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aningless

in kr •  7 years ago 

바빴던 일이 있던 것도 아니고 다른 것에 신경 쓸 일이 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손을 놓고 살고 있었다. 물론 정말 밥만 먹고 눈만 껌벅이며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 태국에도 다녀왔고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하며 살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잉여답게 살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싶다.

어쩌면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식 없이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시덥지않은 우울증(시덥지않다는 표현은 우울증이 그렇다기 보다, 내 상태를 그렇게 표현하기에는 시덥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우울증이란 말도 사치일 뿐)의 한 증상일 수도 있겠다. 나는 나 자신을 우울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타나는 지표들은 가벼운 우울증의 증상을 지니고 있으니... 하지만 그런 정도의 우울증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에게 가능한 일인가?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정말 게으르거나, 베짱이처럼 사는 삶을 동경한다거나, 아무 일 안하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철 없는 꿈을 꾸고 있다거나, 목적의식이 없다거나,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없다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그렇게 살면 안되나? 좀 게으르게 살아가고, 그냥 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가면 안되는건가? 꼭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건가? 어쩌면 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오히려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쌍한 진퇴양난의 삶 속에 위치해 있는지 모르겠다.

의미를 부여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야만 왠지 그럴듯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식이, 개미는 개미다운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 현대교육의 힘으로 내 안에 깊게 뿌리박혀 있으나, 나의 바라는 바나, 나의 소망, 나의 행태들은 정말 의미 없는 베짱이의 삶을 그대로 실현하며 살고 있으므로, 그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너무 괴로운 것이다.

나는 일하기가 싫다. 더 정확히는 어딘가에 매이는 것이 싫다. 아주 정확하게 나인 식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이다. 의외로 생각보다 그런 삶에 적응을 아주 잘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다른 삶을 동경하며 앓다가 다시금 프리를 선언하게 되는 것이 내 삶의 반복이었고, 그런 내 행태의 결과로 나는 사실 그럴듯한 위치 없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무언가를 하기가 싫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나를 너무나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때문에 이 세상에 불만이 있다면, 이 세상은 돈을 벌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돈 벌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은, 있을 수 없는데도 말도 안되는 불만을 가지고 있는거지.

그래서 가끔은, 돈을 벌지 않고도 너무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부러운가보다. 내 관념은 그런 삶을 동경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일상적인 것들에서 가치나 보람을 발견하지 못하는 나로써는, 게다가 목적의식이 참 없는 나로서는 돈을 벌지 않고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부러운 것이, 속물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아주 정직한 나의 모습이다.

모르겠다. 답답하지 않아도 될 일에 답답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건지, 답답해야 할 일에 제대로 답답해하고 있는 것인지. 어쩌면 내가 너무 생각이 많고, 엄청 주저하고, 결정도 느리고, 실천까지 느릿느릿거리는 태도로 인해, 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들로 삶을 방어적으로 대하느라 그런 것일지.

그래도 무언가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같이 집에서 죽치고 있다가, 미세먼지 주의보가 뜬 오늘 같은 날에 기어코 카페로 기어나왔다. 차 값을 들여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무언가 선한 것이 나오리라 기대하며.

어딘가 글을 올려야겠다 생각하면서, 네이버와 스팀잇을 저울질하다가 이번에도 고민하느라 아무 것도 안하는 것 말고, 일단 스팀잇에 글을 올리자 생각하며 올리는 이 글.

앞으로는 그냥 정말 의미없는 '나'를 풀어놓겠다 다짐하며 말이야. 작심삼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 댓 1. 집 나간 비트코인의 화려했던 봄날은 여전히 돌아오고 있지 않고 있고, 서서히 지쳐가는, 아니 말라가는 나는 그래서 더욱 삶의 의욕이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도 결연한 것은 투자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나는 전과는 다른 모습이려나, 아니면 손해 보고 떠날 수 없는 내 마지막 발악이려나.
  • 댓 2. 비트코인의 운영에 대해서도 조금씩 마음이 변해가고 있다. 그래, 존버가 답은 아닐 수도 있어. 라고... ㅜㅜ....
  • 댓 3. 여튼, 참 아무 것도 의미가 없다.
  • 댓 4. 한글 태그는 언제 지원해주려나.
  • 댓 5. 일상도 죽을 맛인데, 숫자까지 4로 끝나는 것이 싫어서 다는 마지막 댓.

딱 나다. 나야 나!
개미탈을쓴베짱이.png

<내가그린그림 - 개미 옷을 입은 베짱이>
나의 현 상황을 표현하고자 그린 그림이므로 불법적, 무단 사용 금지합니다. 재사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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