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유래1 - 서울깍쟁이

in kr •  7 years ago  (edited)

서울깍쟁이의 유래와 정의

서울깍쟁이. 이 말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는

이야기다.

국어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시골 사람이 까다롭고 인색한 서울 사람을

밉게 여기어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서울 토박이인 내가 아는 것과는 아주 다른 뜻이다.

깍쟁이란 “남의 것 탐하지 않고 내 것을 남에게 거저 주지 않는, 경우와

사리 밝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나는

감히 정의한다.

그렇다. 말 그대로 서울 토박이들은 이러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민주주의가 잘 발달된 나라에 사는 미국 사람도 서울 토박이의 수준에는 휠씬 못 미친다.

서울깍쟁이의 깊이와 멋.

서울깍쟁이는 먼저 상대방의 편에서 생각하고 심중을 헤아린 후 말없이 도와준다.

또 상대방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언젠가는 스스로 찾아와 도움 받은 만큼 갚는다.

어떠한 외부의 압력이 없어도 사회가 공존하며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규칙을 어기면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을 수 없으며, 동물 이하의

심하게 말하면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러니 사람 대접 받고 살려면

양심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서울깍쟁이들은 겨울에 얼어 죽을 정도로 멋을 부리는 옷을 입고,

여름에는 쪄 죽을 정도로 멋을 낸다.” 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예절을 잘 지킨다는 의미이다.

서울깍쟁이들은 거지에게 밥을 줄 때도 얼굴에 세수를 안 한 거지는

밥을 주지 않았다.

얼굴과 손을 깨끗이 씻고 와야 동냥 밥을 주었다.

아무리 없어도 사람으로서의 최소한 예의를 갖추어야 밥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서울깍쟁이 소멸

그런데 6.25 한국 전쟁으로 서울깍쟁이의 규칙은 깨어지기 시작한다.

이조 시대에는 시골의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면 그 식솔들은 서울로 이주된다.

그 인구 증가는 아주 작은 수에 달했다. 그 흐름이 원칙이다.

모든 세계의 도시도 같은 맥락이다. 원래 서울 사람은 없는 것이다.

지방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서 중앙 집중 도시를 형성하는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것과 같이 시골에 살았고 아무리 배우지

못했던 사람이더라도 서울에서 생활하려면 그 풍습, 표준어, 문화를 빨리 배우고

따라야 생활하는데 편리했던 것이다.

그런데 해방과 더불어 이북5도민들의 많은 피난과, 5.6공 정치에 경상북도 출세 집단이

서울로 대이동하고, 문민 정부 때 경상남도 출세 집단이 대이동하고,

김대중 대통령 때 전라 도민이 집단으로 이동되었으니,

체면만 따지며 경우 바르게 살던 서울깍쟁이들은 생존경쟁에서 밀려

서울 변두리로 쫓겨나 모두 산산이 흩어져 버린 것이다.

표준말의 의미

지금의 서울은 잡탕 서울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이제는 각처에서 다 모인 셈이니 그 자녀들에게 표준어 쓰는

것부터 가르쳐야 할 것이다.

문화에 있어서 언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니 같은 말을 사용하게 되면

지역 감정도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

아무리 합친다고 해도 억양이 틀리면 이질감이 생기는 법이다.

이러한 이치도 모르면서 무조건 지역 감정 없애자는

말만 하는 정치인들을 볼 때 과연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표준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부모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자기 아이가 표준어를 쓰면 고향을 버린 기분이 들어서라고 한다.

이 얼마나 무지에서 오는 생각인가!

사투리란 보통 지방에서 사용되는 말이며 그 지방 환경에 따라

산, 들판, 바다에서 간단히 주로 야외에서 알아듣기 쉬운 말이 토착화된 것이

그 지방의 사투리라고 그 유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사용되는 표준어는 다르다.

서울에서는 야외 생활 보다는 주로 집안에서 의사 소통이 이루어 진다.

그래서 크게 소리 칠 필요가 없고 조용하게 말하게 되므로 억양이 별로 없고 부드럽다.

만약 서울에서 사투리를 쓰는 것은 집안에서 방한복에다 방한화 신고 야외 차림으로

생활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 국민들이 고생이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을 하는 법이다.

서울깍쟁이의 체면

원래 서울이란 곳은 아무리 없어도 이면과 체면을 중시하고, 양심은 까치 배 바닥같이

흰 그런 청렴 결백한 생활을 으뜸으로 여기고 생활하던 곳이다.

우리말에 양반은 얼어 죽을 망정 겻불은 안 쪼인다고 했다.

이 말은 상류 인간의 자존심을 나타낸 말이다.

서울깍쟁이가 자존심마저 없어지면 살맛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무작정 상경해서 이면과 체면을 안 가리고 돈을 벌겠다면 서울에서는

쉽게 돈 벌 수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렇게 돈을 번 사람들에게는 신분상의 문제로 사람 취급을

해 주지 주었다.

그 이후 생긴 말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던가.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란 말이 성행한 것이다.

그 때는 못 먹어 굶어 죽는 사람도 많을 때다.

그래도 서울깍쟁이들은 체면을 지킨 것이다.

서울깍쟁이들이 벼락 부자들에게 미친 개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한다.

개는 호랑이에게 덤비지 못한다. 미쳤기 때문에 덤빌 수 있는 것이며

분수를 망각한 행동이기 때문에 결국 큰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겸손함과 자제력 없이 욕심이 너무 과하다 보면 나중에 큰 화를 면치 못한다.

옛날에는 정실 부인과 곁가지 부인이 있었다.

곁가지란 정도의 길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사회를 무질서 하게 만드는 온상이라서

옛날에는 제사도 못 지내게 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몇몇 곁가지 부인들은 자기의 자식을 낳았다.

그러한 자식이 짊어져야 할 서자 출신이라는 원초적인 고통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사리사욕에 의해 후손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홍길동과 같은 소설도 쓰여지게 했다.

옛날에는 첩의 자식 또는 매점매석 하는 모리배 집 자식이라면 상대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의 규칙을 깨고 인간답지 않게 불법적으로 사리사욕만 치부한 자를 말하는 것이다.

원래 무지한 도둑 떼가 많이 모인 서울이지만 그래도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울깍쟁이를 부활하는 것이 한국의 장래를 밝고 희망차게 하는 것이다.

음식과 서울깍쟁이

서울깍쟁이는 음식을 먹을 때 꼭 조금씩 남긴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로 양보하는 미덕, 그리고 일하는 하인들에 대한 배려이며

나머지 한가지는 그릇이 비었다는 표시인 것이다.

서울깍쟁이는 음식점에서 나오는 음식에 대하여 짜니 싱거우니

맛 없다는 등의 말을 하지 않는다.

다시 안 가면 그만이다. 자기에게 맞는 음식점에 가면 된다는

생각의 소유자들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불평투성이다.

남들의 습관을 자기에게 맞추려는 욕심에서인지 머리가 나빠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생활의 기초적인 지식이 없어서 라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만인이 사용하는 음식점의 음식을 어떻게 자기의 입맛에 맞추려는

생각을 하는지,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기에 데모하는

서울로 변한 것이다.

또한 서울깍쟁이들은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작은 선물 이라도

가지고 가는 것을 잊지 않았고, 오신 손님을 반갑게 맞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을 예의로 알았다.

이 행동의 또 다른 의미를 아는가?

예의를 갖춘다는 것 말고도, 방문 시에 작은 선물을 준비 헸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유 없이 자주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삼가 했다는

것을 또한 의미하는 것이다.

서울깍쟁이 엄마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더 더욱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자녀들에게 일깨워 주워야 할 때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요즘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는 점점 더 많아 질지도 모른다. 자녀를 하나만 낳아서

금이야 옥이야 “내 아이만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아이에게 우쭐대는

행동과 이기적만 맘만을 가르치고 참된 예절의 가르침에

대해 소홀해 하고 있다. 인간됨이란 어릴 적에 어떠한 환경에서

무엇을 보며 어떠한 어머니 손에서 키워 졌느냐가 관건이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다른 집의 아이들과 싸움을 하면 엄마들은

내 자식만 야단치지 남의 아이에게는 절대로 나무라지 않았다.

이것이 서울깍쟁이들의 불문 규정으로 되어 있었다.

서울깍쟁이 엄마들은 다음과 같이 자식 교육을 하였다.

“너는 언제나 상대편에 서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후에 사람으로서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이런 교육을 받고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에서

큰일을 하지 못하고 샌님이라는 소리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문화운동으로서의 서울깍쟁이정신

예전과 현재 서울의 생활, 문화, 그리고 교육을 제대로 알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자기 나라 표준어도 모르면서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TV에 나와서 지방 사투리로 부끄러운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이 얼마나 난센스 한 노릇인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사람은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야 그 때 자기의 실수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요즘 얼마나 혼탁한 세상인가! 인간의 양심은 온데 간데없고 한탕주의에만

눈독 들이는 풍조가 만연 되였으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우리는 자식에게 인간 양심 찾기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동방예의지국을 만드는 일이며, 서울깍쟁이를 통해 가능하다.

이것이 이상적인 한국 민주주의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서울깍쟁이의 정신. 이것은 우리나라 서울이 만든,

그 어느 나라의 문화 운동에도 뒤지지 않는 세련되고

최적화된 한국 민주주의 기반이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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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years ago Reveal Comment

감사합니다.자주 오세요^^

재밋게 글을 올려주시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유익한 정보 많이 올리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