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라이프) 나는 제주도의 장돌뱅이가 되고 싶었다.^^ 2주간의 플리마켓 경험기

제주도에는 플리마켓이 아주 많다.
특히 해안가에 있는 플리마켓은 마켓 구경도 하고 바다 구경도 할 수 있어서 인기가 더 많다.
수십개의 플리마켓이 열리기 때문에 제주도에 처음 이사와서 이런 플리마켓에서 소품 같은 것을 만들어 팔며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인들이 "너는 제주도에 이사가서 뭐 하고 살거니?"라고 물을 때마다

"플리마켓을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장돌뱅이가 될까해."

하고 농담처럼 대답하곤 했었다.

제주도 플리마켓은 볼거리가 많다.
특히 육지에서 이주해온 예술가들이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내가 파는 경우가 많아서 소소한 예술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제주도의 다양한 먹거리를 가져다가 음식을 파는 곳도 많다.
개성있는 아이템으로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도 많아서 먹거리를 구경만해도 재미있을 정도이다.

어느날 '제주음식스토리텔링'을 함께 배운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우리 플리마켓에서 떡볶이 장사를 해보자."
재미있는 제안이었다.
우선 나는 떡볶이를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맛있는 떡볶이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집 근처 동문시장에 가면 떡볶이집이 꽤 많이 있고, 관광객도 많이 가서 나름 유명한 떡볶이 집이 있다.
근데 내가 가서 먹어봤지만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육지에 유명한 떡볶이 체인점이 제주도에 몇군데 생겼다.
스팀잇에서 다른 스티미언들이 테이스팀 같은 곳에 올려놓고 맛있다고 자랑하던 체인점이 제주도에 생겨서 득달같이 가서 먹어봐도 그렇게 맛있지가 않았다.

내 생각에는 제주도 사람들이 떡볶이의 참맛를 잘 모르는 거 같다.
기본적으로 제주도 사람들은 맛있게 매운맛이건 폭탄같은 매운맛이건 '매운맛' 자체를 잘 모른다.
육지사람들이 너무 매운 것만 먹는다며 오히려 혀를 끌끌 찰 정도이다.
그러니 제주도에서 매콤한 떡볶이를 찾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렵다.

이 친구의 생각은 육지 떡볶이 맛을 재현해보겠다는 것이다.
이 친구도 육지에서 이주한 친구인데, 제주도에 살면서 자기도 매운 떡볶이를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육지에서 공수해왔단다.
먼저, 밀떡을 육지 방앗간에 특별 주문해서 준비했다고 한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떡볶이 양념 비법을 배웠다고 한다.(이 비법은 비밀이란다..ㅜ)
그래서 플리마켓에 주 고객인 이주민들에게 육지맛을 보여주자는 것이 장사 목적이었다.

정말로 재미있는 제안이었고, 나도 정말로 육지 떡볶이의 매콤한 맛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꼭 플리마켓에 참여해보고 싶었다.

캘리그라피로 메뉴판을 하나 써달라고 했는데, 캘리그라피로 쓰기에는 종이가 커서 그냥 정성껏 적어주었다.

플리마켓이 열리는 곳은 메종 글랜드 호텔 2층에 있는 정원이었다.
호텔 정원이라 플리마켓이 열리는 장소로는 꽤 고급스러웠다.

우리는 이렇게 떡볶이 좌판을 벌렸다.

친구는 한껏 부풀어 있다.ㅋ

이 국물 떡볶이는 친구 말대로 정말 육지의 매운맛을 제대로 내는 떡볶이였다.
밀떡의 쫄깃함과 떠먹을 수 있는 국물은 고추장 없이 고추가루로 칼칼하게 맛을 내주고 있었다.
적당히 얇은 오뎅도 완전 취향 저격이었다.
여기에 만두도 튀겨서 올려주고, 삶은 계란도 반조각 올려주는데, 제주도로 이주해온지 2년만에 처음 맛보는 육지 떡볶이 맛이었다.

제주산 녹두를 이용한 녹두 빈대떡도 꽤 인기리에 팔렸다.

나는 틈틈히 이렇게 떡볶이를 먹었는데, 이날 하루종일 먹은 떡볶이가 아마도 크게 한판은 되는 거 같다.ㅋ
농담으로, 파는 것보다 먹는 게 더 많은 거 같다고.ㅋㅋ

호텔에서 여는 이 플리마켓의 이름은 '하영즐기장'이었다.
'하영'은 제주도 말로 '많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많이 즐기는 장터란 뜻인 듯하다.
올해 처음 시도해보는 플리마켓으로 어느 정도 호응이 되면 내년부터 정기적으로 플리마켓을 연다고 한다.

이날 우리의 떡볶이 장사는 대박이었다.
먹거리 부스 중 우리 떡볶이 부스가 제일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마카롱 파는 아가씨들의 마카롱도 아주 맛이 좋았다.

제주 곡물을 이용한 뻥튀기도 팔고,

호텔 베이커리에서 나와 빵도 팔고, 커피도 팔고,

제주 수제 맥주라는 위트 에일도 팔았다.

우리도 떡볶이 팔다가 시원하게 생맥주도 한잔씩 했다.ㅋ

준비해간 재료가 너무 많아서 완판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첫 플리마켓 도전으로는 성공적이었다.
크게 남지는 않았지만, 손해도 안 봤다니...

친구는 제주도 어딘가에 가게를 얻어 떡볶이 집을 해보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서너 평 짜리 공간도 월세가 150만원 정도 한다고 해서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한다.
본인도 장사를 해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플리마켓에서 이런 저런 테스트를 해볼 겸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 친구의 아이템인 '국물 떡볶이'는 장사하는데 크게 어려워보이지는 않았다.
삼분 요리처럼 물만 끓으면 떡볶이가 완성되고, 좋은 밀떡을 공수해서 잘 불지도 않았다.
떡볶이를 단일 품목으로 장사한다면 크게 노동력도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주, 그러니까 지난 주말.
"언니~ 한번 더 하자."
그래서 다시 플리마켓에 나갔다.
이번에는 자리가 좀더 멋진 곳이었다.

플리마켓 입구 바로 앞이라 사람들이 플리마켓을 구경와서 처음으로 눈에 확 들어오는 곳에 장소가 배정되었다.
친구 딸이 택배 상자에 써준 메뉴판도 붙였다.
이날은 제주도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반죽으로 만든 호떡과 시판되는 츄러스도 팔기로 했다.
여전히 시작은 룰루랄라^^

여전히 떡볶이는 맛이 좋았다.

하지만 이날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바람도 엄청나게 불어서 플리마켓을 구경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ㅜㅜ
플리마켓은 이런 변수가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마도 비가 오는 날이었다면 더 심각했을 것이다.
제주도의 대부분 플리마켓이 봄부터 가을까지만 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제주도는 바람이 많은 섬이니, 플리마켓을 돌아다니는 장사꾼들에게는 이것도 큰 변수가 될 듯하다.

나중에는 플리마켓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팔아주고 서로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며 시간을 떼워야 했다.
그나마 날씨가 추우니 우리 부스는 어느정도 장사가 되었는데, 그래도 지난 주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였다.ㅜㅜ

나도 장터 구경 하다가 와인 시음하는 곳이 있어서 비싼 와인 서너 개 시음하고, 떡볶이 장사 알바생이니 그중 가장 저렴한 것으로 하나 사겠다며 와인을 하나를 샀다.

같이 플리마켓에 참여한 사람끼리 서비스라며 고급 와인 구매시 주는 와인을 한병 더 주셨는데,
'원래 사신 와인 보다 더 비싼 거에요."라는 장사꾼의 거짓말까지 보태며 기분 좋게 서비스해 주셨다.^^

이렇게 2주간의 플리마켓 경험기는 우리 두 사람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주었다.
친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떡볶이 장사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데 이번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평일 내내 알바하러 다니느라 피곤했지만, 언제고 꼭 해보고 싶었던 플리마켓에서의 장사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제주도에 와서 평생 안해본 몸 쓰는 알바도 해보고, 한번쯤 꿈 꿨던 장돌뱅이처럼 플리마켓에서 장사도 해보고...ㅋ
제주도 이주 후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자주 생긴다.
다음엔 또 무슨 경험을 해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