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그렇게 행동하기는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쉽게 생각하면 또 다른 저항하는 '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나'라는 존재가 이 모든 생각과 행동을 다 관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편의상 '나'를 조금 다른 관점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나'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그때 필요한 역할의 '나'가 겉으로 드러나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무수히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 그리고 선택 속에서 하나의 모습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주 출현하는 '나'가 무의식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생소한 나를 갑자기 무대로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익숙한 배역을 하다가 새로운 연기를 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특정 장소 사람, 조직, 상황에 따라 자주 출현하는 내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할 때 무작정 반대하고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모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은 특히나 중요성이 크고 상황을 바꿀 힘이 없는 어린 시절 기억이 계속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답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 내리기 때문에 돌이키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갈등이 생기는 것에 예민해지고 결국 집에만 들어가면 그냥 아무 일 안 일어나길 바라면서 방구석에서 조용히 혼자 있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친구와 있을 때 말 많은 사람이 회사에서는 대화하기 싫어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나의 생존과 번식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버린 나를 내세웁니다.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하나 들추어 보세요. 꼭 한번 해보세요. 별로 그런 모습이고 싶지 않는데 자꾸 그렇게 되는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위축되거나 당당하지 못한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죄책감에 쌓여있는 나일 수도 있습니다. 도망치려는 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떤 역할이든 그 역할을 연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해서 얻는 나만의 이득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합리화시켰는지를 처음으로 들추어 보는 것입니다. '나만의 동기'인 것이죠. 과연 나는 어떤 논리로 나를 속이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두 단계만 진행해 보세요. 무엇을 피하기 위함인지 적어 보세요. 대부분이 굉장히 비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나에게 주는 이득이 생각보다는 크지 않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