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렸다.
피곤이 익숙해져 매일같이 터지는 코피는 그렇게까지 해야하냐는 걱정과 핀잔의 대상이었지만 내겐 훈장과도 같았고, 새벽 3~4시에 퇴근하고 나서 혼자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하다 당직근무자와 만나 미쳤다 라는 애기를 듣는 것은 최고의 찬사였다. 그랬다. 남들이 보기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삶의 고통 속에 발악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내 마음 속에서는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한 일은 2달여 기간동안 얼마나 숙달되었겠냐만은 소위 아버님들이 말하던 별을 보며 퇴근해 별을 보고 출근했다 라는 전설같은 얘기들이 평일, 휴일할 것 없이 쭉 이어져 오니 비교적 짧은 시간임에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엔 미숙하여 혼나던 것들도 이제는 당연히 하게 되고, 할 수 있겠냐 라고 의문 어린 질문들이 점차 확신어린 지침으로 바뀌는 것들도 내가 이 일을 하는데 큰 힘이었다.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뛰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사점(死點)이라는 것에 도달한다. 말 그대로 죽을 거 같은 지점인데 자신의 한계에 직면함을 의미하며 이 순간 끝까지 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성장의 기로에 서게 된다. 수 없이 많은 달리기에서 항상 사점에 도달했고 어느 때는 성장을, 때로는 자신과 타협하며 멈추곤 했다. 그런데 사점 도달하고 멈추게 되면 "잠시만 쉬고 다시 뛰어야겠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멈추곤 하는데 열의 아홉은 이 마음가짐처럼 할 수가 없다. 그대로 뛰고자 하는 의지와 힘을 잃어버리게 되고 대게 그 날의 달리기는 그것으로 마치게 된다.
지금 내 달리기는 사점에 도달해 있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사점에 도달하게 된 것도 누군가가 사점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 계기이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행사 중에서, 연대체육대회날, 정신없이 행사를 진행하다 잠시 숨을 돌리고자 연병장 모퉁이 그늘 속에 누워 있었다. 평소 바쁜 서로의 일상 때문에 조용하던 카톡방은 그 날 따라 할 말이 얼마나 많던지 행사 내내 끊임없이 울려댔고 찰나의 휴식 속에서 확인을 위해 폰을 열었다.
"00사단 00연대 00대대, 인사과장 중위 000, 과중한 업무로 끝내 자살"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멍했다. 우리의 동기가 이렇게 스러져 가는 것은 처음이었고, 삶에 애착이 강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에 대해 깊게 공감할 수 없던 내가, 그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떠난 그 동기를 바로 이해하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에 내가 인사과장으로 올라온 후의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반추하는 동안 어쩌면 수 차례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애써 외면해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들이 가득차게 되었다.
간부, 용사할 것 없이 군 생활 간 애로사항을 발견하기 위해 과학적 식별도구를 이용해 진단을 하는게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가 이런 걸 체크해?"하면서 넘어갈만한 이상한 문항들이 있다. 소대장 땐 애들과 함께 누가 저런 거에 체크하냐며 콧방귀를 뀌곤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어느순간부터인가 하나 둘씩 "지금의 나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또는 '가끔 그런 적이 있는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나는 괜찮다 하며 무작정 달리느라 보지 못했을 뿐이지 누군가의 죽음으로 잠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 또한 그 친구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건너 건너 이 소식을 들은 대대간부들은 지나가다 만나면 내 걱정 뿐이었다.
"과장님은 그러실 분 아니라는 거 아는데...". "힘내십시요"
그럴 때마다 "저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자살할바에야 탈영하겠습니다!"라고 과장하여 말했지만 나도 언젠가 억지로 이어가던 이 달리기를 힘이 부족해 끝내게 될까 두렵다.
다음 행사와 업무를 준비하다 도저히 무언가를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처음으로 20시에 잠을 잤다. 하지만 2달여만에 직업병이라도 생긴건지 깊게 잠들지 못하고 일어나 홀린 듯이 이 곳에 글을 쓰고 있다.
항상 '답정너'였던 나이건만 답답한 머리 속과 마음이 해결되지 않아 넋두리를 하고 있다. 경험상 고민은 누군가가 들어주기만 하더라도 후련해지고 말하는 과정 속에서 이미 스스로가 답을 가지고 있다.
들어주는 것에만 익숙한 입장이다 보니 나를 들어내는 것엔 서툴러서 이 밤에 익명의 힘을 빌어 여기다가 글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할까?
빨리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일요일이 오기만을 고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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