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기업들은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기업용 IT 시스템’를 사용한다. 결제/정산, 재고 관리, 거래처 관리, 프로젝트 관리 등 기업들이 하는 활동들 대부분이 기업용 시스템을 통해 운영된다. 기업용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개발해주는 대기업(SI)들도 있으며 시장 규모 또한 10조 원을 넘는다. (국내 기준)
비트코인/이더리움이 등장하고 블록체인 기술의 유용성이 입증되면서,기업들 또한 자신들의 IT 시스템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절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히나 암호화폐 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된 금융 기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블록체인 관련 기술 적용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왔다.
기업들은 퍼블릭 블록체인을 쓰기 어렵다
그런데 막상 열심히 연구를 해본 기업들은 블록체인을 기업용 시스템에 활용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일단 프라이버시 문제다. 기업들은 개인보다 훨씬 더 프라이버시에 민감하다.기업들이 주고받는 거래 내이나 데이터는 기업의 내부 정보에 속한다. 블록체인 위에서이런 정보를 주고 받는 다면, 만천하에 기업의 내부 정보가 공개된다. 특히나 고객들의 자산과 같은 민감한 금융 정보를 다루는 기관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거래를 하는 상대방이 대부분 익명이라는 점도 문제다.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면 신뢰하기도 어렵고 사고 발생시 해결이곤란해진다. 특히 금융 산업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신원을 반드시 파악하고 실명으로 거래를 하도록 법으로 정해져있다.
개인보다 더 강한 규제 준수 의무를 지는 금융 기관이나 기업들은 이런 익명성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없다. 만약의 상황이 발생했을 시 계좌를 동결시키거나 이체를 취소하는 등의 조치도 불가능하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블록체인의 거래 처리 속도다. 개인들이야 많아야 하루에 수십 번의 거래를 하지만,기업들은 ‘초당’ 수 천개의 거래를 처리하는경우가 일반적이다. 블록체인은 아직 그 정도 속도로 거래를 처리할 수가 없다.
사실 이 문제점들은 딱 한가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블록체인 내에서는 기업이 다른 개인들 이상의 영향력을 가질 수가 없다. 기업들은 통제할수 없는 시스템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블록체인은 사실 근본적으로 기업들과 맞지 않는 기술이다.블록체인의 목표를 생각해보자. 블록체인은 기업들이 중개하는 중앙화 네트워크에서 벗어나서, 단일 주체가 권력을 갖지 않고 네트워크가 운영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기업용 시스템과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블록체인은 근본적으로 철학 자체가 맞지 않는다.
기업들에게 딱 맞는 블록체인, 프라이빗 블록체인
그래서 기존의 블록체인 기술을 수정해서, 기업용 시스템에 적합하도록 만든 블록체인들이 나타난다.
바로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일반적인 블록체인(퍼블릭 블록체인)과 다른점은, 운영 주체가 사용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컴퓨터가 장부를 분산 저장하고, 장부를 검증해서 동기화하는 기본적 원리는 같다.
하지만 사용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 운영 주체가 결정할 수있다. 물론 퍼블릭 블록체인도 사용자들의 권한이 설정되어있지만, 그것은 합의된 규칙에 의한 것이고 특정 주체가 결정할 수는 없다.
블록체인을 하나의 카페라고 생각해보자. 어떤 카페는 누구나 들어와서 글을 쓰거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카페는운영진의 승인을 받아야만 글을 쓸 수 있다. 각각의 회원 등급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있으며,어떤 게시판은 상급 회원만 볼 수 있도록 막혀있기도 하다.
누구나 들어와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카페가 퍼블릭 블록체인이라면, 운영진이 회원들의 권한을 설정할 수 있는 카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그래서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허가형 블록체인(permissioned blockchain), 퍼블릭 블록체인은 무허가형 블록체인(permissionless blockchai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장점
운영자가 권한을 설정할 수 있게 되면, 기업들이 블록체인을 시스템에 도입할 때의 많은 문제들이 쉽게해결된다.
먼저 특정 사용자들에게만 거래를 볼 수 있는 권한을 설정해서,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는 본인 인증을 통해 신원을 밝힌 사람만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권한을 설정함으로써 불특정 다수에게 정보를 노출하지 않고, 거래를 하는 상대방의 신원도 파악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 문제와 익명성 문제가 해결된다.
속도 문제도 해결된다. 퍼블릭 블록체인이 한번에 많은 거래를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매 블록마다 검증할 사람을 뽑고, 그 사람이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정교한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검증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검증 절차를 만들어 놓아야만 장부의 신뢰가 보장된다. 이 복잡한 절차가 낮은 처리 속도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경우는 몇몇 정해진 사람만 검증에참여하도록 제한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따로 검증할 사람을 무작위로 뽑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참여자를 따로 지정해서 검증을 맡긴다.
따라서 복잡한 안전 장치가 모두 생략된다. 덕분에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퍼블릭 블록체인보다 처리 속도가 훨씬 빠르다. 초당 수천 개 이상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다.
기업 간 협력 비용을 낮춰주는 블록체인
비트코인/이더리움과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탈중앙화였다. 즉, 운영자 없이 돌아가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었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복잡한 검증 장치와 암호화폐라는 보상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러한 절차들 때문에 기존 시스템보다 느리고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운영 주체가 권한을 부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탈중앙화된 네트워크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데이터가 네트워크에 분산 저장되기 때문에 기존의 중앙화된 서버 방식보다는 분산형에 가깝다. 보통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블록체인과 중앙화 서버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한다. 어떤 쪽에 더 가까운지는 각 프라이빗 블록체인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탈중앙화’를 포기한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왜 기업들은 원래 쓰고 있던 방식이 아니라 블록체인을 활용하려고 하는걸까?
기업들이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들끼리 효율적으로 협력을 하기 위해서다.
당연하게도 기업들은 영업 활동을 할 때 다른 많은 기업들과 정보를 주고 받으며 협력을 해야한다. 그런데 만약 주고 받는 정보의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거나 협력의 수준이 높을 경우에는 상대방 기업에 대한 신뢰가 중요해진다. 자사에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럴 때는 양쪽 기업의 신뢰를보증하는 중개 기관을 두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금융 회사가 고객과 온라인 거래를 할 때는 고객이 진짜 본인인지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으면 대형 금융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그래서 반드시 보안이 보장되는 인증 수단으로 본인 인증을 하도록 한다.
만약 이 인증 수단의 발급 (“이 공인인증서를 가진 사람은 본인이 맞습니다”)를 특정한 금융 회사가 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 금융사를 신뢰하지 않는 기업들은 그 인증 수단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A 금융회사에서 인증 수단을 발급받았는데, B 금융회사에서는 그 인증 수단을 받아주지 않고, 또 다른 인증 절차를 거쳐야하는 상황이 생길수 있다. 두 기업 간에 서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시스템이 호환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인증서의 발급은 특정 금융 회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게 인정받은 기관이 전담해서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공인인증서다. 중앙 기관은 공인인증서의 발급과 보증을 담당하며 각 금융사들은 모두이 기관을 거쳐서 고객 본인 확인을 해야한다.
고객이 공인인증서를 보여주면, 은행은 그 인증서 정보를 중앙 기관에 보내서 조회를 한다. 이 인증서가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중앙 기관은 그 정보에 대한 신뢰를 보증해준다. 금융 회사는 이 고객을 신뢰하고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고객은 다른 금융 기관에가서도 이 공인인증서로 인증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이 바로 개별 기업이 서로 서로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신뢰를 보증하는 중앙 기관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기업용 시스템에서 꽤 많이 발생한다.
문제는 중앙 기관의 보증은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 회사들은 신원을 조회할 때마다 일정한 비용을 내야 한다. 기업 간 신뢰가 없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신뢰 보증을 하는 중앙 기관이 없이, 개별 기업끼리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바로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가치다. 기업들이 같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연결된다면,서로를 신뢰할 필요가 없어진다. 상대방 기업에 대한 신뢰가 없어도 블록체인에 기록된정보는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 기관의 신뢰 보증을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렇듯 기관 간 신뢰가 부족하지만,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모두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현재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많이 시도되고 있는 분야가 물류 관리(SCM), 해외 송금, 무역 금융, 재보험 시장 등등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잘 활용하면 훨씬 더 저렴한 비용으로 쉽게 믿을 만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서로 간의 신뢰가 적고, 주고받는 정보가 중요할수록,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유용성은 높아진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기업간 협업에서 중개자를 제거하고,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기업들과 ‘협력’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퍼블릭 블록체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과 퍼블릭 블록체인은 목표 자체가 다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기간 관 협력의 ‘효율화’ 에, 퍼블릭 블록체인은 ‘탈중앙화’ 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래서 비슷한 뿌리를 가진 기술이지만, 구조나 특성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기존 중앙화 방식의 효율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블록체인이 가지는 ‘신뢰 보증’의 장점만 빌려온 시스템이다. 성능 면에서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당연히 실용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전히 운영 주체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다른 개인들에 대한 어떤 신뢰도 필요 없다. 하지만 그 대가로 성능이나 프라이버시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블록체인의 원래 목표인 ‘탈중앙화’를 포기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본다. 어떤 사람들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라고 불러서는 안되며 그저 새로운 데이터베이스 기술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성능이 발전하면,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다 흡수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현실적인 관점에서 실용성이 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먼저 도입하고, 나중에 이 프라이빗 블록체인들을 서로 연결하는 또 하나의 블록체인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둘 중 어떤 쪽의 그림이 현실화 될지는, 앞으로 사용자들의 선택에 달려있을 것이다.
토큰이 필요없는 블록체인
추가로,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대부분 암호화폐(토큰)를 쓰지 않는다. 잘 알려져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술은 R3라는 회사의 Corda, Hyperledger 재단의 Fabric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자체 화폐가 없다.
토큰은 인센티브의 역할을 하는 자산이다. 퍼블릭 블록체인 내에서 토큰은 다양한 사람들이 검증에 참여하기 위한 유인을 제공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들이 아무도 검증엔 참여하지 않고 네트워크에 무임승차(free-riding)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이미 검증을 맡길 특정 주체가 있기때문에 토큰이라는 인센티브가 필요 없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검증과 유지는 암호화폐로 보상을 받으려는 개인이 아니라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기업들이 나눠서 담당한다. 기업들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절약되는 비용만으로도 충분히 검증에 참여할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암호화폐로 보상을 받으려는 개인들이 아니라 블록체인을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활용하려는 회사들이 개발하고 유지한다. (물론 프라이빗 블록체인 중에서도 드물게 자체 화폐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긴 있다. 예를 들면 리플)
잘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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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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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히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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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글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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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쉽게 이해갸 가능하네요. 읽다보니 이오스의 dpos가 어찌보면 프라이빗 블록체인과 결이 비슷하다고 보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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