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고 하루 살기] 여보, 아버님 댁에 cctv 놓아드려야겠어요?

in kr •  7 years ago  (edited)

인력사무소 소장에게나 업자에게나 미운털이 박힌 모양이다. 업자와 소장이 군소리 안하고 싼 값에 일하는 일꾼을 선호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덕분에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는 외국인들이 점점 나보다 경쟁력이 있는 것 같다. 더군다나 그들은 잘 뭉친다. 어느 사무소가 일을 잘 보내주는지, 어디에 일이 많은지 낯선 타국인 이곳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아침마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인다.

덕분에 다시 그나마 일회용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지붕 있는 인력 사무소가 아닌 길거리로 나섰다. 세상의 막다른 길에 초라하게 서 있는 이 거지 같은 기분을 다시 매일 아침마다 느끼고 견뎌야 한다. 며칠 전 공구리를 같이한 반장도 그 초라한 기분이 싫어 그 업자의 일만을 한다고 한다. 차량이 와서 멈출 때마다 기웃거리며 몰려드는 사람들의 뒤통수들을 보면서 일과 상관없이 얼른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그때쯤 suv가 한대 서더니 차에서 내린 업자가 다가온다.
"벽돌 까는 일인데 갈라요?"
"도청입니까"
"일반 가정집"
"얼맙니까?"
"13개"
"네"

그렇게 삼사십 분 떨어진 외곽의 한적한 가정집에 벽돌 까는 일을 돕는 데모도로 간다. 차에 올라타니 조수석에 한사람이 더 있다. 둘 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돌 만지는 사람처럼 약간 날카롭고 다부져 보인다. 두 사람의 보조를 하려면 하루 종일 바쁠 게 눈에 선하다.

가는 내내 앞자리의 두 중년 사내는 몇 달 전, 며칠 전 그리고 며칠 후의 낚시 이야기를 반 토막씩 주고니 받거니 한다. 난 뒷자리에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강줄기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낚시에 관해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지만 설령 잘 안다 해도 먼저 말을 섞어 봤자 십중팔구 시다하면서 하대 당하는 일만 앞당길 뿐이다.

입 꾹 다물고 도착한 현장은 국도 도로변에 위치한 조립식 가정집이다. 산비탈을 개간한 터에 강관과 판넬로 지은 조립식 집과 작은 컨테이너 두 동 그리고 앞마당과 뒤쪽의 경사진 밭까지 10년 전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는 할머니 혼자 살고 경작하기엔 꽤 넓은 공간이다. 앞마당에는 어딘가에 깔렸다 교체된 빛바랜 보도블록이 잔뜩 쌓여있는 걸로 봐서 저걸 날라야 할 모양이다.

아침참을 백설기에 미나리 무친 걸 주신다. 붙임성 좋은 중년 사내가 음료수 대신 술 없냐고 넌지시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냉장고를 열다가 이미 속을 훤히 보여 버린 것을 직감한 듯 딸이 사다 준 외국 맥주라며 버드와이저 캔 맥주를 건넨다. 그리곤 맥주에 들러붙은 공짜 땅콩처럼 딸 자랑을 시작한다.

딸 자랑의 끝은 최근 설치했다는 cctv다. 집 안팎을 훤히 비추다 못해 멀리 있는 딸이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때 떠오른 어느 보일러 회사의 아주 오래 전 cf속의 대사가 이젠 이렇게 바뀌어야 될 성 싶다.

"여보, 아버님 댁에 cctv 놓아드려야겠어요?"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요즘은 cctv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혼자사시는 부모님댁에 괜찮은 것도 같아요~

아.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2달 전 글이 마지막 글이네요.

건강하시지요?