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한 달을 살아보기로 결정한 후 가장 먼저 고려했던 사항은 숙소였다. 1박, 2박의 여행에서도 펜션이나 호텔의 위치와 가격에 따라 여행의 동선과 예산이 좌우되는데, 하물며 30박을 머물 장소를 정하는 일이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여행기간을 먼저 정하긴 했다. 그때가 5월 초였으니, 6월 중순경에 예정돼 있던 개인 일정에 앞서 다녀올 수 있도록 다음 주 안으로 출발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나마 성수기 전이라 항공권이나 숙소 예약을 걱정할 일은 없어 보였고, 날씨도 내가 딱 좋아하는 햇살 밝고 적당히 따스한 늦봄 무렵이란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1. 숙소
에어비앤비를 훑어봤다. 한달살기 숙소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독채형 원룸의 시세와 비교했을 때, 장기 투숙 시에 더 저렴한 셰어 룸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 아주 저렴하고 한적한 곳에 위치한 개인실을 발견했다. 전문적인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아닌지 정보는 약간 부족했지만, 아이 엄마인 데다 후기들도 나쁘지 않은 정감 가는 곳이었다. 한 달을 지내는데 50만 원대의 가격이었다. 게다가 개인실. 이렇게 더 안 알아봐도 되나 싶을 정도로 끌렸기에 예약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아차 막상 예약을 하려 보니 내가 망설이고 있던 사이에 다른 예약이 이뤄졌는지 결제 진행이 되지 않았다.
역시 사람 마음이, 놓치고 나면 더 아쉬운 법이다. 쉽사리 쿨해지기 힘들었다. 그 가격에 그 정도 숙소를 더는 구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나의 망설임을 자책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일단 호스트에게 문의를 해놓고 더는 그에 대해 생각지 않기로 했다.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숙박업체에 대해 일종의 '인연'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인연이면 머물게 될 것이고, 아니라면 다른 곳을 찾으면 될 일이었다. 게다가 숙소 말고도 당장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결국 다음날 호스트로부터 답변이 오고 에어비앤비에서 예약 확정도 됨으로써 숙소는 이틀 만에 정해졌다. 한 군데 계속 머물기보다는 일주나 이주 단위로 숙소를 달리 예약해서 여행 거점을 바꾸는 게 좋지 않나 싶은 생각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가격'과 '개인실'이라는 요소가 충족됐으니 그거면 됐다는 판단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한 달을 지내고 보니 당연히 장단점이 있었는데, 빠르게 알아보고 정했던 만큼 내가 책임져야 할 기대와 만족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완전한 독채가 아니라 호스트, 다른 게스트와의 공동생활에 따르는 제약이 있었고, 한달살기를 처음 맞이하는 호스트 분은 친절했으나 편하지는 않았다.
막상 한달살기를 해보고 나니, 내가 다른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를 원하지 않을 바에는 돈이 더 들더라도 독채에서 지내는 게 속이 편했을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어떠한 선호도 없이 나는 그저 내 '공간' 만 정해지면 어떻게든 한 달을 잘 지낼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숙소였고, 지내면서 생겼던 불편은 어차피 겪어보기 전에는 예상할 수 없던, 감당할 몫이었다. 모든 결과론은 필연적으로 이미 가진 만족을 뛰어넘는 욕심을 수반하기에 대체로 아쉬움이 남는 법이다.
#2. 항공권
숙소 확정을 하자마자 항공권을 알아봤다. 가는날과 오는날이 확실하니 더 알아볼 것은 시간과 가격뿐이었다. 출발일 아침 일찍이면 가장 저렴한 가격이었으나, 집에서 김포가 가깝지는 않으므로 첫날 아침부터 분주하기는 싫었다. 점심 무렵의 적당한 저가할인 티켓을 찾아 예약했고, 돌아오는 날 티켓은 오전 무렵으로 했다. 아무래도 장기 여행이다 보니 마지막 날까지 아등바등 더 구경하고 올 필요 없이 일찌감치 올라온다고 정해놓으면 될 일이었다. 덕분에 왕복 비행기 값이 9만 원을 약간 넘어가는 수준으로 저렴했다.
검색은 네이버를 이용했고, 결제는 인터파크에서 했다. 아무래도 이런 예약과 결제일 수록 초특가가 아닐 바에야 네임밸류와 편의성이 선택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참, 어쩌다 보니 오가는 비행기는 모두 제주항공이었다. 이처럼 항공권 예약에 있어 딱히 어떤 브랜드에 대한 선호를 앞세우지 않았음에도 가장 대표적인 솔루션과 비행사를 통해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가장 편했다.
#3. 렌터카
숙박과 항공, 굵직한 사항들을 정하고 나니 이제 세부 계획단계로 들어갈 차례였다. 가장 고민을 했던 게 바로 제주 내에서의 교통수단이었다. 이미 비행기를 예약한 상태에서 자차를 선적해서 가는 방안은 뒤늦게 알아봤으나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고, 탁송이라는 방법 또한 있었으나 예상되는 가격대가 5~60만 원을 넘는 선이라 역시 끌리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차는 연비가 좋지 않은 데다, 제주에서까지 익숙한 차를 타고 다니면 어쩐지 여행 기분이 덜 날 것 같기도 했다.
결국 렌터카를 알아봤다. 2~3일 정도야 소셜커머스를 통해 금세 예약했던 게 일반적이었는데, 막상 한 달을 빌려보고자 하니 가격이 짐작 가지 않았다. 게다가 자차보험을 하느냐, 하면 일반/완전 어떤 옵션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가격차이도 커지기 때문에 슬슬 골치가 아파왔다. 그러던 중 제주 렌터카 업체들의 가격을 기간, 차종별로 보기 좋게 나열하여 예약할 수 있게 해놓은 사이트를 알게 됐다. 매우 편리하게 차량조회가 가능했다. 한 달 간의 유지비를 고려해 경차로 선택지를 줄였고, 보험 여부는 그 후에 정하기로 했다.
마침 레이를 타고 싶었는데 예약이 가능했다. 그것도 30만 원대였다. 렌터카 업체명은 처음 들어본 곳이었으나,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지정했으니 문제가 없을 거라 여겨졌다. 예약신청을 했다. 금방 전화가 와서 상담사가 예약 여부를 확인시켰다. 헌데 2주 이상 차량을 렌트할 경우에는 자차보험이 의무였고, 전체 금액의 절반가량을 예약금으로 선납해야 예약이 확정이었다. 보험이야 차라리 의무라면 마음 편하게 들어 놓으면 될 일이었지만, 무턱대고 선납금부터 내기는 불안했다. 명시된 렌터카 업체 몇 군데에 직접 전화로 문의했다. 한 달이나 렌트해 줄 차량은 구하기 힘들다는 답변들이었다.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하드블럭 방식으로 렌터카 업체들로부터 일정 수의 차량들을 확보해 놓는 시스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허나 막상 그런 문의 결과를 얻고 보니 아무래도 렌터카 업체와 직접 계약을 하는 편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대략 10군데 이상의 업체들에 전화를 돌렸다. 거의가 장기렌트(기업 리스에서 쓰이는 용어와 달리, 일반 여행객용 렌트를 1주 이상 렌트할 경우 장기에 속한다) 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대답이었고, 그나마 차량이 있다는 곳들도 오래된 아반떼 급의 차량을 비싼 가격에 불렀다.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저렴한 가격을 원했기에 중소업체들에만 전화를 돌렸는데, 이 역시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였다. 차량수가 적은 곳들일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차량을 빌려줘서 회전율을 높이려 할 것이고, 이에 아무리 비수기라고 할 지라도 성수기를 앞두고 차량 한 대를 한 명에게 한 달이나 빌려주는 일을 달가워할 리 없었다. AJ렌터카에 전화를 해봤다. 바로 제주지점 담당자와 연락이 됐고, 모닝 차량을 40만 원대 중반에, 그것도 일반 자차보험을 포함한 가격에 빌릴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선납금도 필요 없었다. 오케이!
숙소와 항공권, 렌터카 예약까지 마치고 나니 더욱 출발일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때가 출발을 3일 정도 앞둔 무렵이었을 거다. 지금 생각해봐도 굉장히 준비가 빨랐고, 막상 제주에서 한 달 동안 어디를 다닐지, 다니면서 들어갈 예산은 어느 정도가 될지, 식사는 어떻게 할지와 같은 세부 사항들에 대한 준비는 전혀 없었다.
원래 나는 꼼꼼한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꼼꼼함에 들어가는 스트레스가 뜻하지 않은 결과나 계획 변경에 따르는 스트레스보다 크다고 느껴졌다. 좋게 말하자면 태도가 유연해진 것이고, 반대로 보자면 배 째라 식이 된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여행에 임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확신한다. '동거'는 아직 급진적인 우리 사회에서 결혼 전에 최소한 이성과 여행은 해봐야 한다는 얘기가 많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도는 일반론일 것이다. 말하자면 '살아보는' 것만큼이나 '여행하는' 일이 한 사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별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스스로를 확인하며 매우 반가웠다. 놀러 가는 일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겠냐고 반문한다면 그건 또 그런대로 일리가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제주 한달살기는 이미 준비하기 단계에서부터 내게 더없이 즐거운 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당장은 무엇보다 좋은 선택이지 않냐고 나는 다시 반문했을 테다.
YOLO. 하도 주변에서 많이 얘기해서 오히려 반감 비슷한 삐딱한 시선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원했던 지점도 결국은 지금을 즐겨보자는 단순함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떠밀어서 잘 다니던 직장생활에 제동을 건 것도 아니고, 뒷일은 생각지도 않고 무작정 한 달을 여행하기로 해놓고 스트레스가 없기도 힘들었을 테니까. 세상이 워낙 좋아져서 해외의 온갖 좋은 곳들에 대한 정보도 넘쳐나는 요새지만, 내게는 오직 '제주'만 보였고 '제주'여야만 했다. 현실과의 접점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독립된 공간이라는 생각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더욱 굳어져만 갔다.
제주 한달 살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준비단계에서 생각 할게 많다는걸 알게 되네요
대리만족으로 계속 잇님 포스팅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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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정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대리만족까지 느끼신다면 앞으로 여행기를 올리는데 더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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