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소굴, 성수동 WxDxH

in kr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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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소굴

W  x  D  x  H




혹시, 최애 편집샵은 어디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성수동의 더블유디에이치요'라고 답할 것이다. 정작 돈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성수동은 한창 핫한 동네였다. 성수동은 특정 작은 골목이 흥한다기 보다는 성수역을 중심으로 남북방향 그리고 뚝섬역 방향으로 드문드문 위치한 카페들이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에 처음 성수동에 관심을 가졌던 건 '대림창고'의 역할이 컸고, '자그마치'라는 카페의 유명세가 더해지더니, 마침내 베이커리로도 유명한 '어니언'이 그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하나가 성수동의 대표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카페와 상점, 문화적 공간들이 늘어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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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을 처음 방문한 건 작년 5월쯤이었다.

'자그마치'라는 카페 주인이 두번째 카페로 '오르에르'라는 곳을 열었고, 세번째로 선택한 건 카페가 아닌 편집샵이었다. 일단 두 카페는 모두 오래된 성수동 건물의 모습을 간직한 채 거기에 감각을 얹었다는 점에서 편집샵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켰다. 그리고 이곳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바로 이름이었는데, 'WxDxH'가 의미하는 바는 물건의 넓이와 깊이, 높이를 뜻하는 Width x Depth x Height의 약자로 지어진 것이다.

뭔가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주 본질적인 것을 잘 알면서도 감각적일 것이고, 과도하게 화려한 것 보다는 섬세한 감성이 돋보이는 디자인과 물건이 많을 거라는 느낌이 왔다. 이런 것만 찾아다니면서 일 했으니, 이런 느낌을 알아본다는 건 어디 자랑할 일도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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탓을 한다면 그들이 너무 잘하는 탓.

뭐 이곳을 찬양할 생각은 없다. 고가의 명품도, 그렇다고 가성비에 집중하는 실용적인 필수품을 파는 곳도 아니다. 그저 나의 취향에 철저하게 부합하고, 상품 카테고리가 일관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중히 고른 셀렉션에 대한 노력의 흔적이 느껴지는 사치품들이라는 것 뿐이다.

사치품을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사실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것 중 무엇하나 생존만을 위한 것이 있지 않으며, 취향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소비 그 자체를 즐기게 하는 것들이 꽤나 비중을 차지한다. 어떻게 나의 감각과 만족감에 맞게 그리고, 과도하지 않게 잘 사치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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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가 뭘 파는 곳이냐면, 이것저것을 판다.

향초와 비누, 컵과 그릇, 매거진과 문구류, 에코백과 파우치 등등. 종류만 들어보면 다양한 물건을 두서없이 파는 듯 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것들이 매우 고집스런 취향에 의해 선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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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컵과 가방, 연필과 자석, 에코백을 샀다.

일본브랜드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 맘에 드는 컵을 들었을 때 의외였던 건 이딸라(iittala)와 비디비(Vidivi). 이탈리아 브랜드 특유의 화려한 디자인성이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오래된 나무 선반 안에 있으니, 그 나름대로 꽤나 잘 어울려보였다.

가방은 아틀리에 페넬로페(ATELIERS PENELOPE)라는 천가방으로 일본브랜드인데, 천가방치고는 가격이 세다. 하지만, 범선에 쓰이는 컨버스천으로 제작되어 코팅된 것으로 내구성은 꽤 높은 편이다. 한국 내 다른 곳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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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참새방앗간처럼 들리는 취향의 소굴이라는 거.

이렇게 랜덤의 카테고리를 지닌 듯 하지만, 자신들의 감각을 분명하고 꾸준하게 보여주면서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면 즐겁기도 하고 부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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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때 왜 좋아하는 곳들을 찾아다니지 않았나 모르겠어요.
너무 한길만 팠나봄...

취향의 소굴이 있다는것이 부럽사옵니다 ㅎㅎ

애나님이 접하는 다양한 공간들도 부러워요!ㅎㅎ

사진들 색감 이너무 좋아요+_+

ㅎㅎ감사합니다. 공간이 예뻐서 어떻게 찍어도 잘 나오는 것 같네요 :)

소득수준에 맞춘 소비라면 소비의 대상이 무엇이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누군가에게는 커피 한잔도 사치일테니...

그러고보면 전 다른 건 몰라도 커피에 대한 사치는 열심히 부립니다!! ㅎㅎ 거덜나지 않는 선에서요 ㅎㅎㅎ맛 이상의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대상인 것 같기도하네요.

이것저것을 파는 곳 치곤..
한 번쯤 들러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

네, 한번 들러보세요! 크지 않아도 꽤 오래 둘러보게 되는 곳이에요.ㅎㅎ

으앙 너무좋아요 이런곳 :) 저도 조만간 성수동쪽에 갈 일이 있는데 꼭 들러봐야겠어요

들러보세요! 오르에르 옆옆에 있어요 :)

자기만의 스타일과 취향이 있다는 건 멋진 일입니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영역이예요..ㅎ

맞아요!!ㅎㅎ 하나를 가져도 내 취향에 맞아서 만족감있게 오래 간직하고 싶은 걸 선호하게 되네요 :)

어떻게 나의 감각과 만족감에 맞게 그리고, 과도하지 않게 잘 사치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맞아요 !!!! 누군가의 소비행태를 보면서 사치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다들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른 물건/서비스에 있으며, 누군가의 가치관을 비난할 권리는 없으니까요.

그러고보면 살면서 중요한 것들은 전부다 배우지 않았던 것들 뿐이네요! 스스로 알아가야하는 소비행위 ㅎㅎ

사진 생감이 빈티지 하다해야할까요? 너무 느낌 좋은데요~ ^0^

엔틱이 맞겠네요... 빈티지는 오타라고 생각해주세요 ㅠㅠ

ㅎㅎ둘다 제가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워낙 잘 꾸며져있는 곳이라 사진이 잘 나오는 듯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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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도 세계의 일부이다 - 취향의 부피는 세계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느낌일까요. 모든 사물들이 직사각형에 담기기에는 그 형태에 따라 남는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고, 남는 빈 공간을 우리는 '사치'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먹고사는게 중요했던 시대에서 어떻게 맛있게 잘 먹냐의 시대를 거쳐 나만의 입맛을 찾는 시대가 아닌가 싶기도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