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들 사이에서 통하는 상식은 외부에서 보면 말 그대로 그들 사이에서의 통념일 뿐이다. 또한 정상인들이 비정상이라고 부르는 집단조차 그 집단으로 들어가면 반대 상황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일베를 하지 않는 사람이 일베충들을 보고 상식이 없다고 하면 그건 틀린 말이다. 서로에게 통용되는 상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그들만의 상식이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선악과 미추의 개념이 특정 가치편향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늘 경쟁선 상에서 이기고 누군가의 위로 올라오고 선택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곧 선이고 미이다. 누구도 그들의 인생에 충고해 줄 수도 그들을 가르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들 역시 자신들의 눈에 하찮아 보이는 이들에게 배울 용의도 충고받을 용기도 전혀 없다.
사회 고위층(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는 모르지만 이 단어를 언론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상징적 이미지가 있으므로 사용한다)의 범죄 기사에 국민들이 적는 댓글과 수 만 개의 동의 표시는 우리 만의 자위 활동이다. 그 일련의 활동이 저격하고 있는 인물의 핸드폰에는 네이버 앱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을지 모른다.
이기는 것이 선이고 올라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 같겠지만 그건 우리같은 범인들의 상식일 뿐이다. 어이없는 갑질사태나 재벌의 일반인 폭행, 미투 운동의 원인이 되는 성추행 사건 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가해자가 그 범죄 행위를 파격이나 일탈로 여기기는커녕 평소의 가치관대로 행동을 한 결과가 그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눈에 천인공노 할만한 사건도 그들의 자의식 속에는 일반인의 무단횡단 정도로 취급되기 때문에 빈번하다 못 해 일상적으로 그런 사건은 일어난다.
악의 평범성은 이제 아이히만 같은 걸출한 악인에게만 적용될 수 없다. 아이히만을 감정하던 정신과 의사들은 아이히만이 지극히도 정상이라 자신들이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일베를 하는 이들 중에 정상적인 직업과 가정을 가지고 멀쩡히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조사 결과가 기억난다. 정상과 비정상, 상식과 비상식의 범주를 나누는 기준은 대체 누가 어떤 절차로 정할 것인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시절이 예전에는 있었을까? 요순 시대에는 그러했을까, 이제 정의는 물 흐르듯 흐를 수 없다. 정상이라 정상이고 상식이라 상식이던 것들은 이제 전부 그 개념도 범주도 모호하다. 모든 것은 불완전하며 미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