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뇌과학의 발달로 혁신적인 장치가 개발된다. 바로 <괴로움측정장치>. 뇌파와 호르몬, 신경활성도를 종합적으로 측정하여, 어떤 사람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를 점수로 정확히 측정해 보여주는 장치였다.
처음에는 실험실에 갇힌 원숭이들이 실험과정 중 얼마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 지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였지만, 사람에 대한 임상실험이 승인된 이후에 신경정신과 의사들이 진료를 위해 이 장치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장치를 통해 자신이 얼마만큼 고통받고 있는지를 수치를 통해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점수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국회는 과로사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드디어 법에 <괴로움측정장치> 로 측정한 수치를 고통의 기준으로서 명문화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70점 이상이면 ‘충분히 고통받고 있다’ 라고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갈등을 벌일 일이 사라졌으므로, 사람들은 만족스러워 했다.
물론 처음엔 시행착오는 있었다. 괴로움 모니터링 수치에서 69점이 나왔던 한 근로자가 사망한 이후, 그 유가족들이 강력하게 항의한 것이다. 69점인데, ‘충분히’ 고통받았는데, 왜 인정해주지 않느냐고. 이때 누군가가 말했다. 내 괴로움 점수는 71이다. 나보다도 덜 괴로웠던 사람이 무슨 과로사냐. 내가 더 힘들다는 건 수치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느냐. 입 다물어라.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자기의 점수를 들고 나와 말하기 시작했다. 난 75점이야. 너나 입 다물어. 난 80점인데? 내가 더 힘드니 넌 조용히 하시지. 그 목소리들에 유가족들은 소리없이 묻혔다. 그렇게 작은 소란은 끝이 났다.
그 이후로 재미있는 유행이 사람들 사이에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괴로움 점수 경쟁> 이 바로 그것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SNS에 자신이 받은 괴로움 점수를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보통 75점 정도면 꽤 높다고 할 만 했다.
A도 그 유행의 열성적인 참여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괴로움측정장치> 의 발명이야말로 정말로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의 고통이 남들로부터 무시받는데에 신물이 나 있었다. 너보다 힘든 사람은 많다는 그 말이 지겨웠다. 하지만 그는 이제 수치로서 증명할 수 있었다. 자기가 진짜로 제일 힘들다는 것을.
그가 83점의 점수를 SNS에 올렸을 때, 사람들은 드디어 위로의 말을 그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와, 점수 정말 높으시네요. 정말로 힘들었나 보군요. 전 아무것도 아니었나봐요.
A는 위 한켠이 쓰려오는, 스트레스와 쾌감이 요상하게 섞인 익숙한 느낌을 받으며 모든 댓글들을 확인했다. 그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야. 아무도 그건 부정할 수 없지. 이제 난 인정받고 있어.
그는 또다시 그 수치의 갱신에 도전하기 위해, 너무나도 가기 싫은 직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번 목표는 84점이다. 위가 더욱 쓰려온다. 그럴 수록 묘한 성취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회사 건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그는 상사를 마주쳤다. 갑자기 위의 고통을 견딜 수가 없다.
음, 자네에게 내가 너무했다는 생각도 들더군. 오늘 저녁에 내가 식사라도 좀 대접했으면 하는데, 어떤가? 아, 강요하는건 아닐세. 싫으면 바로 말해주게.
아니, 이 인간이 무슨 바람이 불었지? 바로 어제 저녁, 상사에게 신나게 욕지거리를 들은 후, 그는 드디어 그의 괴로움 점수를 갱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가 멍해졌다. 사실 머리가 멍한 것은 어제 저녁부터 속이 쓰려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이 크지만.
그는 수락하려다가, 문득 수치를 갱신하기로 한 그만의 목표가 생각이 났다. 아, 안돼 안돼. 이 사람하고 사이가 좋아지면 스트레스를 덜 받을텐데?
저녁 약속이 있노라고 차가운 얼굴로 거절한 후, 그는 빠르게 발을 놀려 그의 사무실 자리로 향한다. 물을 한컵 떠다 마신다. 속이 너무 쓰리다. 아무래도 괴로움 점수는 둘째치고 퇴근후에 병원을 좀 가봐야 할 것 같다.
A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켜서 그의 SNS를 확인한다. 그의 놀라운 괴로움 수치를 위로해줄 또 다른 댓글들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나 무언가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의 동공이 커진다.
90 점.
90 점??
누군가가 90점의 점수를 받아 SNS에 올린것이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한 거지? 이미 그의 글에는 댓글 다는 사람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신 90점을 받은 그 사람의 글은 신나게 댓글들이 달리고 있었다.
와, 당신이야말로 정말 힘들어 보이네요. 도대체 뭘 하시길래 그렇게 힘드신가요.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속이 콕콕 쑤셨다. 그 글과 함께 올라온 이 사람의 멘트가 더 가관이었다.
저는 행복합니다.
놀리는 건가? 나를 기만하는 건가? A는 분노와 질투로 속이 끓어올랐다. 나도 힘들단 말야. 세상에 힘든 사람이 너밖에 없는 줄 알아? 내가 무슨 대접을 받고 사는 지 알면 넌 기절하고 말 거야…
그는 화가 나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조차 없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이어야 해. 그는 잠시 후 일어나 옆자리에 앉은 동료에게로 다가갔다.
어이, 이봐. 나 좀 때려봐. 뭐? 무슨 헛소리야. 나 일 중이니까 방해하지 마. 오늘 저녁까지 마무리해야된단 말이야.
빨리, 좀 힘껏 쳐봐.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나 정말 바쁘다니까? 그딴 소리 할거면 너희 친구들에게나 하라고.
그 기세에 A는 잠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곧,
어이. 저번에 네 여자친구 예쁘던데? .. 뭐? 지금 갑자기 무슨 소리야.
꽤 놀게 생겼더라구. 그런 애들은…
이 자식이 미쳤나, 지금 뭐하자는 거야?
드디어 A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지껄였다. 둘은 드디어 멱살을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의 상사가 어디선가 달려나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자네들 도대체 뭐하는 건가? 응, 감봉당하고 싶어? A 자네말이야, 이러니까 내가 그러는 거 아닌가? 정말 한번만 더 이런 일 벌어지면, 상부에 자네 징계 건의할걸세. 정말 마지막이야. 알겠나? 아니, 자네 어디가는건가? 어디가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