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타원형 안에 숫자가 적혀있다. 손바닥으로 도어락에 손을 올려 놓고, 비밀번호를 검지손가락으로 천천히 눌렀다.
그녀를 반겨주는 것은 머리 위에 있는 센서등. 주황색으로 얼굴을 붉히며, 하루종일 뭐 했는지 지켜 보는 것 같다.
신발장을 지나 걸어 가면 센서등이 꺼진다.
그녀는 거실벽을 더듬더듬 거린다. 심봉사가 눈을 뜨고 심청이를 만났을 때 처럼, 너무나 환해지는 집에 그녀는 살짝 놀란다.
오래되었지만 누군가의 향기가 서려있는 책상에 앉는다.
말없이 노트북의 전원버튼을 누르고 쿠션이 다 사라진 거실슬리퍼를 질질 끌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거울을 보면서, 하루 종일 얼굴에 무엇이 난것이 없는지 체크를 하며, 투명한 초록색 핸드워시를 손에 덜어 내서 거품을 낸다.
수돗물을 너무 세게 틀어서 옷에 물이 튀였다.
그녀는 꽤나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화장실에 나오면서 티셔츠를 벗고 하루종일 입고 있었던 제 살같으면서 살 같지 않은 브레이지어를 세탁통에 넣으며 아메바 무늬가 그려진 남색 잠옷을 입는다.
다 켜진 노트북 앞에 앉아서 그녀는 삼색의 크롬 아이콘을 눌러 가상의 세계에 노크한다.
그녀는 그리고 연두색 N 모양의 아이콘을 눌러 메일을 체크하고 블로그의 소식을 읽는다.
그렇게 읽고 있는 중간, 집을 환하게 밝히던 형광등이 깜빡 깜빡 거린다.
그녀는 천장 위에 불퉁불퉁 유리에 가려진 깜빡거리는 형광등을 본다.
그리곤 다시 하고 있던 일을 하지만, 자꾸만 깜빡 깜빡 거린다. 그녀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낀다.
점심을 먹지 않아서 그런가? 저녁을 먹지 않아서 그런가? 하며 냉장고를 열어 유통기한 날짜가 하루 남은 조금은 꺼림찍한 우유를 컵에 따랐다.
껌뻑 껌뻑 아주 빠르게 요동치던 형광등이 느리게 요동친다.
투명한 유리잔은 하얗게 페인트칠 되며 조금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페인트를 아니 우유를 마셨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꾸만 깜빡거리는 형광등, 도저히 신경이 쓰여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사다놓은 형광등을 꺼내 와 책상에 앉았다.
하기 싫은 마음과 해야만 하는 마음이 핑퐁질을 한다.
분명 어떤 마음이 트릭을 써서 강속구를 날릴 것이라는 건 그녀는 안다.
그래서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뱉어 낸다.
그렇게 그녀는 의자를 형광등 아래에 두고는 한발 한발 올라섰다.
불투명한 유리를 뚫고 나오는 형광등의 깜빡거림. 그녀는 더욱더 현기증을 느낀다.
그녀는 결심한듯 불투명한 유리를 고정하고 있던 나사를 하나 하나 풀기 시작한다.
나사의 암수의 분리는 손가락으로 뱅글 뱅글 돌리기만 하면된다.
그녀는 잠시 자신의 남자친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에 빠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볼트의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갓이 사라진 형광등은 너무나 눈부셨다.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버릴 만큼 너무나 밝음.
그녀는 밝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거실이 너무 어두웠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휘청 거리며 의자에서 내려 왔다.
그녀는 한동안 형광등 만큼을 제외하고 세상이 보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는 왼손엔 너트와 볼트를 들고 오른손으로 천천히 벽 스위치를 눌렀다.
거실은 다시 어두워 졌다.
그녀는 책상 위에 풀러 놓은 암수 4쌍을 내려 놓았다.
파란색 상자에서 형광등을 꺼냈다.
더듬 더듬 뜨거운 형광등을 차가운 형광등으로 바꿨다.
뜨거운 형광등은 얼마나 오랫동안 뜨겁게 있었을까? 차가워지긴 하는 걸까? 불을 켜고 본 뜨거운 형광등의 양 끝은 시커멓게 변했다.
오랫동안 사용되어졌구나.
마냥 밝게 빛나는 형광등이여서 투명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회색으로 짙게 변해진 형광등.
원래부터 이렇게 짙은 회색이였을까? 아님 너무 많이 쓰여진 너가 그렇게 닳고 닳아 변해버린 걸까?
그녀는 다시 파랑상자에 낡아버린 짙은 형광등을 넣었다.
불투명한 유리 위에 죽어 있는 모기와 날파리를 바라본다.
왜 그 뜨거운 곳에 들어가서 그렇게 죽음을 맛보는 걸까? 그녀는 안타깝지만, 너의 선택이였음을 인정하고 그대로 죽어 버린 모기와 날파리를 물에 젖은 휴지로 닦아 버리며,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린다.
하지만 철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그녀는 터덜 터덜 걸어가 그것을 주웠다.
휴지를 열어 먼지와 함께 뭉그러진 모기와 날파리를 한번 보고는 다시 쓰레기통에 넣었다.
불을 끄고 불투명한 유리를 씌운다.
너무나 밝았던 거실이 조금은 어두워 진다.
그녀는 볼트와 너트의 암수를 맞추어 넣는다.
그녀는 연락이 없는 남자친구의 소식을 궁금해하며 거실 등 갈아끼우기 작업을 마무리한다.
손바닥에 묻은 까만 먼지의 냄새를 맡아 본다.
매우 텁텁할 것 같았지만, 조금은 가벼운 냄새이기를 기대한다.그녀의 표정에서 역시나 텁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손을 씻고 그녀는 다시 노트북이 있는 책상에 앉아서 푹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크게 뱉고는 다시 손가락의 냄새를 맡아 본다.
손가락 끝에 먼지 한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텁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책상 옆 물티슈를 꺼내 손가락에 올려져 있는 지문을 하나하나 결을 따라 닦는다.
맨들맨들해진 자신의 손가락의 냄새를 맡아 본다.
물티슈의 냄새에 가려진 것인지 아니면 정말 다 없어진건지 모르지만 먼지 냄새가 더이상 나지 않는다.
그녀는 그 지문 까지 깨끗해진 것 같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둘긴다.
왼손의 약지-왼손의 검지- 오른손 중지-오른손 약지.
아마 다른 사람들과 다른 타법일 수 있지만, 여튼 그녀는 그런 순서의 손가락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