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과 암호자산의 본질

in kr •  7 years ago 

[알림]

  • 이 글은 Adam Ludwin이 2017년 10월에 Medium에 쓴 A Letter to Jamie Dimon을 번역한 것입니다.

  • 암호화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본질을 꿰뚫는 인사이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허락을 구하고 옮겼습니다. 자연스러움을 위해 약간의 의역이 들어가 있습니다.

  • Jamie Dimon은 미국의 투자은행 J.P Morgan의 회장으로 이 글이 발행되기 며칠 전에 "비트코인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정부가 곧 비트코인을 없애버릴 것"이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제이미에게,

제 이름은 Adam Ludwin이고 Chain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와 관련된 시장에서 몇 년째 일하고 있죠. 지난주에 당신은 비트코인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을 했습니다.

암호화폐가 아무런 내재 가치가 없다거나, 정부가 곧 암호화폐를 없애버릴 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습니다. 암호화폐는 은행, 정부, 그리고 거대 IT 기업들을 대체해버릴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요즘은 확실히 이 주장이 더 유행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 다 틀렸습니다.

현실은 훨씬 더 복잡 미묘합니다. 그리고 현실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짧은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죠.

이 글이 읽고 암호화폐에 대해서 당신이 제대로 평가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암호화폐를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정의 없이는 길을 잃어버리기 쉽죠. 암호화폐에 대해서 얘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을 얘기하면서 같은 것을 얘기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란 무엇인가?

제 정의는 이렇습니다.

암호화폐(Cryptocurrencies)는 탈중앙화된 어플리케이션(Decentralized application)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자산군(asset class)이다.

이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암호화폐를 기존 화폐, 주식과 비교해서 가치가 있느냐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우리가 진짜 논해야 할 것은,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 기존의 소프트웨어와 비교해서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죠.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에 대해 잘 모른다고요? 그렇다면 암호화폐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니까 계속 읽어보세요.

암호화폐와 법정화폐의 대결에 관한 것이 아니니까, 이제부터는 ‘화폐’라는 용어를 쓰지 않기로 합니다. 이 용어는 본질을 흐립니다. 당신은 비트코인에 대해서 예기할 때, 달러/유로/엔과 비교하더군요. 그런 비교는 본질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해할 뿐이죠.

그러니까 이 글에서는 암호화폐 대신 암호자산(cryptoassets)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모든 자산군(주식, 채권 등)과 마찬가지로, 암호자산은 특정한 형태의 조직에게 자원을 분배하기 위한 메커니즘입니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단기 차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기는 하지만, 암호자산은 단순히 트레이딩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암호자산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죠.

제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자산군들이 어떻게 특정 조직을 도와주는지 생각해봅시다.

  • 주식은 회사의 운영을 도와줍니다.

  • 정부 채권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운영을 도와줍니다.

  • 담보 대출(모기지)은 담보 소유자를 도와줍니다.

그리고

  • 암호자산은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도와줍니다.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은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자, 새로운 형태의 소프트웨어입니다.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만들고, 자금을 조달하고,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이죠.

물론 이 모델이 기존의 소프트웨어 모델 또는 기업보다 무조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둘 사이에는 트레이드 오프 관계가 존재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알고 있는 소프트웨어 모델과, 우리가 익숙한 조직 모델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어떻게 다르냐고요?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정글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선인장을 갖다 주면서 이건 나무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마 비웃겠죠. 그리고 이건 나무가 아니다, 딱딱한 껍질에 쌓인 물탱크 같은 것이 어떻게 나무라고 할 수 있냐고 대답할 겁니다. (게다가 정글에서 물은 사방에 널려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반응일 겁니다. 거의 이 정도로 다릅니다.

도대체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중요한 설명을 빠뜨렸네요.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란 ‘특정 주체가 운영하지 않는 서비스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게 왜 유용한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일단, 어떻게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 돌아가는지 이해해보죠.

아이디어의 탄생 시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2008년 9월입니다. 금융 위기가 최악으로 치닫던 시점이었습니다.

익명의 저자가 논문을 하나 발행합니다. 중앙은행 같은 중앙 주체 없이 전자 결제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논문이었습니다.

바로 세상에 등장한 최초의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설명이었죠.

그것은 ‘결제’를 위한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었습니다.

이 논문의 이름은 ‘비트코인’입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어떻게 전자 결제를 지정된 제 3자 없이 할 수 있을까요? 제 3자가 이 거래를 기록하고, 모든 사람의 잔고를 계산해주지 않는데? 물론 내가 상대방에게 1달러짜리 지폐를 건네주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디지털 데이터는 얘기가 다릅니다. 데이터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중개와 검증이 필요합니다.

논문은 이런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P2P 네트워크를 만든다.
  • 내가 하려는 거래를 모든 사람에게 공지한다.
  • 공지 내용에는 얼마만큼의 돈을 보내고 싶은지 적는다.
  • 그리고 보낸 사람이 진짜 주인인지 증명하기 위해서 공지 내용은 돈과 연결된 암호키로 인증을 하게 한다.

이걸로 거의 대부분 해결할 수 있지만, 한 가지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참여자가 서로 충돌하는 2개의 공지(A한테 돈을 보내고 그 돈을 B한테도 보낸다든지)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죠.

기존 방법

검증(timestamp)할 특정 사람을 지정합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신뢰받는 제 3자를 사용하는 거죠.

좋은 방법

모든 사람들이 검증자(timestamper)가 되게 하자! 그러면 중개자가 필요 없어지고, 미리 지정해놓을 필요도 없고, 모든 거래 기록을 한 명의 동일한 주체가 검증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참여자들을 경쟁시키자.”

시장 경제와 비슷하지 않나요? 하지만 빠진 게 있죠. 이겼을 때의 보상. 인센티브. 자산.

그 자산을 비트코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공지한 거래에 대한 검증 권한을 갖기 위해 경쟁하는 참여자(컴퓨터)들을 “채굴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코드와 네트워크를 개방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 경쟁에 제한 없이 참가할 수 있게 합니다.

이제 실제 경쟁이 필요합니다. 논문은 경쟁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네트워크에 의해서 생성되는 임의의 수(random number)를 찾을 것. 이 숫자는 매우 매우 찾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찾으려면 전기와 컴퓨팅 파워를 많이 사용해야 하죠.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Veruca Salt가 아버지와 가난한 공장 노동자들한테 골든 티켓을 찾으라고 시킨 것의 컴퓨팅 버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경우에는 골든 넘버겠죠.)

거래가 유효한지 검증하는 단순한 일에 왜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경쟁을 굳이 만들어야 할까요? 그 이유는 이 경쟁자들이 실제로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면, 만약 숫자 찾기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검증자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은 그 권한을 나쁘게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검증자가 된 사람들은 네트워크에 공지된 거래들을 끊임없이 찾고, 같은 돈을 두 번 쓴다던지 하는 거래를 제외하고, 모든 규칙이 틀리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유효한 거래 기록만 한 곳에 모아서 네트워크에 전파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모두 룰을 제대로 따라야지만, 네트워크가 보상을 주도록 프로그램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낸 사람들이 낸 수수료와 새롭게 발행된 비트코인을 보상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채굴자’라고 부르는 것이죠.

다른 말로 하면, 채굴자들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이 규칙을 따르는 겁니다.

잘 알듯이, 애덤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죠.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또는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 즉 돈벌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는 인터넷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핵심은 결국 자본주의입니다.

그리고 이 채굴자들이 채굴을 하는데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그들은 새롭게 번 비트코인을 시장에 팔아서 실제 법정 화폐로 그 비용을 메꿔야 합니다. 남는 돈은 채굴자의 이익이 되죠. 비트코인은 현재 유통이 되고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은 얼마든지 살 수 있죠. 필요하지 않고 단지 투기를 하려는 사람들도 살 수 있고요. (필요한 사람과 투기를 하는 사람의 차이는 뒤에서 얘기하겠습니다.)

유레카! 우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습니다. 경쟁을 통해서 검증자들에게 줄 경제적 보상을 만들었고, 동시에 보상 역할을 하는 자산은 디지털 결제 네트워크의 화폐 단위로써 사용되는 것입니다.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은 어떻게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가?


비트코인에 대해 이해했으니까, 이것을 일반화시켜서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이해해봅시다.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은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어떤 것(예를 들면 결제)을 신뢰받는 중앙 주체 없이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보죠.

파일코인이라는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 있습니다. 파일코인은 사용자들이 드랍박스나 아마존S3 같은 중앙화된 파일 저장 서비스 대신에 P2P 네트워크에 파일을 저장할 수 있게 해줍니다. 파일코인의 암호자산은 ‘파일코인’이고, 각 참여자들이 남는 저장 공간을 네트워크에 공유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디지털 파일 공유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전자 결제도 마찬가지고요. 달라진 것은 이것들을 ‘특정 회사 없이’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조직 형태죠.

하나만 더 예시를 들어보죠.

(주의 : 한 단계 더 추상화되기 때문에 약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더리움이라는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 있습니다. 이더리움은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 위한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입니다. 아마 ICO나 토큰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ICO(토큰)들은 이더리움 위에서 발행됩니다.

비트코인처럼 완전히 처음부터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대신에, 이더리움을 사용하면 훨씬 더 쉽게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 이미 존재하는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2. 이더리움은 특정 어플리케이션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코드를 가진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위한 플랫폼으로써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더리움의 프로토콜은 ‘컴퓨팅'에 대해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참여자들은 이더리움의 암호자산인 이더를 벌게 됩니다.

이더리움은 새로운 형태의 소프트웨어 (탈중앙화 앱)의 컴퓨팅 플랫폼이 됩니다. 이더리움 자체가 탈중앙화되어있기 때문에 클라우드 컴퓨팅과는 다릅니다. 이더리움의 창립자인 비탈릭 부테린이 이더리움을 ‘World computer’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요약하자면, 지난 몇 년 동안 세상은 중앙 운영자가 없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구현하는 방법을 발명해냈습니다.

이 서비스를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라고 합니다.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원(검증, 저장, 컴퓨팅)을 제공하는 기여자들이 있습니다. 네트워크는 암호자산을 활용해서 기여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합니다.

이건 완전히 기적적인 일입니다. 인터넷과, 공개 프로토콜, 그리고 새로운 자산을 가지고, 우리는 다양한 서비스에 필요한 자원을, 동적으로 배분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은 중앙화 어플리케이션보다 나은 게 없습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이 모델이 소프트웨어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결국에는 이것이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기업과 벤처캐피털을 위협하게 될 거라고 말이죠.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명확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존의 소프트웨어와 비교해서 정말로 유용한지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 모든 사람에게 비트코인이 페이팔이나 은행보다 낫다고 할 수 없으며,

  • 모든 사람에게 파일코인이 드랍박스나 아이클라우드보다 낫다고 할 수 없고,

  • 모든 사람에게 이더리움이 아마존 EC2나 Azure(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보다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측면에서, 탈중앙화 서비스는 중앙화 서비스보다 뒤처집니다.


  • 느립니다.

  • 더 비용이 많이 듭니다.

  • 시간당 처리량도 적습니다.

  • 사용자 경험도 안 좋습니다.

  • 의사결정 시스템도 불안정합니다.

이건 단순히 신기술이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이 단점들은 블록이 더 커지거나, 라이트닝 네트워크, 샤딩, 포크, 자율적으로 수정되는 장부 등 어떤 기술적 솔루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이 서비스의 핵심 목표에서 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목표는 이 핵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죠. 바로 ‘탈중앙화’입니다.

  • 검증 권한을 받기 위한 경쟁 얘기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그걸 하려면 빠른 처리 속도를 포기해야 합니다.

  • 사용자들이 암호키로 사인해서 거래를 신청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그걸 하려면 일반 비밀번호와 다르게 훨씬 더 안전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한번 잃어버리면 복구가 불가능하거든요.

  • 어떤 주체도 네트워크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바꿔 말하면, 네트워크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더 효율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암호키를 신뢰받는 특정 주체에게 맡기거나 할 수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이런 해결책은 신뢰받는 제 3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신뢰받는 제 3자가 어차피 필요하다면 중앙화 서비스를 사용하는 게 훨씬 나은 것이죠.

그러므로 비트코인은 탈중앙화된 페이팔(결제 서비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전자 결제 네트워크라고 하는 게 맞죠. 하지만 그 대신 우리는 ‘탈중앙화’를 얻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보다 훨씬 낫습니다.

딱 한 가지만 빼고요.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은 이 딱 한 가지를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게 뭐냐고요?

"검열 저항성 (Censorship resistance)"

드디어 소음 속에서 진짜 본질을 찾았습니다.

검열 저항성이란,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 모두에게 개방되어있고,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서비스 내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unstoppable)

구체적으로 말하면, 누구도 제가 다른 누군가에게 비트코인을 보내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겁니다. 누구도 제가 이더리움 위에서 코드를 실행하는 걸 막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제가 파일코인 위에 파일을 저장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인터넷에 연결되어있고, 네트워크에 (암호자산으로) 수수료를 지불하는 이상은, 무슨 일을 하든 자유입니다.

(비트코인이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라면, 검열 저항성은 본질적으로 자유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이 이 아이디어를 사랑하는 이유죠.)

그러니까 우리는 비트코인이 신용카드(Visa) 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특정 집단의 사용자’에게는 비트코인이 ‘유일한 결제 수단’인 경우가 있는 겁니다.

어떤 경우에 이 트레이드 오프 (검열 저항성을 얻기 위해 기존의 효율성을 포기하는 것)이 유효한 걸까요? 도대체 누가 속도, 비용, 처리량과 같은 중앙화 서비스의 이점을 포기하고서라도, 검열 저항성이 정말로 필요한 걸까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트레이드 오프는 당신이 암호자산을 쓰거나 투자하는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지금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 어떤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느냐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고, 그 사람들은 검열 저항성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좋은 자료가 많이 없긴 하지만,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의 실제 사용자는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현대적 인프라 시스템 바깥에 있는 사람 : 인터넷은 되지만, 특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가 미비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

  2. 현대적 인프라 시스템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사람 : 자신의 활동이 규제받거나 알려지는 게 싫은 사람들

  • 비트코인이 유일한/최적의 '결제 수단'인 사람들은 누구일까?
  • 파일코인이 유일한/최적의 '파일 저장 수단'인 사람들은 누구일까?
  • 이더리움이 유일한/최적의 '코드 실행 수단'인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것이 바로 기술의 진정한 핵심 가치를 꿰뚫는 질문들입니다.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은 정말로 가치가 있을까?

그런데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 기존 서비스들에 비해 유용성이 별로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받아주는 점포들은 2014년보다 훨씬 줄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비트코인이 결제 수단으로써 가치가 있다고 얘기하지만, 중국/인도 등의 개발 도상국에서는 알리페이나 Paytm 같은 핀테크 기업들이 전보다 훨씬 편리한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물론 다크웹이나 랜섬웨어에 비트코인이 가치 있게 활용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 쓰지 않냐고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써 사용가치가 있다는 말은 비트코인에 대해 장기 투자를 한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지금 저는 암호자산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탈중앙화된 결제 수단을 정말로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부동산은 사람들이 실제로 거기에서 주거하거나 일을 할 수 있을 때 장기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도 실제로 그걸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장기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이죠.

이더리움을 ‘검열 저항성’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일단 이더리움은 개발자들에게 아주 유용합니다. 이더리움은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위한 개발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기존 시스템에서 검열을 받거나 제한받는 개발자들이 있다는 뜻일까요?

어떻게 보면 그렇습니다. 금융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개발자들이나 스타트업을 위해 개방되어있고, 규제가 없는 금융 인프라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더리움은 금융 계약을 만들고 실행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이 금융 인프라는 모두에게 개방되어있고, 검열 저항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 이더리움은 플랫폼이기 때문에, 이더리움의 가치는 결국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어플리케이션들의 가치에 의해 결정됩니다. 즉, 이더리움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이더리움 위의 어플리케이션들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검열 저항성을 가진 예측 시장이 필요할까요? 검열 저항성을 가진 유튜브나 트위터를 필요로 할까요?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현재 이더리움 위에 올라가 있는 730개의 탈중앙화 앱 (현재는 1000개 이상) 중에서 뭔가 유용해 보이는 것이 없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죠.

월드와이드 웹이 처음 나왔던 그 1년 동안에도 우리는 채팅방, 이메일을 쓰고, 고양이 사진, 스포츠 점수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이더리움에는 이런 킬러 앱이 없는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걸 받아들여야 할까요?

현대 사회는 앞으로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도입하게 될까?

탈중앙화 앱이 우리가 익숙하고 좋아하는 앱 모델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누군가 정말로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유용하게 사용하게 될까요?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 정말로 경제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될까요?

이것은 예측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기술 발전과도 관련이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최근까지도 메시지 암호화(encrypted messaging)는 해커나 스파이들이나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뀔 것 같지도 않았죠. 근데 실제로 바뀌었습니다.

스노든(위키리크스에 미국정부의 불법 사찰을 폭로)과 트럼프를 겪으면서, 실리콘 밸리에 있는 사람들부터 워싱턴의 정치계 사람들까지 모두 Signal이나 Telegram(암호화 메시징 앱)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왓츠앱도 메시지 암호화를 적용했습니다. 언론은 SecureDrop을 통해서 팁을 요청합니다.

물론 예전보다 기술이 나아지고 사용하기 쉬워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변화는 사회의 요구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정글이라는 환경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어떨 때는 환경이 변하고, 전혀 다른 환경에서는 전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똑똑한 자본들이 암호자산과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에 대해 취하는 입장은 이렇습니다.

  • 지금은 무언가 말하기에 너무 이르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변화다.
  • 적어도 한 개 이상의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은 사회의 필수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 연관된 암호자산은 엄청나게 가치있어질 겁니다.
  • 그러니까 지금부터 베팅을 걸어보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
  • 킬러 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따지지 말자.

저도 이런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요약하자면, 장기적으로 암호자산의 가치는 그것과 연관된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의 가치에 연동됩니다.

아직 초기이고, 대중적으로 도입될 확률이 낮기는 하지만, 만약 정말로 가능하다면 엄청나게 큰 변화를 일으킬 겁니다. 그러니까 높은 밸류에이션을 주는 것도 정당하다는 거죠. 한번 기대를 걸어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는 겁니다.

그러면 최근의 암호화폐 열풍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걸까요?

비트코인은 1년 동안 5배가 올랐습니다. 이더리움은 30배가 올랐습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시가 총액은 1년 전 12조 원이었는데 이제는 175조원에 달합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투기 열풍이 그렇듯이, 지금은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구매자와 판매자의 심리를 들여다보죠.

수요자

당신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의 초기 투자자라면, 당신은 지금 돈방석 위에 앉아있을 겁니다. 공짜 돈이 생긴 느낌이겠죠. 잘 알려진 심리적 효과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똑똑하고, 진짜 내 돈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절대 하지 못할 리스크를 감수합니다. 번 돈을 약간 분산시키고 다른 암호자산에 투자하겠죠.

만약 당신이 투자를 안했다면, 대박을 놓쳤다는 공포(FOMO)가 계속 쌓이게 될 겁니다. 최악의 순간에 투자를 하기 직전까지 말이죠.

당신은 비트코인에 대해서 한번 읽어봤는데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워런 버핏의 충고에 따랐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투자하지 말아라” 그런데 친구 몇 명이 돈을 버는 걸 봅니다. 여전히 무시합니다.

그러다가 이더리움에 대해서 읽게 됩니다. 이더리움은 정말로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죠. 그래서 그냥 또 무시합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이 이더리움을 사서 은퇴 자금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버핏 아저씨의 말과는 반대로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투자해야 한다”

망설이다 결국 사람들은 최고가에서 시장에 뛰어들고, 폭락하는 그래프를 보게 됩니다.

아주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공급자

수요가 있으면 언제나 공급자가 있습니다. 수요자들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뭔가 복잡하고 있어보이는 것이라면 투자해야된다라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공급자를 생각해보죠. 공급자란 자신이 산 암호자산을 팔려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암호자산을 발행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기본적인 모델은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의 개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암호자산의 일부분을 선판매하는 겁니다.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의 창립자들은 보통 이 자산의 일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자금 조달 방식은 주식을 발행하는 것도 아니고, 빚을 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돈을 돌려줘야할 어떠한 의무도 없습니다. 단순히 말해 공짜 돈인거죠.

90년 대의 닷컴버블 시절에도 기업가들에게 이렇게 좋은 조건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업가들에게 암호자산 발행은 엄청나게 매력적인 옵션이 되고, 조금이라도 ICO를 정당화할 여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시도를 합니다. 실제로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어차피 ICO는 출시를 하기도 전에 엑싯을 할 수 있게 해주니까 상관 없습니다.

새로운 암호자산을 만드려는 기업가들이 대부분의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네트워크를 출시하기 전에 자산을 사용자들에게 팔게되면, 암호자산을 산 사람들은 우리 네트워크의 초기 사용자이자 홍보자들이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데 경제적 이득이 없었다면, 생길 수가 없었을 사람들이죠. 그러면서 기업가들은 초기 투자자와 초기 사용자를 하나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암호자산을 사는 사람과, 실제로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교집합도 없습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투기 열풍일 때는 더욱더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자신이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을 달성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암호자산을 사는 것은 맞습니다. 그 ‘시장Market’은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며, 당신이 만드는 제품Product은 ‘돈을 벌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모든 사람이 돈을 벌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게 합리적인 겁니다.

그래프가 우상향하는 한 말이죠.

파도가 빠져야지만, 누가 벌거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요약

  • 암호화폐(암호자산)은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자산군이다.
  •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은 우리가 이미 사용하고 있는 결제, 파일 저장, 컴퓨팅 같은 것들을 ‘중개자 없이' 할 수 있도록 해준다.
  • 이 소프트웨어 모델은 중앙 주체로부터 검열 저항성이 필요한 사람들과 기존 인프라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일반 어플리케이션을 쓰는 게 낫다. 일반 어플리케이션이 거의 모든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 장기적으로 사회가 이 기술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메시지 암호화 사례를 봤을 때)
  • 단기적으로 대박을 놓쳤다는 공포(FOMO)와 망할 거라는 불안감(FUD)이 공존하고, 이해와 혼란이 공종하고, 공포가 탐욕과 공존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은 엄청나게 변동이 심해질 것이다.
  • 새로운 암호자산을 파는 사람들 대부분은 실제로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ICO를 자신들의 서비스에 멋있게 포장해서 시장의 광기를 활용해보려는 것이다. 물론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이 시장의 혼란을 사용해서 자금을 모으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 자신들도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 장기적으로 암호자산은 상승할 것이다. 비트코인 백서가 발간된지 거의 10년이 되었다. 비트코인이 사기가 아니고,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 새로운 조직 형태로써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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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되는 좋은 글입니다. 여러번 읽어보고 싶어서 리스팀합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긴 글 공부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길긴 길지요.. 하지만 시간내서 읽어보실만한 글입니다

비트코인의 자유에 관련해서 글을 쓰던 중 읽게됬네요. 많은 도움이 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