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충족 [루마니아 여행기]

in kr •  6 years ago 

클루즈 나포카 근처 투르다에 있을 때 두 명의 40대 중반에 대해 적고 싶다. 한 명은 내 호스트였고 다른 한 명은 이 호스트의 친구였다. 내 호스트 지기는 루마니아에서 소수민족 독일인으로 태어나 공산주의 정권으로 생활이 나빠 질 때즈음 8살 때 독일로 이민해 독일에서 나고 자란 독일인이다. 우연히 자신이 일하던 회사로부터 루마니아에 발령받아서 직장생활을 몇 년간 하였다. 루마니아의 값싼 생활비와 독일 회사의 월급을 받으면서 몇년 일한 후 평생 일을 안해도 될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자신의 펜트하우스에서 혼자서 은퇴후 삶을 즐기고 있다. 첫 한해동안은 정말 좋았다고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상상만 하던 삶을 누렸다. 그 다음 해 부터는 지루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카우치서핑을 호스트하는 낙으로 살고 있다. 지금은 은퇴 3년차였으며 아시아로의 장기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평생 한번도 못 가본 아시아라 아주 기대가 된다고 한다. 지기는 호기심이 아주 많다. 처음 만날 밤부터 나에 대해, 한국에 대해, 내가 여행한 나라들에 대해, 끝도 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자신의 육체는 루마니아에 있지만 여러나라에서 온 게스트들과 얘기하면서 마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무료로 잠을 재워주고 밥도 주고 주변에 차로 가이드도 해주는게 일이 될 수도 있을 듯 한데 자기는 재밌다고 한다. 우리는 꽤나 깊은 얘기도 할 수 있었는데, 한 번은 내가 젊을 때로부터 후회하는게 뭐냐고 물어보니, 여행을 많이 하지 않은 것, 더 많은 섹스 파트너를 갖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지금의 아시아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은 그 때의 결핍으로부터 오는 듯 했다.
지기의 집에 묵은 마지막 밤에 지기는 자신의 동네 친구 집에 나를 데리고 갔다. 지기와 비슷한 나이의 롤란드와 카롤리나는 애를 셋이나 가진 부부였다. 롤란드는 지기와 마찬가지로 루마니아의 또다른 소수민족 헝가리인 출신이였다. 루마니아의 가장 큰 소수민족은 헝가리민족과 독일민족이다. 롤란드는 내가 근래에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흥미로운 사람이였다. 공산주의 차우셰스쿠 정권의 루마니아에서 나고 자라 민주화를 목격한 후 헝가리, 독일에서 대학을 다닌 롤란드는 값싼 독일의 대학교에서를 10년이나 다니면서 경영, 아랍어, 스페인어, 역사 등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배웠다고 한다. 10년동안 학기중에는 법적으로 비자에 의해 주어진 기간보다 많이 하면서 불법적으로 돈을 벌고, 방학중에는 계속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시리아, 이집트, 터키, 이란, 모로코, 자신이 관심있어하는 중동에는 안가본데가 없다. 내가 시리아에 갔다왔다는게 제일 부럽다고 하니, 그 당시에도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버스만 타면 사람들이 전부 말걸고 버스 내릴 때쯤에는 사람들이 자기 집 저녁식사 때 초대하던 얘기, 저녁 식사에 갔더니 서양인이 왔다고 자기들은 원래대로 바닥에 앉아서 손으로 먹고 손님에겐 작은 탁자와 수저를 주고 먹는거를 지켜봐서 진짜 쪽팔렸다는 얘기, 지금은 ISIS에 의해 파괴되어 말 그대로 전설이 된 시리아의 유적을 본 이야기, 이집트에 가서 나일강을 건너는 보트를 탔더니 한국인 여대생 4명이 있어어 (90년대 중반에 친구끼리 네명이서 이집트를 여행하는 여대생이 상상하기 힘들었다) 같이 배탔던 이야기, 피라미드 관람하러 갔더니 옆에서 발굴작업하던 고고학자가 하필 헝가리인이라 같이 얘기하다가 집에서 묵으라는 초대도 받고 다음날 피라미드로 같이가서 상형문자를 직접 번역하면서 가이드 해준 이야기, 등등 흥미로운 경험담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보따리였다. 여행도 그렇지만 공산주의 정권하의 루마니아에서 산 이야기도 끝이 없기 때문에 이만 줄인다.
지금은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독일에서 만난 아내와 세 아이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있다. 지금은 여행가고 싶은 데 없냐고 하니 빨리 큰 아이가 커서 로마로 같이 가고싶다고 했다. 이유는 큰 아이가 로마시대에 관심이 많아서. 혼자 가고 싶은데는 없냐고 하니 이제는 가족들과 같이 다니고 싶다고 했다. 혼자 여행다니는 거를 좋아하고 여행다니면서 혼자인 사람들을 주로 보던 나에게는 (혼자서 다니는 사람이 가족과 다니는 사람과 숙소, 투어 등에서 만나기는 어렵다) 이 점이 가장 신선했다. 마치 지기와는 반대의 사람 같았다. 지기는 젊을 때 부터 열심히 일하여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지만 여행이라는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가지고 있었고, 롤란드는 인생의 각 단계마다 하고싶었던 것을 성실히 해나가며 살았던 것 같다. 비록 지금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못하지만.
나는 내가 나이들어서도 가끔씩 혼자 여행 다닐 줄 알았다니 나도 이렇게 꾸준히 다니다보면 언젠가는 다른게 더 재밌어지고 중요해지는 때가 올까?

덤.
공산주의 말기, 70년대-80년대 후반의 루마니아는 아주 열악한 상황이였다고 한다. 70년대까지는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루마니아 상황보다 나았다고 할 정도로 살 만 했지만 차우셰스쿠 정권의 말기엔 줄서서 배급받으면, 한 사람당 일주일에 통조림 하나, 빵 몇 조각, 이런식으로 다 어느 기한에 정해진 양을 받았다고 한다. 전기도 모자라서 평소에는 정전이고 하루에 두 시간씩 정권을 찬양하는 뉴스, 애국가만 나올때만 전기가 돌고 그 뒤엔 다시 꺼졌다고 한다. 시골에서는 가축이나 생산품은 정해진 양을 매주 차출해갔다고 한다. 학기 중에는 정해진 기간동안 초등학교 학생들도 차출되어 시골에 목화나 감자 등을 수확하러 보내졌다고 한다. 집으로 감자를 몰래 숨겨 오려고 했지만 항상 실패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니까 이것도 놀이로 생각하고 재밌다하고 했다고 한다. 교과서와 교실에는 차우세스쿠의 사진이 걸려있고 여러모로 박정희와 비교가 많이 되는 인물이다.
공산당을 후계하는 현재의 집권당 PSD(사민당)의 부패가 막심한 현재의 루마니아는 일자리, 경제,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발전도 덜 되었다. 시골에 가면 100년 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데도 많다. 젊은이들은 시위에 나가고 “Mue PSD! (F*** PSD)”를 외치지만 투표율은 낮다. 지금 루마니아에 있는 큰 다리들, 댐들, 고속도로들은 거의 다가 차우셰스쿠때 지어진것이라고 한다. 80년대에는 이미 부쿠레슈티의 지하철 체계는 완성되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길거리에서 도둑질을 하는 집시들은 그 때는 다 일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암살하는 등 인권 면에서는 최악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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