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고 하루 살기] 쉬는 날 시 외우기

in kr •  7 years ago  (edited)


생각보다 쉬 근육이 풀리지 않는다. 자고 나면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근육이 뭉친 상태에서 반나절을 부산하게 움직인 탓인지 며칠은 꼼짝없이 쉬어야 할 판이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건강한 두다리로의 직립보행, 그 균형이 깨어지고 보니 멀쩡하던 여기저기도 무리가 온다. 일단 왼발의 체중을 오른발에 전부 실으면서 걸으니 무릎과 허리가 금새 어색하고 불편한 자극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 날 오후쯤 인력소 소장의 전화가 왔다. 내일 일이 가능한지 여부를 묻기 위해서인데 요 며칠 연속적으로 계속 일하고 있던 농수로 업자와 다음날 바라시 작업을 하기로 한 것을 다리가 이래서 못가겠다는 이야기를 설명하는 중에 그가 말을 자른다.
"아니 쉽게 내일 못 온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되지. 그래 병원은 가봤어요? 괜찮아지면 전화줘요"
맞다. 간단한 이야기를 왜 주저리 했을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아니지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시인 기형도를 책장에서 뽑아 들었다. 시를 외워볼 참이다. 이런 짓은 인위적이고 가식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것은 몰라도 시를 의식적으로 외우고 으스대는 짓은 가짜처럼 보였었다. 그러다 스테판 에셀의 말들을 뒤적이다 이 부분을 따라해 보기로 한다.

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타인과의 소통방식이다. 시 한 편을 낭송하는 것은 귀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고, 다소 공식적인 자리에서 즉흥연주를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젊은 세대에게 이야기할 때면 시를 암송하고 그럼으로써 말과 육체적 관계를 맺으라고 부추긴다. 말은 하나의 의미일 뿐 아니라 소리이며, 진동으로 그 자신의 의미를 전하는 음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p143~144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스테판 에셀/목수정 옮김/문학동네

말과의 육체적 관계라. 그럴듯하다. 90이 넘은 노인이 거짓을 말할 리 없다. 다시 외워본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무수한 공장을 세웠으니 아니지 또 틀렸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이렇게 영화제목으로 친숙한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을 외워보기로 한다.

Screen Shot 2018-05-07 at 3.38.08 PM.png

그의 언어 위에 조금씩 엇갈리는 나의 것을 겹쳐보면서 그를 쫓아간다. 못생긴 입술을 가진 그를 상상한다.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려보려 한다. 이것들이 저 깊은 곳의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마중물이 될 것임을 이제야 어렴풋이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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