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아”
“응?”
“전에 말했던 거 기억해?”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는 느낌은 분명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환은 그녀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기억해...”
조용히 답하는 환의 대답에 그녀는 불안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아직도...... 안 돼?”
“...소율아”
“응...”
오늘 처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환의 부름에 조용히 대답하는 신소율 그녀의 대답에 그는 조용히 고개 숙이며 말했다.
“난 아직 누군가와 만날 수 없어”
“........”
김환의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대로 헤어졌다. 헤어질 때 까지 두 사람 다 아무 말도 없었다. 방에 들어온 그는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엄청난 고통 몸을 덮치는 끔찍한 고통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몸부림 쳤다.
반면 소율은 환을 데려다 주고 난 뒤, 한동안 차 안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딱히 환을 기다리는 건 아니다. 그가 내려오지 못할 거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떨어졌다. 셀 수 없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은 어느새 그녀가 눈앞을 볼 수 없을 때 까지 흘러 떨어졌다.
“흑... 흑... 대체 왜 그런 병에 걸린 거야... 대체 왜!”
병에 걸린 것만 아니었다면,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한탄해 하듯 그녀는 홀로 울부짖었다.
철컥......
"다녀왔습니다..."
"어 왔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 소율은 기운 없는 표정으로 방으로 올라갔다.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 그녀의 오빠 신소찬은 대답 없이 2층으로 올라간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를 쫓아가 물었다.
"신소율"
"...왜?"
고개를 돌린 소율의 눈가가 부어 있는 모습에 그는 호통을 치듯 소리를 질렀다.
"너! 그 얼굴 뭐야?! 울었어?"
"아무것도 아니야... 나 이만 가서 잘게"
"소율아!"
콰앙... 문을 닫은 채 방에 들어간 그녀의 모습에 소찬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끝내 거실로 내려왔다.
"소찬아 소율이 무슨 일 있다니?"
"모르겠어, 아무 말도 안 해"
"그래?"
"뭐 큰일은 아닌 거 같은데... 아 환이한테 전화해 볼까"
소찬이 중얼 거리듯 말하자 소율의 어머니인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마 걔도 힘들텐데"
"그렇긴 한데......"
소찬은 그녀의 반대에 하는 수 없다는 듯 핸드폰을 쥔 손을 내려놓았다.
한편 김환은 아직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통증 엄청난 통증이 마치 그를 괴롭히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다가왔다.
"끄으으으아!!"
몸속에서부터 살을 갉아 먹히는 것 같은 느낌, 마치 작은 벌레들이 몸을 파먹는 느낌이다. 따갑거나 욱씬 거리는 수준의 아픔이 아니다. 살덩이가 뭉텅! 잘려나가는 순간의 통증, 자신의 손으로 온 몸을 짓뭉개 버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드는 극심한 고통
"하아... 하아..."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소율과 지금쯤 잘 됐을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 통증이 잠잠해질 시기...... 마치 어린아이가 울다 지쳐 쓰러진 것 마냥 갑자기 통증이 잠잠해 지기 시작하면 그도 쓰러지듯 잠들었다.
"소율아~! 밥 먹어라~"
기운찬 어머니의 목소리에 한참 전에 잠에서 깬 소율은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다가 큰 맘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로 내려갔다.
"밥 먹고 출근해야지"
"응"
어제 보다는 조금 기운이 생긴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어머니는 조금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오빠인 소찬은 대학교 그녀의 아버지는 일하러 회사에 갔기 때문에 식탁에 앉은 사람은 두 사람 뿐이었다.
"별일 없지?"
"...응"
침묵 속의 대답, 표정이 좋지 않은 그녀에게 뭔가 이야기를 해줄까 라고 생각 하던 어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다 그녀를 믿기로 하고 이 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끝냈다.
“그래”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소율도 출근 준비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잘 다녀오고 올 때 조심해라"
"조심할게 뭐가 있다고, 갔다 올게요."
차를 타고 출근한 소율을 보며 그녀는 밀린 집안일이나 하자며 몸을 움직였다.
소율의 카페는 9시에 문을 열고 8시에 문을 닫는다. 장사가 잘 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돈을 모을 정도는 되었기에 그녀는 대학교를 다니는 걸 포기하고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그녀에게는 딱 맞는 직업이다.
"한가하네..."
오늘 따라 손님이 별로 없자 그녀는 한가한 카페 내부를 훑어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환은 어제 왔다 갔으니 아마 한 동안은 오지 못할 것이다. 그의 몸 상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곳에 혼자 올 정도로 무리를 했다면 아마 당분간은 밖에 나오지 못할 거다.
"의사를... 할 걸 그랬나..."
이제 와서 지만 조금 후회가 된다... 지금이라도 의사가 되 볼까?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그녀의 나이는 24살이었으니까
"...환이가 말리겠지?"
그는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다. 자신을 위해 그런 길을 가겠다고 한다면 무조건 말릴 거다. 그는 그런 남자니까,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소율은 한숨만 내뱉었다.
"하아~"
'오늘은 문 좀 일찍 닫을까?'
그녀는 손님도 없으니 문을 일찍 닫자 라고 생각하고 7시 반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에 타고 환의 집으로 향했다.
띵동~
"누구...... 세요...?"
환의 목소리에 문 밖의 그녀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운 없는 목소리 온 몸에 힘이 다 빠진 듯한 그의 목소리에 눈물이 쏟아질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침착하게 가슴을 부여잡으며 입을 뗐다.
"나야......"
"네...? 아...... 소율이? 미안...... 잠깐만... 기다려"
방에 쓰러져 있었던 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문을 연 환의 모습에 그녀는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너"
조금 놀란 표정을 지은 환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소율이를 보며 가만히 기다렸다. 그녀가 입을 열 때 까지 그러나 그녀는 말을 하는 대신에 그의 품안에서 울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며 김환은 다리를 갉아먹는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감싼 채 토닥였다.
'젠장...'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몸에 정말... 화가 났다.
"미안......"
"뭘... 드문 일도 아니잖아?"
한참을 울다 쇼파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그렇게 말을 나눴다. 환은 얌전히 앉아 있는 그녀를 보며 분위기가 너무 추욱 쳐진 것 같아 입을 뗐다.
"씻을래?"
"에?!"
깜짝 놀라는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환을 바라 봤다. 그러자 그는 침착하게 그녀에게 설명했다.
“아니... 너 나 때문에 지금... 땀범벅이잖아...”
머리도 헝클어지고 얼굴도 화장이 번져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
그러자 소율은 그제 서야 황급히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가 얼굴을 가다듬을 동안 환은 셔츠를 갈아입어야 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셔츠 좀 갈아입고 올게”
비틀 비틀 거리며 이동하는 그의 뒷모습에 소율은 그를 부축하듯 옆에 다가가 섰다.
"도와줄게"
"어?"
"도와줄게, 게다가 네 알몸 보는 거 처음도 아닌데 뭐"
"아니... 그렇긴 한데..."
소율에게 도움 받는 건 솔직히 말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지켜줬어야만 했던 사람 그런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꽤나 큰......
"그럼 오랜만에 같이 샤워나 할까?"
"샤, 샤 샤워?!"
"알몸 보는 거 처음 아니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