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이 학생을 마지막으로 본게...
중국 청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주로 한국 대학입시를 준비중인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시험준비 자체도 그렇지만 학교나 과 선택등 입시 상담도 같이 해야 했기에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제발 이 아이 공부보다도 인간 좀 만들어 달라고' 하시더군요. 아이를 보니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중국 온 것도 이 아이가 사고 쳐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같은 반 아이를 때려 이를 엉망으로 만들었고 경찰서를 셀 수 없이 드나 들었다고 하십니다. 중국와서도 그 버릇 못 고치더니 청도 주먹왕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 아이 이름대면 그 또래 학생들은 모두 알 정도였으니까요.
개인 과외를 부탁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습니다. 1년반 남았는데 열심히 해도 어려울텐데 아이를 보아하니 그동안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지낸 것 같아 무슨 효과가 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공부는 괜찮으니 인간부터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일단 맡기로 했습니다.
며칠 가르쳐 보니 역시 아는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심성은 착하더라고요. 어머니도 위할 줄 알고 나름 애는 괜찮았습니다. 다만 불의를 보고 못 참고 뛰쳐 나가는게 문제였습니다. 수업 시간 맞춰 온 날이 거의 없었고 수업하다 말고 전화받고 어디서 싸운다고 하는데 자기가 가 봐야 한다고 가버린 날도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다 하면 식사도 시켜다 주고 자기가 하는 말 잘 들어 주니까 몇달 뒤에는 제 말을 참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 갈 실력은 안되고 사실 저도 고민 많았습니다. 가르치는 것도 없는데 아무리 집이 잘 산다고 해도 과외비를 받는 것도 어머니께 죄송스럽기도 하고..
저를 만나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실력은 그대로 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아이는 늦게 나오고 일찍 가더라도 거의 수업에 빠지지는 않고 나왔습니다. 나름 기특하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한국 대학 시험보는 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아는게 없으니 면접으로 가는 학교를 정하긴 했지만 과연 면접이라도 잘 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면접 준비라도 시켜주고 한국을 보내고 몇 달이 지났습니다.
수업 시간에 누가 문을 삐끔 열더군요. 봤더니 그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빈손이 아니고 박카스 상자를 들고 밖에서 서 있더군요. 나갔더니 인사를 꾸벅하더니 '저 대학 합격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러는 거예요. 그 순간 얼마나 눈물이 핑 돌던지... 주먹왕이라고 불리던 이 아이가 대학에 붙었다고 이렇게 뭘 사가지고 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후 2년쯤 지난 스승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그 아이가 또 찾아 왔습니다. 이 아이가 대학가서 어머니도 한국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어떻게 왔냐고 했더니 자기 몇주 뒤에 군대간다고 하면서 또 언제 오게 될지 몰라 마침 스승의 날도 얼마 남지않아 제게 인사드리러 왔다고 합니다.
그날 이 주먹왕 제자와 술한잔 하면서 정말 많은 애길 나누었습니다. 대학 가서 많이 힘들었지만 정신 차리고 학과 공부는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아직 짤리지 않고 있는게 자기도 신기하다면서 이제 싸움같은거 하지 않고 성실하게 지낸다고 스스로 애기하더군요. 그 후 군 제대하고 한번 대학 졸업하고 한번 이렇게 두번 더 만나고 이후로는 못 만났고 소식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5월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1년 반 동안 저를 힘들게 하긴 했지만 심성은 착했던 주먹왕 이 생각납니다. 올해 나이 30 갓 넘었을텐데 잘 살고 있길 바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