으려 할 겁니다. 지금 비트코인을 둘러싼 우리의 상황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껏 이룩한 것들을 위대한 성과로 추켜세울 수도 없고요.

물론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에서 갈라져 나온 몇몇 알트코인은 처음 의도한 대로 기능하며 역할을 다하고 있어요. 비트코인을 사거나 채굴하는 방법이 체계적으로 구축됐고, 비트코인을 이용해 수수료를 덜 내고 송금하는 방법도 개발돼 실제로 비트코인 거래에 걸리는 시간이 몇 분 안쪽으로 줄어들기도 했으니까요. 중요한 건 이 거래를 관장하는 중앙의 권력이 없다는 것이겠죠.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고, 거래에 참가하는 당사자들 사이에 신뢰가 없어도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는 점 말이에요. 이제 비트코인을 취득한 뒤 몇 년이고 보관할 수도 있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어요.

그러나 금융 시장에 불어닥친 비트코인이라는 쓰나미는 그야말로 엄청난 혼란과 재앙을 초래하기도 했어요. 완전히 새로운 현상을 설명할 지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갖은 실험이 무수히 실패했죠.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확실히 비트코인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다루는 것도 아직 어색하신 부모님이 깃허브에 접속해서 최신 버전의 비트코인 코드를 사용하는 기기에 맞게 세부사항을 터미널로 조정한 뒤 내려받아 어렵잖게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세요? 굳이 부모님 세대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비트코인은 여전히 널리 보급됐다고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보편화는 요원한 상황에서 제 눈에 더 들어오는 안타까운 상황은 한둘이 아닙니다. 프로그램은 자꾸 먹통이 되고, 온갖 해킹과 사기에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를 포장해 ICO를 한답시고 한몫 크게 건지려는 불나방들은 곳곳에 널렸습니다. 기본적으로 프로그래밍 자체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정말 중요한 비전을 실현할 야심찬 이들 가운데는 능력 있는 사람이 너무 없습니다.

비트코인 백서 10년을 맞아 인터뷰 처음부터 온갖 초를 치고 있는 것 같아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지금 상황은 완전히 엉망진창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사토시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정말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아이디어,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의 시작, 첫걸음에 불과했어요. 사토시조차 2008년에 소개하는 비트코인을 가리켜 신탁으로 받은 궁극의 정답 같은 것이 절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거든요.


사이퍼펑크 진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대체로 당신과 비슷할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 아니면 반대로 비트코인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말하면 비트코인 백서에 담긴 아이디어가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을 비트코인 세계로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실크로드(Silk Road) 같은 암시장에서 초기에 비트코인이 쓰이기도 했고요. 비트코인이 처음부터 “규제 당국과 조율을 거친” 상품이거나 “(제도권) 금융기관 인증” 상품이었으면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을 겁니다.

실제로 아마 기억하시는 분이 거의 없을 것 같지만, 한참 전에 금융기관들이 나서서 SET라는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선보인 적이 있죠. Secure Electronic Transfer, 그러니까 안전 전자 결제 프로젝트로 금융기관이 보안을 책임진 프로젝트였는데, 혁신적인 요소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하나도 없는 그냥 어려운 법률 용어의 나열에 불과했죠. 사이퍼펑크 진영에서는 당연히 거들떠보지도 않았고요.

사이퍼펑크 가운데 이른바 암호 금융(financial cryptography)이라는 분야가 한창 뜰 때 그쪽 기술 개발에 몸담았던 이들이 몇몇 있기는 했습니다. 다만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 스투 헤이버(Stu Haber), 스캇 스토르네타(Scott Stornetta)를 비롯해 암호학을 학술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한 이들의 프로젝트는 사이퍼펑크의 관심 밖이었어요. 이 프로젝트는 대개 암호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고, 금융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우선순위가 아니었죠.

그러나 지난 10년간 이런 경향도 분명 바뀌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세상으로 몰려들었고, 굵직굵직한 콘퍼런스가 거의 매주 열리다시피 하다 보니 다 따라가기 힘들 정도예요. 대부분은 2008~2010년 사이 시작된 비트코인 시대(Bitcoin Era)에 사이퍼펑크에도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겠지만, 어쨌든 비트코인 덕분에 암호화와 사이퍼펑크의 역사도 새로 쓰인 셈이죠. 원래 사람들은 특히 단선적인 서사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토대로 역사를 바라보고 상황을 이해하기 좋아하잖아요.

미래는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을 아끼겠습니다. 지난날엔, 그러니까 벌써 꽤 오래된 1988년부터 1998년까지 약 10년 동안 저는 특히 감시 국가의 등장을 비롯해 많은 것에 대해 참 부지런히도 발품을 팔며 이야기를 하고 다녔죠. 암호화 무정부주의자 선언을 쓴 게 1988년이고, 1992년부터는 사이퍼펑크 리스트를 만들었죠.

대체로 비트코인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시는 것 같네요. 아니면 비트코인 현상을 주도하는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태도와 인식이 사이퍼펑크가 보기에 부족한 탓일까요?

맞아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비트코인이 뭔지 정확히 알지도 모르는 것 같은 사람들이 그저 욕심만 가득해 온갖 호들갑을 떨어대며 “별을 따러 가자!”느니, “존버(HODL)만이 살길”이라느니 말도 많죠. 제가 지금껏 본 모든 허풍 중에 가장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아요.

가격이 터무니없이 오른 정도만 놓고 보면 사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이 더욱 심각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비트코인 회사가 수백 개가 생겨나고, 수많은 사람이 비트코인 업계로 몰려들어 전문가를 자처하며 언론은 비트코인 관련 소식을 그야말로 쏟아내는 모습은 역사상 최악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비트코인 업계의 영웅 숭배 문화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입니다. 닷컴 버블 때도 이런 건 없었어요. 개인적으로 온갖 콘퍼런스에 백서, 보도자료에 언론이 너무 과도한 관심을 준다고 생각해요. 전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얄팍한 상술투성이거든요. 언론도 여기에 동참해 상황을 부추기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물론 각 기업도 기술의 실체가 무엇인지 별 고민 없이 일단 먼저 침 발라놓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도 같아요.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별반 다를 것도 없는데 관련 특허를 수십 개씩 출원한 곳도 있죠. 가만 보면 그 가운데 1990년대에 한창 논의돼 이미 결론이 난 주제에 관한 것도 많습니다. 특허 당국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신청서들을 잘 걸러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진짜 많은 것이 걸린 상황에서 첨예한 법적 다툼이 일어나면 그제야 부랴부랴 특허 내용을 꼼꼼히 검토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요.

다시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프라이버시 혹은 익명성을 지키느냐 아니면 고객파악제도(KYC)에 따라 거래 당사자의 신원을 중앙 권력이 일일이 확인하고 관장하느냐의 싸움입니다. “권력을 분산하는(decentralized), 무정부주의(anarchic), 개인 간 직접 거래(peer-to-peer)”냐, 아니면 “권력을 집중하는(centralized), 중앙의 승인을 받아야만 거래할 수 있는(permissioned), 권력이 뒤에서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느냐(back door)”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프라이버시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이퍼펑크나 사토시, 다른 선구자들은 중앙의 승인이 없이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으며 거래 수단으로 돈을 주고받는 과정은 중개인 없이 개인 간에 직접 하는 방식을 고집해왔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법정화폐를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죠.

돈을 지급하는 사람(buyer)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문제에 관한 한 생각이 가장 앞섰던 선구자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데이비드 차움을 꼽겠습니다. 예를 들어 큰 상점이 물건을 팔 때 누가 이 물건을 사는지 확인하지 않고 결제를 처리하는 겁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오늘날 현실은 정반대죠. 월마트나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는 소비자들의 신원, 누가 무엇을 언제 얼마어치나 샀는지를 전부 다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죠. 경찰은 기업에 이 데이터를 돈을 주고 사거나 아니면 영장을 발급받아 열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절차는 나라마다 그 투명한 정도가 천차만별입니다. 영장 같은 것 없이도 중앙의 권력이 모든 이의 개인정보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나라도 많습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는 사람이 무엇을 샀는지, 아니 무엇을 사려 했는지 공개되기를 꺼리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사는 쪽 말고 파는 쪽의 프라이버시와 안전도 문제가 됩니다. 매매와 거래 정보를 손쉽게 추적할 수 있는 곳에서는 거래 당사자에게 위험한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법으로 피임이 금지된 나라에서 피임약이나 피임 기구를 파는 사람들은 누군가 거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면 목숨을 걸고 장사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명예훼손이든 종교적인 국가에서 신성 모독죄에 해당하는 행위든, 정치적인 보복이든 이유야 얼마든지 가져다 붙이면 그만입니다.

디지캐시(Digicash)처럼 사는 쪽의 익명성을 강조하는 세력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이들,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통행료를 내는 운전자들의 신원이 자동으로 기록돼 누군가가 그 기록을 모두 관리하는 사회는 문제가 있죠. 하지만 실제로 어떤 발언이나 행위 때문에 권력의 검열과 추적, 박해를 받는 이들은 대개 사는 쪽보다는 파는 쪽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사는 쪽과 파는 쪽의 경계는 사실 확연히 나뉘지 않습니다. 물건과 대금이 오가는 화살표의 방향은 수시로 바뀌곤 하죠. 사토시도 비트코인 백서에서 거래 과정을 추적하기 어렵게 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할 때 사는 쪽은 물론 파는 쪽의 익명성도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이론적으로 완벽하지 못했죠. 비트코인이 현실에서 구현되기 시작한 뒤에도 이 문제는 사실상 진척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의 혁신을 모색하는 세력이라면 진정한 혁신을 가로막으려는 중앙의 권력과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지금 암호화폐를 둘러싼 이 모든 과정이 결국 또 다른 페이팔 같은 서비스나 좀 더 나은 은행 간 거래 시스템을 만드는 데 그치고 말 거라면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전혀 없죠. 핵심은 거래 과정을 장악하고 거래를 승인하는 게이트키퍼를 우회하고 말도 안 되는 수수료를 챙기는 중개인을 무력화하는 데 있습니다. 위키리크스에 기부하는 돈이 어디로 가서 어디에 쓰이는지 중개인이 도대체 왜 알아야 합니까?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돈을 보내고 받는 데도 제약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규제 친화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암호화폐를 죽이려는 시도나 다름없습니다. 암호화폐를 페이팔이나 비자 카드의 아류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암호화폐를 규제의 틀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를 단호히 거부하고 싸워야 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여기저기 막 적용하려는 상황도 대부분 규제에 따르는 것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하긴 생산 및 유통 과정의 모든 기록을 퍼블릭이든 프라이빗이든 블록체인에 저장하겠다는 것과 같은 이용 사례는 별 의미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 식으로 공급망을 따른 거래 내역을 분산원장에 기록하는 것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그냥 데이터베이스를 백업해두는 또 다른 방식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하기도 했죠. 또한, 기업이 계약 내용이나 원자재 구매, 배송 일시 같은 중요한 정보들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대중에 공개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안일합니다.

우리가 왜 처음에 비트코인에 열광했나요? 거래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권력을 우회함으로써 무력화하고, 실크로드 같은 시장에서 개인과 개인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거야말로 정말 멋진 일이고 진짜 혁신이죠. 페이팔의 아류를 만드는 데는 분산원장 기술이 아무런 쓸모도 없습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이른바 상자 밖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미 아는 것에 새 기술을 접목할 궁리만 할 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뭐든 억지로 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너무 재미있어서 즐겁게 무언가에 매달릴 때 비트토렌트(BitTorrent), 믹스넷(mix-nets), 그리고 비트코인처럼 혁신적인 무언가가 나오기 마련이죠. 그래서 새로운 것을 적용해볼 방법을 열심히 궁리해보라는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막연히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바꿔놓을 세상을 믿는 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도전해서 혁신을 이뤄낼 거라는 예감이 들기는 합니다. 정해진 조직의 틀 안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는 기업에서는 아무리 해봤자 제대로 된 혁신이 나오진 않을 겁니다.

비트코인에서는 말이 곧 돈입니다. 수표, 양해각서, 배송 계약, 돈이 실제로는 오가지 않고 철저히 약속과 기록으로만 거래하는 하왈라(Hawallah) 은행은 모두 각기 다른 형태의 돈을 쓰고 있는 겁니다. 닉 자보(Nick Szabo)가 설명한 것처럼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를 금이라는 자산과 비교해보면, 금이 지닌 가치와 속성을 비트코인도 거의 다 갖추고 있습니다.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비트코인은 디지털에만 있으니 무게가 나가지 않고, 훔치거나 압류하기도 어려우며, 와이어로 연결만 되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보낼 수 있죠. 금덩이를 옮겨야 할 때는 가장 빠른 화물기에 실어 보내도 몇 시간이 걸리지만, 비트코인을 보내는 데는 길어야 몇 분이 걸릴 뿐입니다.

그런데 지폐나 동전, 아니면 어딘가 더 공식적인 문서처럼 보이는 수표도 결국엔 은행이나 국가처럼 신뢰할 수 있는 제삼자가 중앙에서 관리하는 권한에 기댄 제도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신뢰의 기반이란 국가가 세운 법이고, 좀 더 옛날식으로 말하면 왕의 칙령이었죠.

반대로 비트코인을 주고받는 과정은 완전히 다릅니다. 수학적으로는 대단히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만, 핵심만 추리자면 결국 누구한테 (어느 주소로) 얼마를 보내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비트코인 거래를 차단하는 건 결국 그 말을 못하게 막는다는 것인데, 그런다고 비트코인을 주고받는 데 쓰이는 기술은 멈출 수 없습니다. 코디 윌슨과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Defense Distributed)의 사례에서 정확히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글로 쓴 것은 표현에 해당하고, 이는 곧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에 따라 다른 무엇보다 먼저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비트코인의 거래를 관장하는 코드도 표현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제 전반을, 아니면 적어도 일부분이라도 중앙의 권력이 장악하지 않는 경제 체제로 새로 꾸리려 할 때,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코드를 보호한다는 의미에서는 일종의 검열도 필요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어떤 식으로든 미국이나 주권국가의 법체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코드가 곧 법이다.” 같은 문구가 희망 사항일 뿐 실제로 효력을 갖는 말이 아닌 이유도 마찬가지죠.

비트코인은 그 자체로 기존 법에 구속받지 않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특성을 살린 결제 방식에서는 이른바 입금 취소(charge-backs)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검증된 거래는 되돌릴 수 없으므로 한쪽이 이를 파기할 수 없고, 여기서 분란이 발생했을 때 이를 중재하기 위해 법이 개입할 여지도 없습니다. 비트코인이 발전하면 이 속성이 변해 비트코인 거래를 관장하는 원칙과 법이 생길 수도 있는데, 지금 단계에서는 누가 이 제도를 어떻게 구축해나가게 될지, 어떤 법이 적용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혁신적인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기득권 세력은 이 기술을 달가워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발명했을 때 성경을 해석하던 독점적 권위를 잃게 된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기술을 눈엣가시로 여겼죠. 무기, 불, 인쇄기, 전화기, 복사기, 컴퓨터, 녹음기 등 이런 사례는 역사에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이 싫어한다고 해서 개발할 권리를 인정받은 사람만 개발에 참여하거나 규제를 해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또 새로운 기술이 보통 최선의 상황에 적용돼 곧바로 진보를 이끄는 경우는 사실 잘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영역에서 먼저 쓰이기도 하고, 악당들이 발 빠르게 기술을 채택하기도 하죠. 물론 누가 누구를 악당으로 규정하는 문제가 있겠지만요. 미국에는 소련이 악당이고, 반대로 소련에는 미국이 악당이었으니까. 아일랜드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에서는 피임법을 공유하고 알리는 것조차 금지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 가운데, 원래 가치와 취지에 맞게 잘 운영되는 사례로 꼽아주실 만한 게 있을까요? 먼저 비트코인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원래 의도한 바를 이루는 데 잘 쓰이고 있는 건가요?

앞서 말했듯이 비트코인은 기본적으로는 원래 비전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화폐를 주고받을 수 있고,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쓸 수도 있으며, (자산의 속성 가운데 하나인) 투기 목적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많은 암호화폐, 각종 블록체인에는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누구나 쉽게 떠올리거나 이해할 만한 이용 사례조차 없으니까요.

실로 쓰임새가 다양한 토큰이 선보이고 있죠.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지급되는 평판 토큰(reputation token), 관심을 받는 정도에 따라 지급되는 관심 토큰(attention token), 자선 목적의 기부에 특화된 토큰(charitable giving token)까지. 전부 다 취지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저는 알맹이 없이 겉만 번드르르하게 꾸며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더라고요.

특히 이 토큰들이 주목받은 계기도 비트코인이 부상한 과정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이더리움도 아직 재미있는 이용 사례를 못 봤어요. 적어도 저는 못 봤다는 뜻입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레딧이나 트위터를 들여다볼 시간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그러고 싶지도 않기도 하고요.

이제 알아서 개발과 진화에 속도가 붙고 있는 블록체인이라는 산업은 여러 갈래로 분화하고 있습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 은행이 관장하는 블록체인, 퍼블릭 블록체인, 아니면 심지어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활용한 프로젝트도 상당히 많죠. 쓸모 있는 이용 사례가 나올 수도 있고, 순전히 투기용 아니면 진지한 고민 없이 찔러보는 데 그치고 마는 것들도 적잖을 거예요. 솔직히 청혼하는 이벤트를 왜 굳이 블록체인에다 기록한답니까? 그런 건 기술 혁신에는 아무런 기여도 못 하겠죠.

어쨌든 블록체인 세상에서는 이제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스타트업 개수는 물론이고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모여 만든 컨소시엄, 대체 암호화폐, ICO, 콘퍼런스, 엑스포, 하드포크, 새로운 프로토콜까지 이 바닥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는데, 그런데도 새로운 콘퍼런스가 거의 매주 열리고 있어요.

사람들은 도쿄, 키예프, 칸쿤을 돌며 행사에 참석하느라 바쁩니다. 작은 콘퍼런스에도 몇백 명 정도는 쉽게 모이고, 규모가 큰 콘퍼런스는 8천 명, 1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이 모이죠. 새로운 신용카드를 출시할 때 이만한 관심이 쏠릴까요? 세상 사람 대부분이 모르는 사이 태어난 비트코인은요?

사람들은 그 많은 행사에 직접 참석하고 관련 소식은 훑더라도 사실 프로젝트의 바탕을 설명한 기술에 관한 세부사항은 읽고 이해할 여력이 없어요. 그러다 보면 새로운 것이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이 바닥에서 지치거나 토론이 공허하게 느껴지겠죠. 아직 명확히 손에 쥘 것은 없는데 이를 얻기 위해 들여야 할 품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제 주변에 암호화폐로 큰돈을 벌었거나 규모가 꽤 되는 자산을 운용하게 됐다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비트코인이나 비트코인캐시에 투자한 사람들입니다. 라이트닝(Lightning)이니 아발란체(Avalanche)니, 30위권 혹은 100위권에 드는 알트코인에 손을 댄 사람 중에는 그만큼 잘 됐다는 사람 못 봤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암호화폐를 가치를 이전하는 거래에 쓰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시는 건가요?

글쎄요, 이 모든 암호화폐를 둘러싼 관심과 열풍이 기껏 모든 걸 문서로 만들고 기록해 국가(중앙 권력)가 전에 없는 감시의 날을 세우는 사회로 이어진다면 엄청난 재앙이 되겠죠. 그럴 가능성이 크지야 않겠지만, 우리 모두 잊지 않고 늘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이른바 고객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으면 현금 거래는 물론 송금이나 수표도 보낼 수 없는 현재 상황과 암호화폐 기반 거래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암호화폐 거래에까지 지금의 금융 거래 관련 규제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다 보면 암호화폐의 장점을 하나도 살리지 못한 괴물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말 겁니다. 그런 시스템은 없느니만 못하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려는 나라들이 이미 여럿 눈에 띕니다.

쉽게 말해 인터넷 신분증을 만들겠다는 시도에 우리는 모두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일리 있는 말씀이긴 하지만, 반대로 오늘날 인터넷이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인터넷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본뜬 것은 또 아니지 않나요? 그러면서도 인터넷이 문제가 많다지만 분명히 인류의 진보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주의를 시키는 겁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듯이 돈과 가치를 이전하는 거래를 제한하려 한다면 그거야말로 끔찍한 일이라는 거죠. 걱정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분이 계실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고객파악제도는 결국 “지금 네가 사준 김밥값 다음 주에 알바 월급 받으면 갚을게”라는 말을 금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일 수도 있어요.

이는 곧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과 마찬가지죠. 헌법에서 보장한 권리를요. 고객파악제도를 책과 언론에 적용하면 ‘독자가 누군지 신원을 확인해서 (권력이 정한 기준에) 문제없는 사람만 읽을 수 있게 하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어요. 자유를 보장하느냐, 아니면 모든 것을 중앙에서 관리하며 일일이 승인을 받아야 실행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느냐의 갈림길이요. 그런데 사실 이 논쟁은 무려 25년 전에도 무척 활발했어요. 당시 정부와 경찰을 비롯한 중앙 권력도 이를 잘 알고 있었죠.

그때부터 이어진 논쟁과 힘겨루기의 결과가 지금 우리의 일상생활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죠. 중앙 권력은 요소마다 촘촘히 감시 카메라, 스캐너를 설치해두었고, 암호화와 프라이버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 개발되자 그에 대응해 강제로 암호를 풀어내는 권한, 백도어, 에스크로 같은 개념이 등장했죠.

기업들은 이른바 기업형 블록체인을 구축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는데, 대형 컨소시엄도 생겨났고, 규제에 부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카르텔이 형성된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PC에 몇 기가바이트는 족히 되는 사진, 편지, 사업 관련 업무 정보를 들고 다니는 시대에요. 권리장전이 쓰인 시대에는 아마 자료를 일일이 인쇄해 집안을 가득 채워도 스마트폰 속 자료에 못 미쳤을 겁니다. 그러니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중앙의 권력이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도 문제지만, 미국보다 훨씬 더 문제가 심각한 곳도 많아요. 데이터를 제대로 지켜낼 방법도 얼른 고안해내야 하고, 무엇보다 법을 만들고 정책을 세우는 정치인들이 사안의 심각성을 알아야 합니다.

어쩌면 데이터 침해나 범죄를 법으로 막거나 정부가 감독하면 더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을 비롯해 정부가 어쨌든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들에서는 더욱 그런 여론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럴수록 우리는 미국 정부가 가혹한 행위를 묵인하거나 방조해온 역사를 떠올려야 합니다. 모르몬 교도들을 박해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살했으며, 온갖 폭력을 방조하고 일본인의 후손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무작정 감옥에 집어넣은 적도 있어요.


정부 권력이 감시 사회의 선봉에 서 있는 중국이나 이란 같은 나라에서는 고객파악제도가 필연적으로 인터넷 검열(know your writers)로 이어질 겁니다. 그 결과는 대단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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