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진가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입니다.
사진도 노동이다- 예술도 노동이다- 라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분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일(일종의 자아실현)과 생계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 다를 것입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꿈이건 뭐건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니 병이 되어 을과 계약하고 갑을 위해 일해야만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 이후 꽤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주로 알바라 불리는 단기 계약직이었죠.
제가 원하던 조건은 보통 딱 두 가지였습니다.
(1)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급여
(2) 사진을 찍기 위해 현장에 나갈 시간
저는 이 두 가지만 보장된다면 만족했기에, 카페, 바리스타부터 판매 전자제품 영업직, 폐쇄병동 간호보조, 단순제조업까지 웬만하면 가리지 않고 해왔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노동법에 어긋나는 대우와 환경에서도 적당히 참고 일했습니다.
'근로계약서도 안 쓰네? 4대 보험도 없잖아? 퇴직금은??? 하지만... 융퉁성 있게 일을 뺄 수 있으니 이건 사실상... 윈윈이다...!'
'노동시간을 따져보면 최저임금 미만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가 높은 편이니 (노동시간이 길어서...) 원하는 사진 장비 구매를 위해 참고 일하자...!'
'수습계약 위반과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급여지만 내게 없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니 참고... 일하자...!'
등등. 이렇게 수많은 정신승리를 하며 일했습니다.
퇴근 후엔 노동자 집회에 사진 찍으러 가고 파업 현장에 찾아가고 친구들과 노동법을 공부하고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 역사에 함께 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저에게 적용시키진 않았습니다.
어쩌면 무리였을지도 모르지요. 불공정한 사회와 커다란 악에 대항하는 게 저로서는 훨씬 쉬운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일, 즉 대의를 위해 싸우는 일이 그 시절엔 마냥 멋져보였고 실제로도 많은 성취감과 결과를 줬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처한 크고 작은 불합리에 맞서싸운다는 것은, 실제로는 수많은 법적, 행정적 처리와 더불어 스트레스로 가득한 갑과의 공방이 오가는 지겨운 일일 뿐이었습니다.
지독히나 나약한 개인이 되어가는 일이지요.
이렇게 어긋난 삶은 꽤나 지속되었습니다. 지속되었다기보다는 소진되었죠. 정신적 탈진에 이르렀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재작년 쯤, 청년들을 대상으로 노동 상담과 캠페인을 진행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이 겪는 불공정한 아르바이트, 노동 문제를 쉽게 풀어주며 도와주는 일이었죠.
전문적인 노무사가 아니기에 공부가 부족한 저 스스로가 아쉬울만큼 멋지고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합리한 일들을 제가 만약 다시 겪게 된다면 참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죠. 자신의 일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수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겠나- 라고 생각하면서요. 뿌듯한 마음으로 일했던 기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계약기간이 종료된 후 받은 퇴직금(!!)과 실업급여(!!!!)였습니다 . 여태껏 해온 알바에서는 기대할 수 없던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으며 즐겁게 지냈죠.
물론 백수의 삶은 짧습니다.
바로 어제 다시 취업했거든요.
그리고 오늘.
저는 다시 백수가 되었습니다...
자발적 퇴사입니다.
스팀 전송 속도처럼 빨랐던 저의 칼퇴직 사유를 굳이 밝히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명백히 종속적인 입장에서 노동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근로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을 맺음
- 6개월 이상의 장기근무라는 공고와는 다르게 짧은 계약 단위로 인한 노동의 불안정성
- 그렇기에 언제든 쉽게 사람을 잘라버리는 사업장의 환경과 분위기
++불매하는 모 기업의 하청의 하청.
이 사회에서 맘편히 정당하게 노동하기란 왜 이리도 힘든지요. 단순 IT 노가다라고 생각했던 일이 뒤통수를 쳐 마음이 쓰라립니다.
이 분야에서는 프로젝트 단위로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으니 프리랜서 계약이 흔하다는 걸 알고있었지만 알바까지 프리랜서로 계약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풍토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야 바로 그만뒀으니 잊으면 그만이지만, 그곳에서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로써 불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계신 분들을 생각하니 분노가 멈추질 않습니다.
뭘 어떻게 할지는 고민중입니다.
이건 그냥... 화나서 적은 글이거든요.
저도 살아 오면서 크고 작은 싸움을 하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고 있네요. 지금도 다니는 회사와 제법 큰 싸움을 하고 있는데 중요한 건 개인이 혼자서 하기에는 언제나 너무나도 힘든 싸움이란 겁니다. 저도 같이 하는 분들이 있을 때야 겨우 꿈틀하는 정도니까요. 아주 조금씩이라도 꿈틀~ 하는 움직임이 쌓이다 보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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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꿈틀꿈틀이 모여서 큰 파동이 되겠지요 언젠가는. 다행히도 많은 역사가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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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역사의 흐름을 믿어야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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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쟝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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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힘낼 건 아니고 오늘도 출근하셨을 분들이 힘냈으면 좋겠네요. 백수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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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하는군요.. 고용계약이 그리 싫어서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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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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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많이 좋아지기는 했는데 아직 우리 사회는 고쳐야 할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일단 대기업들부터 때려부셔야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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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습니다. 저도 프리랜서로 생활하는터라 더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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